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8조원 가계금융자산 어떻게 늘려갈 것인가?

머니투데이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 2018.05.1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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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대표

작년 말 우리나라의 가계금융자산 규모는 3668조원에 달했다. 1987년 말 99조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30년 사이에 37배 늘었다. 고성장,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특별한 노력 없이도 매년 고율의 증가율을 보인 것이다. 그런데 이 증가율이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둔화되고 있다. 지난 30년간 연평균 증가율을 10년 간격으로 계산해 보면 21%=>11%=>8%대로 낮아졌다.

3668조원 가계금융자산 어떻게 늘려갈 것인가?


경제가 고성장하고 금융자산 축적이 그리 많지 않던 시기는 각 가정에서 근로·사업소득이 얼마나 늘어나는가에 관심이 많고 금융자산의 효율적인 운용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저성장기에는 근로·사업소득이 잘 늘지 않는다. 예금금리 저하로 종전과 같이 높은 금리수입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동안 축적해 온 금융자산의 효율적인 운용방법을 적극 찾아볼 수 밖에 없다.



가계금융자산의 축적과 효율적 운용이라는 측면에서 일본과 미국 사례는 대비된다. 1987년에서 2017년 사이에 일본의 가계금융자산은 2.2배로 늘어난 반면 미국의 가계금융자산은 6배 늘었다.

그 결과 30년 전에는 세계 1위인 미국의 가계금융자산 규모가 2위인 일본의 1.9배였는데 지난해 말에는 4.7배로 확대됐다. 일본경제의 장기불황으로 소득이 늘지 않아 소득에서 금융자산으로 자금이 유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가계금융자산 그 자체를 증식시키는 원동력인 투자상품 비율이 지나치게 낮았다는 것 또한 큰 이유였다.



작년 말 일본의 가계금융자산 1880조엔 중 51%는 현금, 예금에 들어가 있다. 절반 이상을 0%에 가까운 무수익 금융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주식이나 투신펀드 등으로 보유하고 있는 비율은 18%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미국은 80.4조달러 가계금융자산 중 절반 이상을 주식이나 펀드로 보유하고 있다. 연금, 보험 등을 통한 간접 보유분까지 포함하면 70% 가까이 된다. 일본은 간접보유분을 합쳐도 30% 정도에 불과하다.

그 결과 과거 20년간 가계금융자산 전체의 운용에 의한 증가분은 미국이 플러스 132%였던데 비해 일본은 플러스 19%에 지나지 않았다. 두 나라의 포트폴리오 차이가 금융자산 증가의 차이를 가져온 큰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1970년대까지는 일본 못지 않게 현금·예금 비중이 높았다. 1975년 말 55%였던 현금·예금 비중이 지금은 13% 정도로 비중이 낮아지고 그만큼 투자상품 비중이 높아졌다. 금리저하가 가장 큰 이유였다. 각 가정에서는 줄어든 금리수입을 메우기 위해 수익성 높은 해외투자를 하거나 저금리 혜택을 받고 있는 기업의 주식 또는 주식형 펀드의 투자를 늘렸다. 활발한 투자교육을 통해 미국인들이 리스크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 또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일본에서도 1990년대 중반부터 ‘저축에서 투자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투자상품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 정책적 노력을 계속 해왔다. 그러나 현금·예금의 비중은 1995년의 50%에서 작년 말에는 51%로 오히려 소폭 늘어났다. 20년 이상의 노력에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그동안 ‘저축에서 투자로’의 의미를 국민들에게 바르게 전달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반성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투자에 대한 마음가짐도 지식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한 고령세대에게 예금을 해약해 주식이나 펀드를 구입하라고 해온 게 성과보다는 부작용이 더 컸지 않았느냐는 반성이다.

우선 ‘저축에서 투자로’라는 슬로건을 ‘저축에서 자산형성으로’로 바꾸고 금융자산축적은 많지 않더라도 근로수입이 있는 현역세대들이 수입 중에서 소비하고 남은 자금을 저축보다는 투자상품으로 보유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투자상품의 비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투자상품 중에서도 DC형퇴직연금, 개인형퇴직연금, 소액투자비과세제도 등을 통한 간접투자 상품에 비중을 두고 있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의 현역세대들이 DC형연금을 통해 투자에 눈을 떠서 주식이나 주식형펀드시장에 진입한 것과 같은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가정의 금융자산 운용행태 또한 예금금리가 20% 넘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가계금융자산의 절반이 현금·예금이고 고수익이 가능한 투자상품의 비율은 보험·연금을 통한 간접보유분을 합쳐도 30%에 지나지 않는다.

퇴직연금가입자는 상용근로자의 절반을 넘고 개인형퇴직금연금(IRP)이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와 같은 세금우대 상품도 늘고 있지만 이들 자금의 80% 이상은 1%대의 예금금리 상품과 다를바 없는 원금보장형 상품에 들어가 있다. 100세시대의 노후를 책임져줄 소중한 가계금융자산이 대책없이 방치되고 있다. 기업, 근로자, 정책당국, 금융업계 모두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가계금융자산의 효율적인 운용방법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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