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현장 모습.(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뉴스1
달리는 사람들의 마지막 버킷리스트인 국토종단 537km. 백용호, 손영만, 전상배 러너들은 오랫동안 준비하고, 가슴벅차게 태종대를 출발했을 거다. 50대 60대에 이르는 동안 측정할 수 없는 거리를 두 발로 달린 울트라마라토너들이다. 국토횡단 종단대회도 처음이 아닌 베테랑들이다. 제주100km울트라마라톤 주로쯤에서 나도 이분들 곁을 한번쯤은 스쳐 지나갔을 거고 함께 '화이팅'을 외쳤을 지도 모른다.
이 분들이 왜 새벽에 뛰고 있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대한울트라마라톤협회(KUMF) 주관으로 보통 1년에 국토종단과 횡단 대회가 각각 한 번씩 열린다. 횡단대회는 강화 창우리에서 강릉 경포대까지 311.7km(시간제한 64시간), 종단대회는 부산 태종대에서 임진각까지 537km(127시간) 혹은 해남 땅끝-강원 고성 구간 622km(150시간) 이다. 짧게는 2박3일, 길게는 6박7일 동안 ‘달려야’ 하는 것이다. 사고를 당한 희생자들도 사흘을 달려서 목적지 파주 임진각까지 124km를 남겨두고 있었다.
적어도 100km 이상 울트라마라톤 대회를 여러차례 뛰어본 사람들이 도전하기 때문에 50대나 60대 참가자들이 주류를 이룬다. 국토횡단은 ‘100km 이상 울트라 대회 완주자’, 국토종단은 ‘200km 울트라대회 혹은 국토횡단 308km 완주자’로 참가자격이 제한된다. 이 때문에 말은 '대회'이지만 참가자는 100명 안팎의 매니아만이 도전하는 '서바이벌' 테스트다. 이번 대회 참가자는 75명이었다.
그렇지만 왜 새벽에 국도에서 뛰느냐, 에스코트 차량도 없이 대회를 하느냐며 피해자와 주최측을 탓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범죄 피해자에게 '당할 짓을 했지 않느냐'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동차 전용도로가 아닌 이상, 운전자는 길 옆을 지나는 사람과 자전거 등을 주의해서 운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울트라마라톤 주자들은 등에 몇백미터 밖에서도 보이는 경광등을 달고 뛴다. 앞차 브레이크 등과 다르지 않다.
이걸 보지 못할 정도 상태라면 달림이가 아니라 뭐라도 들이 받았을 자다. 100km 대회 정도라면 에스코트도 어느정도 가능하지만 수 백 km 달리는 대회를 도로 통제하면서 실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차 다니는데 왜 사이클 타냐고, 떨어질 수 있는데 왜 암벽등반하냐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실제로 사고현장 사진을 보면 차가 씽씽 달릴만한 허허벌판도 아니고 상점과 주택이 늘어서 있고, 갓길도 있는 편도 2차선 도로여서 정상 운전자라면 이런 사고를 낼 곳이 아니다(사고 운전자는 면허 취소 수준의 음주상태였다).
물론, 며칠을 밤새면서 달려야 하는 국토종단 횡단 대회는 음주 난폭운전 뿐 아니라 수면부족으로 인한 차도침범 위험도 크다. 앞으로 최대한 차도를 피해서 개최하는 코스를 개발하는 게 필요하다.
부산 을숙도에서 파주 임진각까지 낙동강-한강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면 이화령 구간과 파주 위쪽 등 일부만 제외하면 대부분 길을 둔치 자전거길로 뛸 수 있다. 횡단은 인천 정서진에서 출발해서 둔치로 뛰면 적어도 춘천까지는 안전하게 갈 수 있다.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달릴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두 발로 굳건히 땅을 딛고 달리다 돌아가신 세 분의 명복을 빈다. R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