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대통령선거 TV토론회(위쪽) 지난해 실시된 미국 대통령선거 케이블방송 C-SPAN의 토론화면./사진=KBS, C-SPAN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대통령선거 토론회를 앞둔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수화전문교육원에서 만난 이미혜 수어 통역사(51)는 "농아인에게 지금의 대선 TV토론회는 사실상 무의미한 방송"이라고 지적했다.
이미혜 수화통역사가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수화전문교육원에서 "대통령선거 TV토론회를 통해 농아인(청각장애인)들이 전달받는 내용은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사진=김창현 기자
이 통역사는 비장애인조차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어 통역사 화면이 작다고 지적했다. 특히 5명 대선후보의 말을 1명이 전달하기 때문에 전달력이 굉장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정치·사회·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본 없이 논쟁을 벌이는 토론회를 1명이 통역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어 "수어와 국어는 완전히 다른 언어"라며 "농아인은 내용을 수어로 바꿔 이해하고, 자막방송이나 신문기사를 봐도 머릿속에서 수어로 이해하기 때문에 수어 통역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질 낮은 수화방송은 농아인의 참정권 침해로 이어진다. 국내 25만여 명(2015년 등록장애인 기준)에 달하는 청각장애인은 대선뿐 아니라 선거 때마다 후보자들의 제대로 된 '목소리를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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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통역사는 "단순히 농아인에 대한 배려부족의 문제가 아니다"며 "농아인은 TV토론에서 선거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도 얻지 못하는데 청각장애의 특성상 문해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글로 정보를 전달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미혜 수어통역사는 대화를 대부분 수화로도 표현했다. /사진=김창현 기자
현행법(공직선거법)에서 수화와 자막방송은 강제사항이 아니다. 방송광고를 비롯해 후보자 연설 방송, 대담·토론회 등에서 수화·자막방송을 '할 수 있다'는 정도로만 규정하고 있다.
이 통역사는 "미국 등 해외에선 대선의 경우 토론자 수마다 수어 통역을 실시하고 화면도 3분의 1 넘게 할애한다"고 말했다.
◇국내방송 낮은 질 문제…봉사가 아닌 전문직 인식 필요
이 통역사는 선거방송뿐 아니라 평소 농아인을 위한 방송의 질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선거방송과 달리 농아인을 위한 국내 방송 기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방송법에 따라 일반방송의 수어 방송은 전체프로그램의 최소 5% 이상을 방영한다. 지상파 자막방송은 100% 실시되고 있다.
이미혜 수화통역사 / 사진=김창현 기자
이 통역사는 수어 통역업무를 직업이 아닌 봉사로 바라보는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수화 통역을 봉사로 해주면 안되느냐는 요청을 종종 받는다"며 "이 일도 엄연히 직업인데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이유로 봉사로 보지만 수어 통역은 엄연히 전문직"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화통역 현장도 열악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방송현장에서 수어 통역사에 대한 배려는 거의 없다"며 "부스가 마련된 곳은 것의 없고 소음은 물론 어수선한 현장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