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의 언어, 8㎏의 초콜릿, 1500개 맥주 브랜드의 나라

머니투데이 브뤼셀(벨기에)=이재은 기자 2018.11.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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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의 그 나라, 벨기에 그리고 EU ②] 다양한 매력 존재하는 '국제 국가' 벨기에

편집자주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2018 벨기에 브뤼셀 스트릿 아트 전시회의 일환으로, 슈퍼마켓으로 가는 길 스트릿 아트가 그려져있다. 왼쪽에 플랑드르 화파의 창시자이자 벨기에의 자랑인 얀 반 에이크의 모습이 보인다. 이 그림은 그의 자화상 '남자의 초상'이다. /AFPBBNews=뉴스12018 벨기에 브뤼셀 스트릿 아트 전시회의 일환으로, 슈퍼마켓으로 가는 길 스트릿 아트가 그려져있다. 왼쪽에 플랑드르 화파의 창시자이자 벨기에의 자랑인 얀 반 에이크의 모습이 보인다. 이 그림은 그의 자화상 '남자의 초상'이다. /AFPBBNews=뉴스1


3개의 언어, 8㎏의 초콜릿, 1500개 맥주 브랜드의 나라
"Bon Soir, Madame?"(좋은 저녁입니다.) "Uhm… Hello." "Ah, Hello." (아, 안녕하세요.)

벨기에 브뤼셀 슈만에서 식당과 카페를 방문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이 같은 인삿말을 받았다. '프랑스어·네덜란드어·독일어'가 공용어인 벨기에인들은 내게 아무렇지 않게 프랑스어로 인삿말을 던지다가, 영어가 나오면 곧바로 영어로 전환해 응대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벨기에인들도 다양한 언어를 쓰게된 셈인데, 그럴 때마다 새삼 'EU(유럽연합)의 수도' 'EU의 심장'이라 불리는 국제 도시 브뤼셀의 명성을 깨닫곤 했다. (☞"너무 강해도, 약해도 별로"… 적당해서 EU 중심국 된 나라 [이재은의 그 나라, 벨기에 그리고 EU ①] 참고) 

물론 브뤼셀이 EU의 수도로 기능하는 데 대해 벨기에 외부나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국외에서는 벨기에가 좋지 않은 과거를 가졌고(이에 크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인종차별이 심각한 국가인데 '평화'를 지향하는 EU를 대표해 수도로 기능하는 게 맞냐는 지적이 나왔다.



벨기에는 콩고에 큰 죄를 저질렀다. 1885년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고무나무가 풍부했던 아프리카 중부 지역 추장들로부터 땅을 빼앗아 콩고자유국을 세우고 주민들을 착취했다. 고무 채취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손목이나 팔뚝을 잘랐고, 가혹한 노동을 못 견디고 도망가면 가족을 인질로 잡아 일가족을 초토화했다. 1908년 레오폴드 2세가 사유지였던 콩고 소유권을 국가에 넘겼는데, 그 전까지 약 20여년간 희생된 콩고인은 최대 1000만명으로 추정된다.
지난 9월7일(현지시간) 기상캐스터 세실 드중가가 인종차별에 대한 고백 후 쏟아지는 응원 메세지에 대해 감사하다고 밝혔다. /사진=세실 드중가 트위터지난 9월7일(현지시간) 기상캐스터 세실 드중가가 인종차별에 대한 고백 후 쏟아지는 응원 메세지에 대해 감사하다고 밝혔다. /사진=세실 드중가 트위터
벨기에의 심각한 인종차별도 'EU 수도 회의론'에 힘을 실었다. 벨기에는 인종차별이 심한 국가로 알려져있는데, 지난 9월 벨기에 국영방송 RTBF의 기상캐스터 세실 드중가는 페이스북에 동영상을 올려 벨기에의 심각한 인종차별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한 여성 시청자로부터 '피부가 너무 까매서 옷밖에 안 보인다'는 전화를 받았다"면서 "지난 1년간 캐스터로 일하는 동안 지속해서 이런 공격에 시달려 왔으며, 심지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방송인 박준형도 벨기에에서 방송을 녹화하던 도중 현지인들에게 인종차별을 당해 화제가 됐었다.
지난 3월2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인종차별 철폐를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AFPBBNews=뉴스1지난 3월2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인종차별 철폐를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AFPBBNews=뉴스1
벨기에가 EU의 중심국으로 기능하는 데 대해 벨기에 국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있다. 주로 EU 기관과 제반 시설·관료 유지를 위해 들어가는 세금을 우려하는 시각과, EU의 수도로서 상징적인 브뤼셀이 테러를 받게된 데 대한 불만이다.

이 같이 복잡다난한 이야기를 가진 벨기에지만, 현재 벨기에는 다양한 민족·다양한 언어를 가진 나라로서 독특한 매력을 뽐내고 있다. 프랑스·이탈리아·독일 등 굵직한 유럽 국가들과는 다른, 미묘한 매력과 이야기가 있는 나라다.


