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만 쏙 빼고, 볼턴·폼페이오에 바이든 저격한 北 속내는?

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2019.05.2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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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김정은 독재자" 바이든 측과 설전...비핵화 협상, 트럼프 행정부가 北유리 셈법 반영된듯

【필라델피아=AP/뉴시스】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첫 공식 유세에 나섰다. 그는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분열의 정치를 비난하며 "누군가는 민주당원 중엔 공화당과의 통합에 대해 듣고 싶어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고 말한다"면서 "그러나 나는 이를 믿지 않는다. 민주당이 원하는 것은 국가의 통합이다"고 말했다. 2019.05.19.【필라델피아=AP/뉴시스】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첫 공식 유세에 나섰다. 그는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분열의 정치를 비난하며 "누군가는 민주당원 중엔 공화당과의 통합에 대해 듣고 싶어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고 말한다"면서 "그러나 나는 이를 믿지 않는다. 민주당이 원하는 것은 국가의 통합이다"고 말했다. 2019.05.19.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대 정적은 민주당 유력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이다.

미국 의회전문지 더힐은 22일(현지시간) 바이든 전 부통령(33%)이 민주당 내 경쟁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14%)을 지지율 2배 이상으로 앞섰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플로리다 애틀랜틱 대학(FAU)은 미국 대선의 핵심 승부처인 플로리다주 유권자를 대상을 한 가상대결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전 부통령이 50대50의 호각세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金 독재자"에 "멍청이" 응수, 바이든 캠프 "北, 트럼프 선호" 설전

이런 바이든 전 부통령을 북한이 저격하면서 연일 설전이 이어지고 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폭군'과 '독재자'로 지칭한 후 북한 매체가 "지능지수가 모자라는 멍청이"라고 원색 비난을 쏟아내자, 김 위원장과 트럼프의 '밀월'을 거론하며 양쪽을 싸잡아 비판하는 바이든 캠프의 반응이 또 나왔다. 의도했건, 아니건 북한이 미국의 대선판에 등장해 '반(反) 바이든 전선'에 선 형국이다.



2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캠프의 앤드루 베이츠 신속대응국장은 "트럼프는 평양의 살인적 정권에 반복적으로 속아 큰 양보를 해왔지만 대가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두 차례 정상회담에도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 한 북미 정상을 함께 공격한 것이다.

베이츠 국장은 "북한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남아 있는 것을 선호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비핵화 협상을 이어가되, 판을 유리하게 짜려는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을 도와 바이든 전 부통령을 '저격'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앞서 바이든 전 부통령은 지난 18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첫 공식 유세에서 "우리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김정은과 같은 독재자와 폭군을 포용하는 국민인가.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자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1일 논평을 내고 바이든 전 부통령이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통신은 "감히 우리의 최고존 엄을 건드리는 자들에 대해서는 그가 누구든 절대로 용서치 않고 끝까지 계산할 것(갚아줄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존 볼턴 백악관 NSC 보좌관이 13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회담에 앞서 기자들을 만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AFP=뉴스1  (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존 볼턴 백악관 NSC 보좌관이 13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회담에 앞서 기자들을 만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AFP=뉴스1
◇'하노이 노딜' 이후 "폼페이오 교체하라", 볼턴엔 "멍청해 보여"

바이든 전 부통령의 인격을 겨냥하거나 미국 대통령으로서 자질 부족을 거론하는 말폭탄도 쏟아냈다.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초보적인 품격도 갖추지 못한 속물의 궤변"이라고 했다. "미국 내에선 그의 출마를 두고 지능지수가 모라자는 멍청이라는 조소가 그치지 않는다"며 "지난 대선에서 두 번이나 미끄러진 이유나 깊이 되새겨 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북한이 김 위원장을 겨냥한 비판 발언에 거친 언사로 응수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014년 줄리 비숍 당시 호주 외무장관이 "김정은 위원장은 자국민을 빈곤하게 만들고 학대하고 있다"고 하자 북한은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달 18일엔 북미 고위급 협상 대표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맹비난하며 교체를 요구하기도 했다. 앞선 지난달 9일(현지시간) 폼페이오 장관이 미 상원 세출위원회 소위원회에서 김 위원장을 '독재자'(tyrant)라고 한 지적에 동의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 걸 문제 삼았다.

트럼프 행정부 내 슈퍼 매파로 대북 강경 기조를 대변하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타깃이 됐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볼턴 보좌관이 '하노이 노딜' 이후 최대한의 대북제재 압박과 '일괄타결 빅딜' 수용을 거듭 촉구하자 지난달 20일 "두 수뇌분들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말하라"며 "멍청해 보인다"고 힐난했다.

북한에 공개 저격당한 미국 인사들은 대북 강경파거나 비핵화 협상 회의론자란 공통점이 있다. 북한의 말폭탄 대상에 김 위원장과의 개인적 신뢰와 '케미(궁합)'를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만 쏙 빠져 있는 이유다.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뉴스1) 이재명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현지시각) 오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역에 도착해 사열을 위해 모자를 손에 들고 있다. 2019.4.26/뉴스1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뉴스1) 이재명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현지시각) 오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역에 도착해 사열을 위해 모자를 손에 들고 있다. 2019.4.26/뉴스1
◇"대선시즌, 北문제 후순위"…트럼프와 '톱다운' 해결 절박감

북한이 북미 대치 장기화 국면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까지 타깃으로 삼은 데 대해선 '절박감'의 방증이란 해석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대북 유화 발언을 이어가는 '비둘기파'는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이 유일하다. 김 위원장으로선 1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북제재 해제와 체제보장 등 당근을 받아내는 게 최선이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재선을 위해선 북미 비핵화 협상의 외교적 성과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많다. 김 위원장이 연말을 시한으로 미국에 '새 계산법'을 요구한 배경이다. 교착 상태가 장기화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협상에 유리할 것이란 전략적 셈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부통령 등 민주당 정권이 들어설 경우 북미 협상 자체가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서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난해 1차 북미정상회담 당시 막후 협상을 주도했던 앤드루 김 전 미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의 말이다. 2000년 빌 클린턴 행정부와 북한이 추진하던 북미 수교 등 화해 분위기가 그 해 11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로 중단됐던 전례를 김 위원장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논쟁거리를 양산해 미국 정치판에서 북한 문제를 선순위로 앞당기려는 목적도 있어 보인다. 미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고 이란 문제 등이 미국 대외정책의 들머리를 차지하면서 워싱턴 조야에서 북한 문제가 후순위로 밀리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고 한다.

국회 한미 의회 외교포럼 소속 여야 의원들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2월(하노이 회담) 이전까지는 북핵 문제가 미 조야의 우선순위였는데 이번에 와서 보니 굉장히 후순위로 밀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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