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일왕 즉위]'전후세대' 첫 일왕 나루히토…평화 행보 기대

뉴스1 제공 2019.10.2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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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개국 대표단 등 2000여명 참석 예정
'상징적' 한계에도 對국민 영향력…아베 '견제' 가능할까

나루히토 일왕(왼쪽)과 부인 마사코 왕비 <자료사진> © 로이터=뉴스1나루히토 일왕(왼쪽)과 부인 마사코 왕비 <자료사진>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장용석 기자 = 제126대 일왕 나루히토(德仁·59)의 즉위를 공식 선포하는 행사가 22일 열린다.

NHK·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5월 부친 아키히토(明仁) 상왕(86)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나루히토 일왕은 이날 오후 1시 고쿄(皇居·일본 왕궁) 내 영빈관 '마쓰노마'(松の間)에서 거행되는 '즉위례(卽位禮) 정전(正殿) 의식'을 통해 자신의 즉위 사실을 대내외에 알리고 각국 사절단을 비롯한 내외빈으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는다.



'즉위례 정전 의식'은 약 30분간에 걸쳐 진행되며 174개 국가·지역 대표단을 포함한 20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이 자리에서 일본 정부를 대표해 나루히토 일왕 즉위를 축하하는 연설을 하고 입법·사법부 수장 등 다른 정부 요인들과 함께 '만세 3창'을 하게 된다.



고쿄 인근 기타노마루(北の丸) 공원에선 이날 나루히토 일왕 즉위를 축하하는 자위대의 예포 발사(총 21발)도 이뤄진다.

일왕은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전 메이지(明治) 헌법 하에선 '국가원수로서 통치권을 총람하는' 절대군주였으나, 1946년 제정된 현행 헌법에선 '국정에 관한 권능(權能·권리를 주장하고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않는' 상징적 존재로서의 지위만 갖는다.

그러나 정권에 따라 바뀌는 총리와 달리 일왕은 '종신 재위'를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에 대한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2차 대전을 직접 겪은 '전쟁 세대' 아키히토 상왕은 지난 1990년 일왕 즉위 선포 행사에서 "헌법을 준수하고 일본과 일본 국민의 통합 상징으로서 책무를 다하겠다"고 약속한 이래 재위 기간 중국·사이판·필리핀·팔라우 등 과거 일본이 저지른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을 찾아 전몰자를 위령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일본은 평화를 지향하는 나라'라는 인식을 일반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

나루히토 일왕도 즉위 후 처음 엄수된 올 8월15일 2차 대전 전몰자 추도식에서 부친과 마찬가지로 과거사에 대한 '깊은 반성'을 언급, 이 같은 평화주의 행보를 이어갈 것이란 기대가 적지 않은 상황.

그러나 아베 총리가 최근 50%대 안팎의 높은 여론 지지율을 바탕으로 우경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상징적 일왕'인 나루히토가 그 '견제자' 역할까지 수행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지난 8월15일 일본 도쿄 부도칸에서 열린 태평양전쟁 종전 제74주년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한 나루히토 일왕 부부(위)와 아베 신조 총리(아래) © 로이터=뉴스1지난 8월15일 일본 도쿄 부도칸에서 열린 태평양전쟁 종전 제74주년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한 나루히토 일왕 부부(위)와 아베 신조 총리(아래) © 로이터=뉴스1
아베 총리는 올 2차 대전 전몰자 추도식에서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면서도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 사실에 대한 반성이나 책임을 거론하지 않은 채 넘어갔다.

역대 일본 총리들은 전몰자 추도식에서 일본의 가해 책임 등을 거론해왔지만, 아베 총리는 2012년 말 재집권 이후 7년째 관련 언급을 외면하고 있다.

대신 아베 총리는 '전후(戰後·일본의 2차 대전 패전 이후) 세대' 첫 일왕 나루히토의 즉위에 따라 새 연호(레이와·令和)가 제정되자 "새 시대, 새 나라의 모습을 만들어가자"면서 자위대 합헌화 등 헌법 개정을 위한 여론몰이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는 이번 나루히토 일왕 즉위 선포를 계기로 교통법규 위반 등 경범죄 사범을 중심으로 약 55만명의 사면·복권을 결정, "일왕 즉위 관련 행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사면·복권 대상자 중엔 공직선거법 위반 사범도 430명 가량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이외에도 이번 일왕 즉위 선포식을 계기로 25일까지 나흘 간 한국의 이낙연 국무총리와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 왕치산(王岐山) 중국 국가부주석, 일레인 차오 미국 교통부 장관을 비롯한 50여개 나라 대표단과 연쇄 회담을 하기로 하는 등 '외교적 선전'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일본 내 일각에선 일왕 즉위 관련 행사가 전통신앙 '신토'(神道) 의례에 따라 진행되는 점 때문에 "헌법상 국민주권·정교(政敎)분리 등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베 총리에겐 이 같은 위헌 시비 자체가 개헌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한 논거로 이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 아사히신문은 21일자에서 "'즉위례 정전 의식'의 위헌 시비에 대해 일본 정부는 일찌감치 '전례'를 따르기로 결정했지만, 앞으로 국회 논의를 거쳐 헌법에 부합하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일본 왕실 연구자의 견해를 소개하기도 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22일 즉위 선포 행사 뒤엔 오후 6시부터 고쿄 내 규덴(宮殿·궁전)에서 각국 사절단을 참석 대상으로 하는 연회를 연다. 일왕 주최 연회는 참석 대상을 달리해 25일과 29일·31일 등 3차례 더 진행된다.

나루히토 일왕은 당초 즉위 선포식 뒤 도심 카퍼레이드도 계획했었으나 지난 12~13일 동일본 지역을 휩쓸고 간 제19호 태풍 '하기비스' 관련 피해를 이유로 내달 10일로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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