이번 편은 벨기에 관련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하며 마치려한다. 브뤼셀과 브뤼헤(Bruges·브뤼주. 서유럽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운하 도시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서 음식을 먹으며 든 여러 생각들이다.
1895년 벨기에 스파시 전경 /사진=위키커먼스1895년 벨기에 스파시 전경 /사진=위키커먼스
◇"생수 마시며 온천 생각 간절"…스파(SPA) 생수

벨기에에서 생수를 마실 때마다 온천 생각이 간절해졌다. 벨기에에서 인기있는 생수 브랜드 이름이 SPA(스파)라서다. 스파 생수는 세 종류로 판매되는데 빨간색 뚜껑에는 강한 탄산이 들어있는 탄산수, 민트색 뚜껑에는 약한 탄산수, 파란색 뚜껑에는 일반 생수가 담겨있다.

벨기에에서 스파 생수를 마실 때 마다 그 이름 때문에 '그놈 이름 참 특이하네'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나중에 알게된 것이지만, 이런 연상 작용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이 스파가 그 스파의 유래였다.
3개의 언어, 8㎏의 초콜릿, 1500개 맥주 브랜드의 나라
'스파'는 벨기에의 유명 온천휴양지로, 리에주 남동쪽에 위치한 한 시(市)의 이름이다. 이 지역은 14세기 초반부터 좋은 물이 나와 유명해졌다. 길버트 림보(리에주 주교의 개인 주치의)가 '아르덴 숲의 샘'(1559)이라는 저서를 통해 스파에서 나는 물을 강력 추천했는데, 이 책이 라틴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 등으로 번역되면서 명성을 얻었다. 이후 1547년 영국 헨리 8세와 1654년 영국 찰스 2세, 1717년 차르 표트르 1세가 건강을 위해 스파에 머무르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후 벨기에 스파의 이름을 따서 영어 단어 'spa'(스파·목욕시설과 미용시설을 비롯하여 심신안정을 위한 다양한 시설 등이 갖추어진 곳)라는 일반 명사가 생기게 됐다. 영어 단어 'bath'(목욕)이 로마시대 온천으로 유명한 도시 바스에서 비롯했듯이 말이다.

◇'프랄린'의 원조… "초콜릿 강대국 벨기에"

벨기에는 고디바·노이하우스·마콜리니·레오디나스·갤러·길리안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콜릿 브랜드를 다수 가진 국가다.

벨기에 소비자단체연구정보센터(CRIOC)에 따르면, 벨기에는 국민 1인당 연간 8㎏의 초콜릿을 소비한다. 스위스, 영국, 오스트리아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초콜릿 산업의 규모도 크다. 지난해 기준 초콜릿 판매량은 35억 파운드(약 5조1800억원)로 총 벨기에 식품 판매량의 9%를 차지한다. 벨기에 국내 초콜릿 생산량은 연간 73만톤이고 관련 분야 종사 수는 7600명, 관련 기업 수는 264개사다. 수출액도 연간 3조원을 훌쩍 넘는다.
벨기에 프랄린 초콜릿 /사진=위키커먼스벨기에 프랄린 초콜릿 /사진=위키커먼스
벨기에에서는 편의점이나 슈퍼마켓보다 초콜릿 전문점을 더 찾기 쉽다. 아주 조그마한 동네에도 초콜릿 전문점은 두 세개씩 위치해있어서다. 경상남북도 크기에 불과한 조그마한 나라에 초콜릿 상점수가 2000개를 넘으니 어쩌면 당연하다.

벨기에인들에게 초콜릿은 특별하다. 이들을 지켜보고 있자면, 단순히 초콜릿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초콜릿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낀다는 걸 알 수 있다. '프랄린' 덕택이다. 본래 아프리카 대륙의 카카오를 이용해 초콜릿으로 만드는 데 관심이 있던 국가는 스페인이었다. 하지만 1870년 찰스 노이하우스가 벨기에 최초 초콜릿 회사 '코트도르'를 설립하고 1912년 그의 아들 장 노이하우스가 '프랄린'을 만들면서 벨기에 초콜릿의 새 역사가 시작됐다.

영어권에서는 초콜릿 쉘, 불어권에서는 봉봉이라고 불리는 벨기에 프랄린은 견과류·누가·가나슈·크림·카라멜·버터·리큐어 등을 초콜릿으로 감싼 것이다. 장 노이하우스가 만든 프랄린이 유럽 전역에서 '대박'을 치면서 브뤼셀로 가는 열차는 항상 만원이었다고 한다. 프랄린의 성공으로 초콜릿 업체 '노이하우스'는 세계 3대 초콜릿 업체 중 하나이자 벨기에의 공식 왕실 납품 업체로 거듭났다.

재미있는 건 처음 장 노이하우스가 프랄린을 만든 이유다. 당시 유럽에서는 카카오의 약효적 성분에 주목했기에 초콜릿을 약국에서 판매했다. 카카오에 있는 '폴리페놀' 성분은 노화를 예방하고 혈관 및 심장 질환을 예방해준다. 브뤼셀에서 약국을 경영하던 약사 장 노이하우스는 어떻게 하면 쓴 약을 환자들이 덜 쓰게 먹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프랄린을 개발했다. 입에서 스르륵 녹는 벨기에 프랄린을 맛보고 나면 벨기에인들의 초콜릿 자부심을 이해할 수 있다.
노이하우스 프랄린 /사진=노이하우스 홈페이지노이하우스 프랄린 /사진=노이하우스 홈페이지
그런데 요즘 벨기에인들의 초콜릿 자부심에 스크래치가 나고 있다. 아무리 국제화 시대라지만 진짜 '벨기에 초콜릿'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이제 몇 남지 않아서다.

