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경국대전·관습헌법…16년전 '대못' 이번에는?[50雜s]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미디어전략본부장 2020.07.23 18:04
글자크기

[김준형의 50잡스]50대가 늘어놓는 雜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 여전히 나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소소한 다이어리입니다.

“경국대전에는 한성부가 경도(京都) 즉 서울을 관장한다고 명시해 한성의 수도로서의 지위를 법상 분명히 하였다. 이러한 경국대전의 내용은 개정됨 없이 조선왕조가 존속한 500여년의 장구한 기간동안 계속하여 국가생활의 기본적인 최고규범으로서 효력을 유지했다...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는 상황이 시작됐으나 이후에도 경성부, 즉 서울은 우리나라의 행정중심지로서의 역할을 계속하였으며...”

2004년 행정수도특별법, 1470년 경국대전 앞에 '위헌'
지금 다시 읽어봐도 ‘신박한’ 당시 헌법재판소(소장 윤영철)의 위헌 판결문이다.



2004년 1월 대한민국 국회를 통과해 공표된 행정수도 특별법(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은 이렇게 1470년(성종 2년) 반포된 조선의 경국대전 앞에 ‘위헌’딱지를 받고 무력화됐다.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명문화되지 않았을 뿐 헌법 조문이나 마찬가지다“



요즘 서울 이외 지역 주민들이 이 말을 들으면 얼마나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경제정의실천 시민운동연합 출신 이석연 변호사(훗날 이명박 정부 법제처장)가 위헌신청을 내면서 했던 말이다.

보수성향 재판관들이 주류를 이룬 당시 헌재는 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행정수도 이전을 두고 서울의 경쟁력 약화나 비효율성, 재원낭비 등 여러 관점에서 반대논리도 많았지만, ‘경국대전’이 등장할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표결 결과는 위헌 8(윤영철 주선회 김경일 김효종 송인준 권성 김영일 이상경), 각하 1(전효숙)이었다.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이므로 헌법72조에 따라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는 절차상의 위헌을 지적한 의견조차도 김영일 재판관 1명에 불과했다.


헌재는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점에 대한 관습헌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헌법개정이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쐐기를 박았다. 당시 의석 분포나 정치상황상 개헌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효숙 재판관만이 ‘서울이 수도이다’라는 사실로부터 ‘서울이 수도여야 한다’는 헌법적 당위명제를 도출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며 각하 의견을 냈다. 헌법에 있지도 않은 사항을 ‘개헌’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대의민주주의 절차인 법률 제개정을 통해 다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구려 신라 고려 아닌 조선, 왜?…행정수도 이전,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과제
헌법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씌여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봉건왕조 이씨 조선의 통치이념과 관습의 연장선상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는 냉철한 자기 인식이었을까?

아니면 경국대전이 최초의 ‘성문헌법’이라서였을까? 관습헌법을 따지자면서 그 기준을 ‘성문’에서 찾는 것은 또 무슨 논리인가.

관습은 시대를 반영해야 ‘헌법’에 준하는 권위를 갖는다.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성문 헌법 규정을 갖고 있는 21세기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헌재는 국가체제를 수호할 최고기구이다. 그런데 반-상의 계급사회를 기본 규범으로 규정한 조선시대의 경국대전을 '헌법'으로 인정한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반체제적 발상이었다.

조선의 경제는 노비와 천민의 노동력을 최하층에 둔 봉건제와, 한양의 중앙집권주의가 결합돼 유지된 체제였다. 시장원리에 기본을 둔 자본주의 체제, 지방분권을 통한 균형발전을 이뤄가야 하는 경제상황의 최고 판단 준거를 조선시대에서 찾는 코미디를 다시 보게 될까.

당시 머니투데이 재테크부장이었던 나는 “헌재의 장벽에 막혀 우리 경제와 수도서울은 '워크 아웃' 기회를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 먼 장래를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웰스 매니지먼트, 재테크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고 썼다.

