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추석 쇨 집도 없어요"…홍수 43일째 구례는 아직 ‘신음 중’

뉴스1 제공 2020.09.20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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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읍 양정마을, 여전히 더딘 비닐하우스 복구작업
“재기 다짐하다가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난거지” 화 치밀어

19일 오후 전남 구례군 구례읍 양정마을 입구에 걸린 검은 깃발이 눈길을 끈다. 지난 8월 초 막대한 홍수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이번 피해의 원인으로 수자원공사의 섬진강댐의 수위 조절실패와 방류를 주장하고 있다.2020.9.20/뉴스1 © News1 지정운 기자19일 오후 전남 구례군 구례읍 양정마을 입구에 걸린 검은 깃발이 눈길을 끈다. 지난 8월 초 막대한 홍수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이번 피해의 원인으로 수자원공사의 섬진강댐의 수위 조절실패와 방류를 주장하고 있다.2020.9.20/뉴스1 © News1 지정운 기자


(구례=뉴스1) 지정운 기자 = "홍수에 소들이 떠내려가고 살던 집도 사라졌어요. 집이라도 있어야 명절을 지낼텐데, 올해 추석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19일 오후 전남 구례군 구례읍 양정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홍수가 난지 달포가 되어가지만 여전히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에 신음하고 있었다.



이곳은 지난달 8일 오전 7시30분쯤 섬진강의 범람과 서시천 제방 붕괴로 주택이 침수돼 파손되고 사육하던 한우 등 가축이 홍수에 떠내려가는 최악의 홍수 피해를 입었다.

구례군 전체에서 주택 715동과 상가 579동이 침수피해를 입었고 이재민도 1149명이 발생했다.



특히 대규모 한우 사육농가가 많은 양정마을에서는 한우 737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조사되는 등 1807억원의 재산피해가 난 것으로 조사됐다.

홍수 이튿날인 9일부터 각계 각층의 자원봉사자들과 군인장병, 공무원 등 복구인력 2만6400여명, 장비 2047대가 투입돼 노력한 결과 현재 약 90%의 복구율을 보인다.

실제 침수피해가 심각했던 구례읍 5일시장은 157개의 점포가 침수피해를 입었지만 응급복구를 거의 마무리 짓고 9월18일 재개장을 하면서 다시 활기가 도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불과 1㎞ 남짓 거리에 있는 양정지구는 아직도 수해복구 작업이 더디기만 한 모습이다.

양정마을로 들어가는 농로 입구에는 '환경부와 수자원공사는 죽은 소를 살려내라'는 검은 깃발이 세워져 있어 주민들이 처한 형편을 짐작케 했다.



또 농로 주변의 일부 시설하우스는 겨우 비닐만 제거한 상태에서 철제 구조물이 내려앉아 있고, 온갖 쓰레기가 아직도 치워지지 않은 채 복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와 아내, 5살짜리 딸을 둔 가장 이근호씨(43)의 오이와 호박 농사를 짓는 비닐하우스는 그나마 새 비닐을 씌워 복구가 된 것처럼 보였다.

이씨는 8월 홍수 당시 비닐하우스에 가득한 진흙을 보고 눈앞이 캄캄했지만 다시 힘을 내 재기를 위한 복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오이와 호박 등의 모종을 심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상태다.



이씨의 하우스 바로 옆에서도 주민 4~5명이 하우스 철제 구조물을 분리해 바깥으로 끌어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양정마을 입구 농로 주변의 복구되지 않은 비닐하우스.2020.9.20/뉴스1 © News1 지정운 기자양정마을 입구 농로 주변의 복구되지 않은 비닐하우스.2020.9.20/뉴스1 © News1 지정운 기자
하우스 복구작업을 하던 한 주민은 "다시 농사를 짓기 위해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면서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화가 치밀어 오를때가 한두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양정마을 회관 앞에서 만난 주민 배금봉씨(58·여)도 딱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지난해 늦가을 남편과 사별한 그는 올해 들어 축사를 고치는 공사를 하던 중 공사인부가 숨지는 사고를 당한 후 아직 사고 수습을 하지 못한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홍수로 인해 자신이 애지중지 키우던 89마리의 한우 중 30여 마리가 떠내려갔고, 겨우 목숨을 건진 15마리는 반값에도 못미치는 가격에 팔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소들이 사라졌는데 한마리당 고작 100만원밖에 보상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추석은 다가오는데 침수된 집도 아직 제대로 수리하지 못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같은 마을의 안모씨는 자신의 살던 집과 키우던 한우들, 하우스마저 모두 떠내려갔다.



안모씨는 이날 양정마을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방문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다른 사람은 그나마 소라도 남아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없어 죽으려는 생각까지 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나라에서라도 보살펴 달라"고 하소연했다.

이 말을 듣던 이 대표는 눈시울을 붉히며 "8월11일에 방문했을 때는 정신없어 잘 몰랐는데, 이제와 보니 더욱 참담하다"며 "그래도 이겨내야지 어떡하겠느냐"고 주민들을 위로했다.

이 마을에서 70대의 남편과 9900㎡(3000평) 규모의 배 과수원을 운영하는 서도순씨(69·여)도 할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한우의 사료인 곤포사일리지가 홍수에 떠다니다가 물이 빠지면서 과수에 걸려 가지가 찢어지고 과수원 통로도 막아버렸다"며 "올해는 배 수확은 고사하고 물에 잠긴 농약살포기와 전동차 수리에만 1000만원의 비용이 들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물에 침수됐던 배나무에서 올해는 새로운 잎과 줄기가 나오고 꽃까지 피었다"며 "이렇게 새 잎이 나고 꽃이 피면 내년에는 아예 꽃이 피지않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그나마 나는 집이라도 남아있어 다른 마을 주민들에 비하면 상태가 나은 편이라 괜히 미안하고 죄인이 된 느낌"이라며 "우리 마을에서 이번 추석은 명절맞이 준비도 힘든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오후 전남 구례군 양정마을을 찾아 호우피해를 입은 한우사육농가 농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0.9.19/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오후 전남 구례군 양정마을을 찾아 호우피해를 입은 한우사육농가 농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0.9.19/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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