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병'이자 '대중픽'인 나영석의 백상 예능상

머니투데이 이덕행 기자 ize 기자 2024.05.0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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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JTBC/사진=JTBC


유재석, 기안84, 침착맨, 탁재훈, 그리고 나영석.

TV와 유튜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예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얼굴이다. 그중 가장 이질적인 인물을 꼽아보라면 바로 나영석일 것이다. 앞선 네 사람의 직업이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었다면, 나영석의 직업은 본디 방송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르 이를 '홍대병'이라고 표현했지만, 따지고 보면 마냥 '홍대병'만은 아니다.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D홀에서 제60회 백상예술대상이 개최됐다. 남자 예능상 후보에 오른 나영석 PD는 유재석, 기안84, 침착맨, 탁재훈을 제치고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2014년 TV부문 예능 작품상, 2015년 TV부문 대상을 수상했던 나영석 PD는 9년 만에 다시 백상을 수상하게 됐다.



상을 받은 나영석 PD는 "죄송하다"고 입을 열며 "제가 받을 일이 없는 분야의 수상 후보로 지목된 것만 해도 이상하긴 하지만, 재미있어서 나왔다. 상까지 주셨는데 수상 소감도 생각 못 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아마도 최근 연출을 불성실하게 하고 유튜브를 통해서 구독자들과 이런저런 콘텐츠를 만들어서 상을 주신 것 같다. 구독자분들께 감사하다"라고 덧붙였다.

/사진=채널 십오야/사진=채널 십오야


나영석 PD와 함께 레드카펫에 오르고 시상식 후 라이브 방송도 함께 진행한 침착맨은 나영석 PD의 수상에 대해 "백상이 약간 홍대병이 있는 것 같다"고 비유했다. '홍대병'은 대중적인 것을 거부하고 비주류 혹은 마니아 취향을 지닌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일 때도 있지만, 침착맨은 백상의 새로운 시도에 초점을 맞춰 홍대병이라는 표현을 썼다.

후보자가 공개됐을 당시만 하더라도 나영석 PD의 수상을 점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중들 사이에서는 안정적인 TV예능을 바탕으로 유튜브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한 유재석, '태계일주' 시리즈로 전문 예능인 못지 않은 감각을 선보인 기안84의 수상 가능성이 많이 거론됐다. 그러나 백상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나영석 PD를 선택했다.

대중들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수상자를 선정한 백상은 그렇게 또 하나의 역사를 써 내렸다. 지난해 유튜브 콘텐츠 최초로 예능상을 수상한 피식대학에 이어 올해 나영석 PD의 수상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유튜브 콘텐츠가 얼마나 깊이 침투해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진=채널 십오야/사진=채널 십오야
'홍대병'이라는 침착맨에 비유에 더해 스스로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지만, 나영석 PD의 예능인 수상이 마냥 의아한 것만은 아니다. 백상 측은 나영석 PD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예능 연출자를 넘어 젊은 감성을 자극하는 콘텐츠 진행자로 뛰어난 활약을 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나영석 PD는 최근 연출작보다도 플레이어로서의 활약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가 젊은 층에게 큰 효과를 발휘했다. 그 기점은 침착맨과의 합방이었다. 실시간 방송을 배우겠다며 침착맨의 유튜브에 찾아간 나영석 PD는 '외줄을 타라'는 조언을 바탕으로 다양한 라이브를 진행했다. 자칫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는 선택이었지만, 평소에도 프로그램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며 재미를 극대화했던 나영석 PD의 능력은 라이브가 주는 장점만을 뽑아낼 수 있었다.

이를 기점으로 채널 십오야의 콘텐츠 역시 재편됐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대규모 프로젝트보다는 투입 비용을 최소화하는 가벼운 콘텐츠가 주를 이루게 된 것이다. '나영석의 나불나불', '나영석의 와글와글'을 비롯해 '소통의 신' 등의 콘텐츠는 가볍지만 유쾌한 웃음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만들었다.

나영석 PD는 프로그램의 기획자이자 메인 MC로서 콘텐츠를 이끌어가며 큰 영향력을 보여줬다. 스스로는 겸손하게 자신을 낮췄지만, 이 정도의 활약상을 보여줬기 때문에 예상을 뒤엎은 수상에도 많은 사람들이 납득하고 그의 수상을 축하해주는 것이다.

/사진=백상 인스타그램/사진=백상 인스타그램
PD가 아닌 플레이어로서도 주가가 치솟는 나영석 PD의 앞으로 역시 기대를 모은다. 백상을 빌미로 벌써 두 가지 콘텐츠가 예정되어 있다. 하나는 백상 수상 공약으로 내걸었던 고척돔 팬미팅이다. 나영석 PD는 백상을 수상하기 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만약 (상을) 탄다면 구독이님들께 영광을 돌리겠다"며 "고척돔 빌리는데 얼마니?"라고 언급했다. 수상 가능성을 낮게 보고 우스갯소리로 뱉은 말이었지만, 실제로 상을 수상하며 이는 지켜야 할 공약이 됐다.

낮은 가능성에 공수표를 남발하다 오히려 자신이 당하는 그림은 나영석 PD의 콘텐츠에서 자주 봤던 광경이다. 수상 직후 나영석 PD는 이를 언급하며 "대관료가 약 3억 정도 한다. 고척돔은 좀 무리다. 여러분에게도 저희에게도 너무 아픈 추억이 될 수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대신 "규모를 대폭 축소해서 현실적인 공간을 꼭 찾아서 안전한 선에서 하겠다. 대신 콘텐츠를 즐겁게 채우겠다"고 약속했다.

또 하나는 배우 김수현을 향한 러브콜이다. 시상식 후기를 풀던 나영석 PD는 김수현에 대해 "나도 모르게 '저랑 예능 같이 하실래요'라는 말이 여기까지 나왔는데 처음 보는 분이라 차마 말은 못 했다"라고 말했다. 직접 말하지는 못했지만,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공개적으로 러브콜을 보낸 셈이 됐다. 예능에 많은 배우들을 투입시키며 신선한 매력을 보여줬던 나영석 PD와 김수현의 조합에 많은 시청자들은 성사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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