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헨발트 80년, 광주 40년…다음은 대구 부산 인천 대전[50雜s]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2020.05.1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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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김준형의 50잡스]50대가 늘어놓는 雜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 여전히 나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소소한 다이어리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유대인학살 참상이 조금씩 세상에 알려졌을때 서방 국가들은 전쟁때 흔히 있는 '과장, 선전'이라고 생각했다. 유대인이 사주인 뉴욕타임즈는 자신들이 유대인들의 참상을 알리는게 오히려 미국의 반유대주의자들을 결집시키고 신문에 대한 반감을 확산시킬까봐 기사를 적극적으로 싣지 않았다. 독일 이외 지역에서도 인종주의, 혐오와 질시에 기반한 반유대인정서는 뿌리 깊었고, 반유대인시위도 끊이지 않았다.



2차대전이 중반으로 접어들던 1942,3년 이후 유대인 집단학살이 본격화됐다. 독일로 진격해간 소련군이 유대인 학살 수용소를 접수한 뒤 지옥같은 현장을 보도했을 때도, 서방국가들은 독일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소련 언론의 프로파겐다라고 치부했다.

미 영 등 연합군이 수용소들을 직접 해방시킨 뒤에야 '문명화된 사회'로 여겼던 서유럽에서 벌어진 참상이 세계에 알려졌다. 독일계인 아이젠하워 연합군 사령관은 최대 학살 캠프였던 부헨발트 수용소를 해방시킨 미군들로부터 보고를 받고,직접 수용소를 방문했다. 같은 민족의 만행에 분개한 그는 수용소 주변 독일인들을 불러와 시체들을 직접 보고 치우도록 했다. 독일인들은 전혀 몰랐던 것처럼 눈길을 돌리고 코를 막았다. 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학살 주범들과, 친위대원, 수용소 경비원등이 전범재판에 세워졌지만 잠시뿐이었다. 냉전이 시작됐다. 미국은 독일 재건을 지원했고 소련이라는 새로운 '악마'앞에 과거의 악마 나치는 별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었다. '과거는 잊자'가 슬로건이 됐다. 존 매카시같은 반공주의자들이 노골적으로 전범재판을 방해하고 나섰다. 미국은 전범들에 대한 공소 기록들을 '비밀'로 분류해 타 국가들에 정보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전범재판을 무력화시켰다. 극히 일부를 제외한 나치 부역자들과 수용소 현장의 무자비한 하수인들은 대부분 풀려났다. 아무도 정확한 숫자를 알수 없지만 많게는 250만, 적어도 100만명이 조직적이고 산업적으로 학살당한 인류 최대의 혐오범죄에 대한 단죄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용서못할 범죄'는, 가해자들에게 '전쟁 중에 민족 간에 일어난 비극' 정도로 타협된 탈출구를 마련해줬다. 미완의 단죄, 무관심과 묵시적 동조는 홀로코스트 이후에도 짙은 그림자를 남겼다. 전쟁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이념적 연대를 통해, 상대방의 소소한 약점을 부각시키고, 내 편을 들어줄 세력이 있으면, 어떤 형태의 집단학살도 단죄를 비켜갈 수 있다는게 2차대전 유대인학살이 남겨준 잘못된 교훈이다. 또 다른 학살 가해국 일본 역시 정확히 똑같은 과정을 통해 면죄를 받았다. 그 결과 학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허구라는 주장까지 공공연하게 이어지고 하켄크로이츠와 욱일(旭日) 깃발 아래 혐오는 끝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문명화'가 더 진행되고, 국제사회의 정보소통이 비교할 수 없이 확대된 이후에도 동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수없이 집단 학살이 이어져왔다. 지금도 지구상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집단학살과 혐오범죄는, 2차대전 당시 독일 나치와 뿌리를 같이 하고 있다.

80년 5월 광주. 그로부터 40년. 80년전 나치의 유대인 학살극에서 목격됐던 '범죄의 공식'은 이곳에서도 별로 다르지 않게 되풀이되고 있다. 진실을 외면했던 언론은 여전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광주의 참상은 존재하지 않았거나 과장됐고,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선동과 공비들의 작전이었다는 견설(犬舌)을 놀린다. 가해자들과 한패였던 이들이 면죄부를 얻기 위해 새로운 증오의 대상을 만들어낸다. 범죄자들의 후계자들은 끊임없이 상처입은 도시 광주를 찾아 욕설과 도발을 일삼는다. 종교는 그들에게 훌륭한 위장막이자 배양토가 된다.


이들이 무관심과 방조의 토양에서 세를 넓혀가고 점점 더 과감해질때, 우리 누구도 피해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광주'는 부산 마산 대구가 될 수도, 인천 대전이 될 수도 있다. '문명'이라는 게 얼마나 허망한 말인지 우리는 40년 전에, 그리고 또 그 40년 전에도 지켜봤다.
부헨발트 80년, 광주 40년…다음은 대구 부산 인천 대전[50雜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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