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아바나에서 만난 자유인들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17.12.2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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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가 아바나에 머물 때 자주 찾았다는 바 라 보데기타/사진=이호준 여행작가헤밍웨이가 아바나에 머물 때 자주 찾았다는 바 라 보데기타/사진=이호준 여행작가


사회주의 국가는 사람 사는 모습이 획일적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삶에 찌들어있다? 여행은 그런 선입견을 깨고 진실을 가르쳐주는 스승이기도 하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도 여러 번 확인한 사실이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좀 특별해 보일 정도로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어느 바에서는 술에 취한 헤밍웨이와 마주치기도 했다. 생긴 것이나 옷차림이나 하는 ‘짓’이나 내 머릿속에 형성돼 있는 헤밍웨이의 이미지와 완전히 일치했다. 골목길을 걷다가 체 게바라를 만난 적도 있었다. 그땐 나 역시 체 게바라가 즐겨 쓰던 베레모를 쓰고 있었는데, 같은 복장이었던 그는 내게 정중하게 거수경례를 했다. 그와 나는 시에라마에스트라 산맥 어디쯤에서 함께 게릴라 활동을 했던 동지라도 되는 듯 친숙하게 인사를 나눴다. 사회주의 국가 쿠바에도 그렇게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산다. 그들에게서는 어떤 올가미로도 옭아맬 수 없을 것 같은 자유의 냄새가 난다. 막상 내밀한 삶을 들여다보면 통제와 억압이 상존하는 곳인지도 모르겠지만, 여행자인 나는 자유를 먼저 보았다. 그들의 기질 자체가 ‘자유형’인 것 같았다. 어떤 가난과 압제도 그들의 노래와 춤을 막지 못할 것 같았다.



그 노인을 만난 것은 역시 헤밍웨이가 자주 다녔다는 아바나의 작은 바, 라 보데기타에서였다. 그곳은 밤이 깊을수록 흥이 무르익는다. 관광객이든 현지인이든 손에는 모히또가 들려져 있고, 대개는 안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쿠바에서 음악은 묘약과 같아서 죽은 나무도 일어나 춤을 출 것 같았다. 상대만 있으면, 혹은 눈만 마주치면 아무하고나 손을 잡고 돌았다. 구경이나 하려고 서 있는 나야말로 이방인 중의 이방인이었다.

그 흑인 노인은 그중에서도 유난히 ‘튀는’ 존재였다. 한눈에도 그 자리의 오랜 붙박이가 틀림없었다. 쿠바 사람들은 옷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티셔츠 하나면 오케이다. 그런데 이 노인은 달랐다. 하얀 바지에 긴 팔 셔츠에 재킷까지 제대로 갖춰 입었다. 베레모를 썼고, 하얀 수염을 풍성하게 길렀다. 역설적이게도 노인에게는 그 ‘답답한’ 복장이 곧 자유의 상징처럼 보였다. 노인은 시가를 물고 오가는 사람을 구경하며 서 있었다.



라 보데기타 앞에서 춤을 추던 노인과 손자/사진=이호준 여행작가라 보데기타 앞에서 춤을 추던 노인과 손자/사진=이호준 여행작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작은 소년 하나가 노인에게 다가갔다. 여덟 살쯤으로 보이는 아이였다. 역시 흑인이었는데, 혼혈에 가까워 보였다. 특이한 것은 노인과 반대로 온통 검게 입었다는 것이었다. 고인이 된 마이클 잭슨의 복사판이라고나 할까? 보통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복장은 아니었다.

느닷없이 풍경이 바뀌었다. 노인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가 길 가운데로 나서더니 멋지게 노래 한 자락을 뽑는 것이었다. 보통 노래가 아니었다. 변성기가 되기 전의 청량한 목소리와 풍부한 성량. 길에서 보기에는 아까운 수준이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둘러싸고 박수가 쏟아졌다. 노래를 마친 아이가 의젓한 모습으로 인사를 하더니 급조된 관객들과 악수를 나눴다. 여행자 하나가 돈을 쥐어주니, 부끄러운 듯 받더니 얼른 들고 가서 노인에게 맡겼다. 세뱃돈을 탄 아이의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둘은 무슨 관계일까? 혹시 돈을 벌기 위해 나온 걸까? 아이들을 앵벌이 시켜서 돈을 착취한다는 ‘악덕 보호자’가 떠올랐다. 결국 노인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저 아이가 누구예요?”
“하하! 내 손자지.”

그래서 짐작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신이 난 아이가 이번엔 거리 한 가운데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 역시 제대로 교육을 받은 듯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노인도 흥이 올랐는지 길 한가운데 나서서 즉석 춤 교습을 시작했다. 역시 그는 전문가였다. 오랜 세월 춤과 함께해온 관록이 온몸을 물처럼 흘렀다. 누구에게나 스텝을 가르치고 함께 춤을 추었다. 종내는 모든 사람이 어우러져 함께 돌았다.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지. 국적도 피부색깔도 사라지고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만 거기 있었다.

어느 순간 노인과 아이가 슬그머니 군중 속을 빠져나갔다. 즐길 만큼 즐겼으니 떠난다는 말을 뒷모습으로 남기고…. 노래하고 춤추고 가르치고 즐기다 홀연히 돌아서는 사람들. 그들이 떠난 뒤에도 남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했다. 군무에 합류하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한 나 역시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 누리는 것’이라는 문장 하나만 들고도 행복했다. 역시 자유는 많이 갖거나 많이 배운 자들이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가치를 아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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