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치료'에 빗장 푼 美…'원정 연구' 떠나는 韓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17.08.03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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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 "생명윤리법 개정해야"

김진수 단장/사진=아산재단 김진수 단장/사진=아산재단


“유전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과 이들이 출산할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인간 배아 연구를 허용해야 합니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1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브리핑실에서 열린 연구성과 브리핑에서 “주요 선진국에선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인간 배아 연구 규제를 완화하거나 풀어주고 있는 추세인 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현행법에 막혀 있는 상태”라며 이 같이 말했다.

김진수 단장은 ‘유전자가위’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꼽힌다. ‘유전자가위’는 특정 유전자에만 결합하는 효소를 통해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유전자 염기를 잘라내고 정상 DNA(유전자)를 붙이는 교정 기술이다. 희귀질환 치료 및 신약개발의 ‘열쇠’로 불린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유전질환은 혈우병 등 1만가지가 넘는다. 전체 신생아의 1%가 유전질환 갖고 태어나며, 소아과 진료의 40%가 유전질 환자다. 대부분 완치가 불가능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이날 김 단장은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학(OHSU) 미탈리포프 교수팀과 함께 인간 배아에서 비후성 심근증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교정하는 데 성공한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이번 공동연구는 IBS 유전체교정연구단이 유전자가위 제작기술, 유전자교정 정확도 분석기법 등을 제공하고, OHSU가 미국 현지에서 인간 베아 유전자 변이 교정 실험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국내 생명윤리법은 질병 치료·예방을 목적으로 인간의 배아 유전자에 변이를 일으키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 위반시 처벌하는 탓이다. 이 때문에 김 단장처럼 해외로 ‘원정 연구’를 떠나는 연구자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규제가 없었다면 굳이 미국까지 건너 가 연구할 필요가 없죠. 국내 연구자들끼리 모여 충분히 진행 가능한 연구입니다.”

김단장에 따르면 인간 배아 연구는 나라마다 규제 수준이 다르나 대부분 허용하는 분위기다. 이를테면 미국과 중국의 경우 정부 승인 없이 기관 심의만 통과하면 배아 연구를 할 수 있다. 일본, 스웨덴 등은 정부 승인을 전제로 배아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영국은 이미 정부 승인을 받아 불임 연구를 목적으로 배아 실험에 착수했다. 반면 한국과 독일 등은 법률로 배아의 유전자 변이를 수반한 연구자체를 금한다. 한국의 경우 ‘황우석 사태’ 후 생명윤리법이 강화된 게 결정타였다.


“2015년 12월 워싱턴 D.C에서 미국 국립과학원, 중국 과학원, 영국왕립학회가 주관한 인간 유전자 교정 국제회의가 열렸고 저도 참석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유전자 교정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라는 논의가 있었는 데 임상 적용은 시기 상조이나 인간 배아 연구는 허용하자는 성명서를 발표했죠. 이후 올해 2월 미국 국립과학원과 국립의학원이 체세포 및 생식세포 유전자 교정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어요. ‘인간 배아도 극히 일부 조건에서 임상에 적용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김 단장은 인간 배아 연구를 허용하고, 합리적으로 규제해 폐단을 막고 기술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연구를 지금처럼 막으면 앞으로 기술 축적이 불가능한데다 급기야는 예비 부모들이 외국에 나가 배아 유전자 수술을 받고 귀국하는 부작용도 발생할 겁니다. 국내에서 불법적으로 배아 유전자 수술을 감행할 가능성도 있죠.”



현행법엔 또 모순이 있다는 지적도 내놨다. “질병 치료가 아닌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하거나 지능을 높이는 등의 목적으로 배아 유전자를 바꾸는 행위는 허용하고 있어요. 입법 당시 유전자가위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질병 치료가 아닌 유전자 강화 목적으로 인간 유전자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예측하지 못한 거죠.”

김 단장은 “국제 연구 수준에 맞춰 현행 생명윤리법을 개정, 배아 연구는 허용하되 강화 목적으로 배아 유전자를 수정해 출산에 이르게 하는 것은 법률로 금하는 방식으로 바꿔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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