1984년부터 벨기에 왕실에 납품하고 있는 '갤러'는 카타르 왕가에 팔렸다. 카타르 국왕 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가 갤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코트도르'와 '뫼리스'는 오레오 쿠키와 리츠 크래커 등을 생산하는 다국적기업 몬델레즈 인터내셔널에 팔렸다.

뿐만 아니다. 길리안은 한국의 롯데제과의, 고디바는 터키의 대형 식품제조업체 일디츠 홀딩스의 소유가 됐다. 대부분의 회사는 그대로 벨기에에 생산 공장을 두는 등 바뀌는 게 없다고 주장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술이 담긴 리큐어 프랄린으로 유명했던 고디바가 무슬림 국가 터키의 것이 된 뒤 더 이상 이를 생산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고디바는 지난 4월부터 이 제품의 생산을 중단했고, 이제 전 세계 80여국의 매장 500여곳 모두에서 리큐어 프랄린을 살 수 없다.

◇'식수 부족 사태'가 만들어낸 '명품 맥주'

벨기에는 맥주로 유명하다. 우리가 아는 벨기에 맥주만 해도 레페·스텔라아르투아·호가든 등 상당히 많다.

벨기에인들은 1인당 맥주 소비량이 연간 80리터 수준으로 서유럽에서 가장 높다. 벨기에 곳곳에서 이들의 맥주 사랑을 느낄 수 있는데, 매 식사 때마다 맥주를 곁들여 먹고 시내에는 맥주 전문 마트가 즐비하다. 이렇다보니 맥주 맛에 대한 평가도 매우 까다로워서, (한국에서는 맛있는 맥주라고 평가받는) 네덜란드의 하이네켄도 벨기에에서는 호평받지 못한다. 다행히 벨기에에만 168개의 브루어리(양조장), 1500여개의 맥주 브랜드가 존재해 이들의 까다로운 취향을 충족한다.
로슈포르 트라피스트 맥주 /사진=위키커먼스로슈포르 트라피스트 맥주 /사진=위키커먼스
벨기에 맥주 중엔 독특한 맛과 향을 가진 게 많다. 벨기에는 독일의 맥주 순수령(1516년 독일의 빌헬름 4세가 맥주의 품질 유지를 위해 보리·홉·물 이외의 원료를 사용할 수 없게 규제)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허브·과일·약초·초콜릿·커피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킬 맥주를 만들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벨기에인들이 맥주를 많이 마시게 된 경위다. 이는 벨기에의 수도원 맥주가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이유와 맞닿아있다. 중세유럽에서 유럽의 대다수 국가들은 안전한 식수를 충분히 공급받지 못했다. 흑사병이 유럽을 휩쓴 14세기 식수가 더욱 절박하게 필요했다. 이에 당시의 지식인층인 수도원들은 당시 전통적인 방식으로 맥주를 만들어 일반인들이 오염된 식수 대신 음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트라피스트 맥주'의 명맥이 현재까지 유지되면서 벨기에 맥주가 세계적 명성을 얻는 데 기여했다. '트라피스트' 맥주를 생산하는 수도원은 전세계 12군데에 불과한데, 그 중 6곳이 벨기에에 위치한다. 시메이·아헬·로슈포르·오발·베스트블레테렌·베스트말레다.
브뤼헤 '드 할브만 브루어리'의 '조트 맥주' /사진=이재은 기자브뤼헤 '드 할브만 브루어리'의 '조트 맥주' /사진=이재은 기자
벨기에 맥주는 명성대로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건 그 맛 보다 브뤼헤 '드 할브만' 양조장 관계자가 해준 이야기다. 그는 "우리 벨기에는 뛰어난 맥주 제조 기술을 갖고 있고, 전국에 양조장도 수백개에 이릅니다. 원래는 이 브뤼헤 한 곳에만 수십개에 달하는 양조장이 있었는데, 제 1·2차 세계대전을 지나며 모두 파괴돼 이제 브뤼헤에는 저희 양조장 하나밖에 남지 못했습니다"라며 맥주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강조했다.

뇌리에 남은 건 이 뒤의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랑하는 맥주를 계속 마시려면, '평화'와 그 '평화의 상징' EU를 수호해야겠지요." 'EU의 심장' 국가 벨기에에 살고 있는 벨기에인 답게 매 순간 EU를 떠올리는구나 싶었다. 이제 맥주를 마실 때마다 EU가 생긴 이유(☞"너무 강해도, 약해도 별로"… 적당해서 EU 중심국 된 나라 [이재은의 그 나라, 벨기에 그리고 EU ①] 참고) 가 매번 떠오를 것 같다.

☞ [이재은의 그 나라, 인도네시아 그리고 화교 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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