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201·232·301' 암호 같은 숫자의 비밀은…트럼프의 '듣보잡' 무역병기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2018.06.05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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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는 무역전쟁]⑤쓰지 않던 보복카드까지 꺼내들어…환율조작국 압박도 계속

편집자주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 선포로 세계경제가 유례없는 야만의 시대를 맞고 있다. 각국의 무역 분쟁을 조정하는 WTO체제도, 우방과 동맹도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오로지 자국 우선주의만 있을 뿐이다. 트럼프發(발) 세계 무역전쟁 지도를 정리한다.

[MT리포트]'201·232·301' 암호 같은 숫자의 비밀은…트럼프의 '듣보잡' 무역병기


국경을 넘나드는 무역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교역에 참여하는 모든 나라가 준수하는 통일된 '규칙'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나라마다 다른 규정과 주장들로 국제무역은 곧 뒤죽박죽이 될 것이 분명하다. 세계무역기구(WTO)가 바로 이 무역 규칙을 만들고 회원국들이 이를 잘 지키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국제기구다. 현재 세계 무역의 97%이상을 차지하는 150여개 나라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으며, 나머지 국가들도 대부분 가입을 원하고 있다.

미국은 1995년 WTO 출범을 주도했으며, 이후 줄곧 WTO 체제의 수호자를 자처해왔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WTO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교역상대국에 무역 제재를 가하기 시작한 것. 이런 조치의 법적 근거는 무역법, 무역확장법 등 WTO 체제가 시작되기 한참 전인 60~70년대 제정된 조항들이다. 다시는 사용되지 않을 것 같던 낡은 법이 미국의 이익 극대화를 노리는 트럼프의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스러운)' 비밀병기가 된 셈이다.



◇세이프가드로 특정 수입품 노리는 무역법 201조

트럼프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칼'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 1월이다. 당시 한국과 중국산 태양광 패널, 세탁기에 대해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를 시행했다. 이때 내세운 근거가 1974년 제정된 무역법 201조로 특정 품목의 수입이 급증해 국내 업계에 심각한 피해가 예상되면 수입을 긴급 제한하고 고율 관세를 부과한다. WTO가 인정하는 무역장벽이지만 2002년 이후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 교역상대국과의 무역 마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안보 명분 일방적 제재하는 무역확장법 232조…트럼프가 22년 만에 되살려

무역확장(확대)법 232조는 세이프가드보다 더욱 강력한 무기다. 미국 정부가 국가안보를 침해한다고 판단되는 수입품에 대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일방적인 전방위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다. 이 법안은 1962년 냉전시대에 마련됐는데 1995년 WTO 발족이후 사실상 사문화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22년 만에 되살아났다.

미국이 지난 1일 0시부터 유럽연합(EU)과 캐나다, 멕시코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강행한 결정도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확장법 232조의 적용범위를 자동차로도 확대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상무부에 수입 자동차와 자동차부품이 미국 내 관련 업계에 미치는 영향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가 끝나면 한국과 일본, 독일산 자동차에 대해 고율 관세가 부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강력한 제재 수단 '슈퍼 301조'…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원흉

통상법 301조에 포함되는 '슈퍼 301조'는 미국이 가진 가장 강력한 보복수단으로 여겨진다. 품목·분야별로 대상이 한정된 '일반 301조', 지식재산권 침해만을 겨냥한 '스페셜 301조'와 달리 슈퍼 301조는 최대 100%에 달하는 보복관세 부과, 수입 쿼터 실시, 용역에 대한 제한 및 부과금 적용 등 무차별적인 공격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WTO도 무시한다. 일본을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장기 침체에 빠뜨린 것도 바로 이 법이다.

슈퍼 301조는 원래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때 한시적(1989년~1990년)으로 적용된 법이었으나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다시 시행할 수 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세 차례 부활시켰으나 이후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

◇'환율판 슈퍼 301조'…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제재

미국은 환율도 무역 제재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재무부가 반기별로 환율보고서를 발표하고 환율조작국을 지정한다. 이후 해당 국가에 대한 자금 지원이나 미국 연방정부의 공공입찰 배제 등의 제재를 가한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의 근거는 2015년 제정된 무역촉진법 가운데 제7편 환율 관련 부분이다. 발의자의 이름을 따서 '베넷-해치-카퍼(BHC) 법안'으로도 불린다. 이 법은 '환율판 슈퍼 301조'로 불릴 정도로 강력하며 미국이 자신의 기준으로 환율조작 여부를 판단해 일방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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