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달 중순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의 핵심품목 ‘핵융합로(토카막) 진공용기’의 첫 번째 섹터(6번)가 ITER 건설지인 프랑스 카다라쉬로 운송을 시작한다. 특수선박에 실려 오대양 바닷길과 운하, 전용도로를 통해 입체적으로 이뤄지는 수송작전을 펼쳐 현지에 도달하는 시점은 두 달여 뒤인 7월초다.
일종의 가마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진공용기는 도넛 모양으로, 규모가 큰 까닭에 전체를 9개 섹터로 나눠 제작한 후 하나로 조립하게 된다. 다 만들어진 용기는 높이와 외경이 각각 13.8m, 20m에 총 무게는 5000톤에 달한다. 진공용기의 첫 조각인 6번 섹터(11.3m, 폭 6.6m, 무게 400톤)는 핵융합연 ITER 한국사업단과 현대중공업이 10년에 걸쳐 만들었다. 대체품이 없는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장치다.

ITER 전체 장치 무게합 에펠탑 3개와 맞먹어…‘쇼크워치’ 등 각종 안전장치 장착
25일 핵융합연에 따르면 ITER의 주장치와 주변 장치들은 합쳐 약 2만3000톤에 이른다. 에펠탑 3개와 맞먹는 무게다. 우리나라는 6번 섹터를 보낸 이후 나머지 3개 섹터(1, 7, 8번)도 추가 제작해 2021년말까지 보내야 한다. 4개 섹터를 평균 낸 무게는 약 550톤 내외다. 세계 최대 여객기 A380의 최대 이륙 중량과 비슷하다.
이와 같이 ITER 대형조달품이 일반적 화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 보니 운송 과정 역시 어렵고 까다롭다.
우선, 특수화물 선적이 가능한 대형선박의 운행과 항만, 창고 일정을 섭외해야 한다. 대형화물선이 투입되는 국제물류 특성상 일정이 틀어지면 하루에 수천만 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긴 항해기간 중 조달품의 안전을 담보할 보험은 물론, 해풍으로부터 첨단장비를 보호할 포장과 선박의 화물고정도 완벽히 해야 한다. 또 조달품엔 기울기나 충격 등의 변화가 생기는지를 감시하는 경고장치인 ‘쇼크워치’도 부착한다.
한국의 마산항이나 부산항에서 출발한 조달품은 태평양과 인도양, 지중해를 거쳐 프랑스 남부 마르세이유 인근의 산업항인 포쉬르메르에 도착한다. 통상 30~35일이 소요되나 기상 등의 상황 변화에 따라 보름 이상이 추가될 수 있다.
조달품이 항구에 무사히 도착하면 해당국 조달관리기구의 관계자, ITER 국제기구, 보험사의 참관 아래 제품의 이상 유무를 최종 확인한 뒤 창고에 머물며 본격적인 내륙운송 준비에 착수한다.
포쉬르메르 산업항에서 하루 가량 대기한 ITER 조달품은 다시 바지선에 실려 인공운하를 통해 내륙바다 에땅 드 베르(I’Etang de Berre) 호를 통과하게 된다.

104km 거리는 일반 승용차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다. 하지만 대형 조달품의 경우 ITER 건설현장까지 3일 정도가 소요된다. 운송중 미세 떨림 등을 모두 고려한 속도다.

정기정 ITER 한국사업단장은“이 모습이 느릿느릿 모래사막을 건너는 피라미드 석재의 거대한 이동 행렬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 도로를 이용한 우리나라의 첫 번째 조달품은 한 대당 89톤에 달하는 3대의 CS변압기였다. 우리나라는 ITER 초전도자석 전원공급장치에 필요한 32대의 변압기 중 18대의 조달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