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소재 빌라. /사진=신현우 기자
#직장 생활 2년차인 이모씨(26)는 최근 지하방으로 이사했다. 주변 사람들은 직장 생활 2년간 모아 놓은 돈도 없냐고 타박하지만 이씨 주머니 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월급 200만원을 받아도 △월세(관리비 포함) 40만원 △학자금 대출 80만원 △휴대전화 요금·식비·차비(기타비용 포함) 50만원 등으로 빠져나가면 수중에 남는 건 30만원이 전부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 소재 중앙대학교 인근 원룸촌. /사진=신현우 기자
계속되는 월세 지출로 목돈 마련이 힘들어 결혼을 포기하거나 출산을 미루는 사람도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 등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 확대와 청약제도 조정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들도 주거비 부담에 (대학가) 인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혼부부 역시 임대료가 저렴한 대학가 등으로 몰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 A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직장과의 거리를 떠나 주거비 때문에 대학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 신혼부부 수요까지 늘어 임대료가 더 오르면서 대학생들이 이들에게 밀려 다른 곳으로 집을 옮기는 실정"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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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인근 월세는 꾸준히 상승세다. 부동산 O2O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서울 주요 대학가(건국대·경희대·고려대·서울교대·서울대·숙명여대·연세대·중앙대·한양대·홍익대) 33㎡ 이하 원룸의 지난달 평균 보증금은 1378만원, 월세는 49만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각각 19.0%, 2.5% 상승했다.
월세 부담은 늘었지만 주거환경은 제자리걸음이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교수는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들의 월세 부담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데 주거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목돈을 모을 여유도 없이 계속 지출만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 소재 아파트. /사진=신현우 기자
당장의 주거비 부담이 연애는 물론 결혼·육아에까지 미치는 영향도 크다. 국토연구원이 1인 청년가구(총 5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주거비 부담이 앞으로 '내집 마련(87.2점)'에 가장 큰 영향(100점 매우 심각)을 미칠 것으로 우려됐다. 이어 △출산·양육(86.7점) △결혼(83.1점) △연애(65.4점) 등 순이었다.
박미선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청년가구들이 주거비 지출 이후 가처분 소득이 적어 연애조차 부담스럽게 느끼고 있다"며 "주거비 부담이 지속된다면 내집 마련 등을 미루거나 포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임대주택 공급 계획 수립, 임대차시장 안정화를 위한 관리·감독 등 청년 주거복지를 위한 정부의 종합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우선적으로 사회초년생·신혼부부 등 청년 특화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며 "추가적으로 전세자금 대출·주거비 보조 등 실질적 도움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혼부부의 경우 무주택기간이 짧은 데다 자녀가 없을 수 있어 청약 가점제에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추첨제가 투기적 수단으로 악용된다고 하지만 실제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어 청약제도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