미 영 등 연합군이 수용소들을 직접 해방시킨 뒤에야 '문명화된 사회'로 여겼던 서유럽에서 벌어진 참상이 세계에 알려졌다. 독일계인 아이젠하워 연합군 사령관은 최대 학살 캠프였던 부헨발트 수용소를 해방시킨 미군들로부터 보고를 받고,직접 수용소를 방문했다. 같은 민족의 만행에 분개한 그는 수용소 주변 독일인들을 불러와 시체들을 직접 보고 치우도록 했다. 독일인들은 전혀 몰랐던 것처럼 눈길을 돌리고 코를 막았다. 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용서못할 범죄'는, 가해자들에게 '전쟁 중에 민족 간에 일어난 비극' 정도로 타협된 탈출구를 마련해줬다. 미완의 단죄, 무관심과 묵시적 동조는 홀로코스트 이후에도 짙은 그림자를 남겼다. 전쟁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이념적 연대를 통해, 상대방의 소소한 약점을 부각시키고, 내 편을 들어줄 세력이 있으면, 어떤 형태의 집단학살도 단죄를 비켜갈 수 있다는게 2차대전 유대인학살이 남겨준 잘못된 교훈이다. 또 다른 학살 가해국 일본 역시 정확히 똑같은 과정을 통해 면죄를 받았다. 그 결과 학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허구라는 주장까지 공공연하게 이어지고 하켄크로이츠와 욱일(旭日) 깃발 아래 혐오는 끝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문명화'가 더 진행되고, 국제사회의 정보소통이 비교할 수 없이 확대된 이후에도 동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수없이 집단 학살이 이어져왔다. 지금도 지구상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집단학살과 혐오범죄는, 2차대전 당시 독일 나치와 뿌리를 같이 하고 있다.
80년 5월 광주. 그로부터 40년. 80년전 나치의 유대인 학살극에서 목격됐던 '범죄의 공식'은 이곳에서도 별로 다르지 않게 되풀이되고 있다. 진실을 외면했던 언론은 여전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광주의 참상은 존재하지 않았거나 과장됐고,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선동과 공비들의 작전이었다는 견설(犬舌)을 놀린다. 가해자들과 한패였던 이들이 면죄부를 얻기 위해 새로운 증오의 대상을 만들어낸다. 범죄자들의 후계자들은 끊임없이 상처입은 도시 광주를 찾아 욕설과 도발을 일삼는다. 종교는 그들에게 훌륭한 위장막이자 배양토가 된다.
이들이 무관심과 방조의 토양에서 세를 넓혀가고 점점 더 과감해질때, 우리 누구도 피해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광주'는 부산 마산 대구가 될 수도, 인천 대전이 될 수도 있다. '문명'이라는 게 얼마나 허망한 말인지 우리는 40년 전에, 그리고 또 그 40년 전에도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