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프리즘]느려진 ‘페북’? 누구의 책임인가

머니투데이 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2017.11.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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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프리즘]느려진 ‘페북’? 누구의 책임인가


 올해 정보통신 분야 국정감사의 뜨거운 화두 중 하나가 페이스북(이하 페북)과 국내 통신사간 망이용료 분쟁이었다. 발단은 이랬다. 지난해 12월 페북에 접속하면 먹통이 되거나 속도가 느려진다는 SK브로드밴드 가입자의 민원이 쏟아졌다. 올 초에는 LG유플러스 무선 가입자들이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

 페북이 이들 통신 가입자의 페북 접속경로(라우팅)를 일방적으로 홍콩 소재 서버로 바꾼 탓이다. 페북이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 전용 캐시서버를 설치해줄 것을 요구했고 이에 응하지 않자 차례로 접속경로를 변경한 것으로 밝혀졌다. 캐시서버는 가입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용하거나 자주 보는 콘텐츠를 저장한 서버를 말한다. 지역에 캐시서버를 두게 되면 국제회선을 경유할 필요가 없어 전송시간이 그만큼 줄어든다. 페북이 이들의 접속경로 중 일부를 홍콩 서버에서 원래대로 복구한 건 국감이 시작된 뒤다. 그 사이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는 수십억~수백억 원을 들여 홍콩간 국제망을 증설해야 했다.



 통신사들이 페북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건 사안의 본질이 그만큼 가볍지 않다는 얘기다. 글로벌 거대 플랫폼 기업들의 한국 시장 경쟁 룰이 정해지는 분수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글로벌 IT(정보기술)기업 3사가 유발하는 트래픽 비중은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페북의 경우 라이브 방송 등 동영상 콘텐츠 위주로 서비스가 개편되면서 국내에서 발생하는 트래픽이 최근 4년 사이 10배가량 증가했다는 분석도 있다.

 초창기 이들 콘텐츠 서비스는 국제 해저케이블망을 통해 전 세계 이용자에게 전송됐다. 이후 모바일 동영상 트래픽이 급증하자 대륙별 주요 거점에 캐시서버를 두는 방식으로 바꾸고 있다. 한국과 일본, 홍콩 등 아시아 지역도 마찬가지다. 공교롭게도 구글, 페북 등 미국 IT 기업들이 ‘망중립성’(Net neutrality)을 주창하고 나선 것도 이때부터다. 이들은 각국 통신 이용자가 매달 인터넷요금을 내는데 콘텐츠 기업으로부터도 별도 비용을 받는 건 망중립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자사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논리에 불과하다. 세금을 피하기 위해 해외에 서버를 둔 채 지역 통신사들에 일방적인 망 투자를 강요하는 식이다.



[디지털프리즘]느려진 ‘페북’? 누구의 책임인가
 그런 면에서 몇 해 전 통신 3사가 헐값에 구글 전용 캐시서버를 경쟁적으로 구축한 전례는 뼈아프다. 이를 빌미로 페북도 자신들의 전용 캐시서버를 설치해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 문제는 페북의 요구까지 그대로 받아주는 순간 되돌릴 수 없는 거래규칙으로 굳어진다는 점이다. 앞으로 어떤 해외 사업자든지 국내 시장에 들어오면 비슷한 요구를 할 것이고 트래픽 증가에 따른 망 증설비용은 오롯이 국내 통신사들이 부담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용자들의 통신요금을 올리는 건 한국 사회에선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국내 사업자들과의 역차별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한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인터넷사업자들은 글로벌 기업과 달리 정량과 종량제를 혼합한 형태로 망 이용 대가를 통신사들에 지급한다. 국내 인터넷 기업들이 해외 경쟁사들의 망 증설비용을 보전해주는 꼴이다.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특정 지역, 특정 인터넷회선 가입자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건 그들이 주창해온 망중립성 원칙(가입자 차별)을 스스로 저버리는 행위다.

 소수 디지털 플랫폼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눈앞에 와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기울어버린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 민간 사업자들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국내 사업자와 차별 없는 망 이용대가 부과제도를 마련하는 등 정부의 적극적인 룰 세팅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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