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세]경상도 음식이 맛없다구요? 고디국과 장어국의 추억

머니투데이 김경환 기자 2019.01.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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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의 맛으로 보는 세상]1회

편집자주 맛있는 음식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정보를 나누는 것을 더할 나위 없이 좋아합니다. 저의 미식 경험은 보잘 것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맛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압니다. 과하게 달거나 맵지 않은 균형 잡힌 음식은 삶의 원동력이자 즐거움입니다. 추억과 정이 깃든 다양한 음식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맛으로 보는 세상'(맛보세)으로 여러분께 다가가겠습니다.

경상도에서 고디국으로 불리는 다슬기국경상도에서 고디국으로 불리는 다슬기국


'고디국'과 '장어국'을 아시나요. 지방마다 음식 재료를 다루는 특색이 있지만 이번엔 경상도 얘기를 하려 합니다.

요즘 미디어의 발달과 여행객의 발길이 많아지며 전국적으로 맛의 평준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990년대 까지만 해도 경상도 음식은 맛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맛의 평준화가 진행되면서 요즘은 서울에서 먹는 음식과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전주에서 먹는 음식과 맛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투박했던 경상도의 음식이 많이 세련돼 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지방의 특색을 나타내는 요리법은 존재합니다. 경상도에서 제가 좋아하는 추억의 음식은 경상북도의 고디국과 경상남도의 장어국입니다.



고디는 다슬기의 경상도식 방언입니다. 충청도에서는 올갱이라고 합니다. 경상도에서는 다슬기국을 고디국이라고 부릅니다. 쌀가루와 들깨, 배추, 부추, 대파 등을 듬뿍 넣어 끓입니다. 다양한 건강 재료가 들어가다 보니 영양 면에서도 아주 뛰어납니다. 아욱과 부추, 된장을 풀어 끓이는 우리가 자주 접하는 충청도식 올갱이국과는 전혀 다른 맛입니다.

고디국을 처음 접하는 서울 사람들도 "이런 국이 있었어?"라고 말할 정도로 불호(不好)가 적은 맛입니다. 하지만 요즘엔 경상도에서도 먹기 힘들어진 맛이라고 합니다. 왜냐면 끓이는데 정성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다슬기를 삶아 하나 하나 까야 하고, 부추와 배추 등 들어가는 재료를 따로 삶아 넣는 요리법이 매우 번거롭습니다.



어릴때 경북 영천시에 위치한 할어버지 집에 가는 걸 좋아했습니다. 서울에서 손자가 온다고 고디국을 한 냄비 끓여놓고 기다리셨죠. 어릴 때부터 고디국 맛을 본 것은 저에게 행운이었습니다. 이후 어머니도 조리법을 배워 가끔 장에 다슬기가 보이면 사다가 집에서도 끓여주셨습니다.

한때 서울에도 경상도식 고디국을 파는 식당(풍류사랑)이 종로구 인사동 인근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안타깝게도 사라진 듯 합니다. 경상북도에서도 이제는 영천, 포항 등 일부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습니다. 전통의 맛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향이 강한 방아잎이 들어간 경상도식 장어국. 장어를 갈아 넣어 보이지는 않는다.향이 강한 방아잎이 들어간 경상도식 장어국. 장어를 갈아 넣어 보이지는 않는다.

장어국도 경상도와 전라도의 차이가 큽니다. 경상도의 장어국은 바다장어를 갈아 향기로운 방아잎과 배추, 부추, 토란대, 숙주나물, 파, 머위, 고사리 등 신선한 재료(지역마다 재료는 틀림)를 듬뿍 넣어 끓입니다. 마산. 진주 등 경남 해안가 지역에서 주로 맛볼 수 있습니다. 방아잎만이 가진 오묘한 맛은 중독성이 큽니다. 얼큰하게 끓여내는 여수식 장어국(탕)과는 차이가 있답니다.

어렸을때 아버지 직장 때문에 경남 진해에서 몇년 살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이웃에게 배워 처음 끓여준 장어국은 정말 충격적으로 맛있었습니다. 어머니께 "장어국, 장어국"이라고 요구하던 말이 입에 붙었을 정도입니다. 어머니께서 끓여주던 향긋하고 구수한 경상도식 장어국의 맛은 어른이 된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요즘 서울에선 전라도식 장어국을 맛볼 수 있는 곳은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상도식 장어국을 맛볼 수 있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서초구 서초동 인근 산호라는 음식점에서 방아잎을 넣은 경상도식 장어국을 요리하고 있습니다. 가끔 들러 추억의 맛을 떠올리기 좋은 곳입니다.

어머니께서 건강이 좋지 않으면서 어릴 때부터 즐기던 추억의 맛에 대한 그리움이 한층 깊어 집니다. 따뜻한 고디국이나 장어국 한 그릇에 밥을 뚝딱 말아 한 그릇 배부르게 먹고 싶습니다. 어릴때 느꼈던 그 기분을 다시 한번 경험해보고 싶은 추운 겨울날입니다. 아! 다시 보니 고디국과 장어국의 모습이 매우 닮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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