“수도이전은 노무현정부가 아닌 다음 정부에서도, 수도권 신도시를 열 몇개 더 지은 뒤에도, 현재의 수도권 구조아래에서는 다시 제기될수 밖에 없는 과제이다. 늦어질수록 이전비용도, 이전논란에 따르는 비용도 지금보다 훌쩍 늘어나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16년이 지나 그 당연한 예언은 현실이 됐고, 다시 그 과제를 받아들게 됐다. 범 여권 180석을 확보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21일 국회 대표연설을 통해 “행정수도를 제대로 완성할 것"을 제안했다.

'세종시 수정안' 냈다가 결딴난 MB…야권, 복잡한 셈법
상황은 그때와 같지는 않다.

범 여권만으론 개헌선에 못미친다고 하지만 미래통합당 충청 지역 의원만 해도 8명이다. 미래통합당 지도부는 일제히 김원내대표의 발언을 지지율 만회를 위한 꼼수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하지만 5선의 정진석 의원(충남 공주부여청양)등 충청권 의원들은 당지도부와 생각이 같을 수 없다. 수도권 과밀화에 반대하는 다른 지방 의원들 역시 셈이 복잡하다. 본격적인 공론화가 시작하기도 전인데도 국민들의 찬성의견이 53.9%로 반대의견 34.3%를 압도한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과거 경험으로도 세종시 문제는 미래통합당이나 '구 여권' 구성원들이 가볍게 대할 문제가 아니다.

서울시장 출신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2010년 ‘세종시 수정안’을 마련했다. 행정수도 이전을 사실상 백지화하고 대신 세종시에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당 대표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국회에서 부결되는 수모를 겪었다. 지난해 세상을 뜬 정두언 전의원은 회고록에서 “세종시 문제로 MB정권은 완전히 결딴이 났다. 수정안이 부결되면서 권력이 사실상 박근혜에게 넘어간 것”이라고 돌이켰다.

행정수도 이전 발언에 대한 김종인 미래통합당 대표의 첫 반응은 “이미 위헌판결 난 일인데 이제 와서 헌법재판소 판결을 뒤집을 순 없는 것 아닌가”였다. 초대 대법원장까지 지낸 법률가 김병로(당시는 헌재가 없었다)의 손자답지 않은 말이다. 위헌판결은 영원한게 아니다.
정치난국 타개책 아닌 '국가 워크아웃' 관점…16년전 전철 NO!
위헌판결을 받은 신행정수도특별법이 아닌 새 법률을 제정하는 건 국회의 권한이다. 이 경우 또 위헌심판이 제기될 수 있고 헌재는 다시 한 번 시험대에 들 것이다. 헌재 구성원의 성향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현재의 헌재 구성원이 '동일 사안에 대한 일관성'을 중시한다면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다.
대통령이 헌법 72조에 따라 국민투표에 부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헌재가 2004년 위헌판결을 하면서 수도이전 사항은 국민투표의 대상이 아니라고 대못을 박았다는 점이 부담이다.
당시 위헌 판결을 존중해 아예 개헌을 통해 헌법에 행정수도 관련 명문규정을 넣는 방법이 가장 깔끔하긴 하다. 문재인대통령은 2018년 이같은 내용의 개헌안을 제시한 상태다.

어떤 방식을 택할지, 국민과 야당을 설득해 낼수 있을지는 여권의 몫이고 정치력이다. 중요한 건 '백년대계'다. 단지 수도권 아파트 값을 잡기 위해, 발등에 떨어진 정치적 불을 끄기 위해서가 아니다.
수도이전은 비대한 부위 살을 빼고 찌울 곳은 찌우는 ‘대한민국 워크아웃(Work-out:체력·체형·제질 개선운동)’ 프로그램이 돼야 한다.

경국대전과 관습헌법을 다시 돌아보는 건, 16년 전의 전철을 밟아 언제고 또 이 숙제를 받아들게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다시 보는 경국대전·관습헌법…16년전 '대못' 이번에는?[50雜s]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