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하를 지나 내륙해로 향하는 ITER 대형 조달품/사진 출처=iter.org
다음 달 중순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의 핵심품목 ‘핵융합로(토카막) 진공용기’의 첫 번째 섹터(6번)가 ITER 건설지인 프랑스 카다라쉬로 운송을 시작한다. 특수선박에 실려 오대양 바닷길과 운하, 전용도로를 통해 입체적으로 이뤄지는 수송작전을 펼쳐 현지에 도달하는 시점은 두 달여 뒤인 7월초다.
ITER는 태양을 본뜬 발전장치이다. 에너지 발생 원리가 태양과 같아 ‘인공태양’이라고도 부른다. 핵융합 발전은 원전과 달리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나오지 않아 가장 안전한 에너지원으로 통한다.
초고온 플라즈마(고온·고압에 의해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기체)를 가두는 역할을 하므로 정밀한 성형과 용접기술을 필요로 한다. 설계상의 복잡한 3차원 형상과 이중벽 구조를 정밀한 치수에 맞춰 제작한 만큼 운송 중에 밀리미터(mm) 수준의 손상도 일어나선 안 된다. 핵융합연 관계자는 “모든 화물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처음 만들어지는 화물이다보니 운송 도중 화물이 손상을 입으면 전체 공정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이 같이 매우 민감한 초대형 부품을 지구 반대쪽에 있는 프랑스까지 어떻게 옮기는지 알아봤다.
현대중공업 기술자들이 핵융합로 진공용기를 제작하고 있다/사진=핵융합연
25일 핵융합연에 따르면 ITER의 주장치와 주변 장치들은 합쳐 약 2만3000톤에 이른다. 에펠탑 3개와 맞먹는 무게다. 우리나라는 6번 섹터를 보낸 이후 나머지 3개 섹터(1, 7, 8번)도 추가 제작해 2021년말까지 보내야 한다. 4개 섹터를 평균 낸 무게는 약 550톤 내외다. 세계 최대 여객기 A380의 최대 이륙 중량과 비슷하다.
이와 같이 ITER 대형조달품이 일반적 화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 보니 운송 과정 역시 어렵고 까다롭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우선, 특수화물 선적이 가능한 대형선박의 운행과 항만, 창고 일정을 섭외해야 한다. 대형화물선이 투입되는 국제물류 특성상 일정이 틀어지면 하루에 수천만 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긴 항해기간 중 조달품의 안전을 담보할 보험은 물론, 해풍으로부터 첨단장비를 보호할 포장과 선박의 화물고정도 완벽히 해야 한다. 또 조달품엔 기울기나 충격 등의 변화가 생기는지를 감시하는 경고장치인 ‘쇼크워치’도 부착한다.
한국의 마산항이나 부산항에서 출발한 조달품은 태평양과 인도양, 지중해를 거쳐 프랑스 남부 마르세이유 인근의 산업항인 포쉬르메르에 도착한다. 통상 30~35일이 소요되나 기상 등의 상황 변화에 따라 보름 이상이 추가될 수 있다.
조달품이 항구에 무사히 도착하면 해당국 조달관리기구의 관계자, ITER 국제기구, 보험사의 참관 아래 제품의 이상 유무를 최종 확인한 뒤 창고에 머물며 본격적인 내륙운송 준비에 착수한다.
포쉬르메르 산업항에서 하루 가량 대기한 ITER 조달품은 다시 바지선에 실려 인공운하를 통해 내륙바다 에땅 드 베르(I’Etang de Berre) 호를 통과하게 된다.
1,000톤급의 장비를 싣기 위해 특수제작된 초대형 트레일러/사진=ITER 국제기구
104km 거리는 일반 승용차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다. 하지만 대형 조달품의 경우 ITER 건설현장까지 3일 정도가 소요된다. 운송중 미세 떨림 등을 모두 고려한 속도다.
호위 차량들과 함께 ITER 전용도로를 달리는 대형조달품/사진 출처=iter.org
정기정 ITER 한국사업단장은“이 모습이 느릿느릿 모래사막을 건너는 피라미드 석재의 거대한 이동 행렬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 도로를 이용한 우리나라의 첫 번째 조달품은 한 대당 89톤에 달하는 3대의 CS변압기였다. 우리나라는 ITER 초전도자석 전원공급장치에 필요한 32대의 변압기 중 18대의 조달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