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 '눈물' 中企 창업주…5년만에 '미소'

머니투데이 강경래 기자 2017.01.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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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백운 에버테크노 대표정백운 에버테크노 대표


"앞으론 좋은 일로 자주 통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7일 중국에서 거래처와 미팅 중에 전화를 받은 정백운 에버테크노 대표(61)의 목소리는 매우 밝았다. 그러나 그는 이내 "아직 집계 중이지만 지난해 적게나마 흑자를 낸 것 같다. 이게 몇 년 만의 일인지 모르겠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한순간의 위기로 법정관리에 내몰렸던 회사가 5년 만에 흑자로 돌아서자 감정이 복받치는 듯했다.

정 대표는 30년 넘게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개발이란 한 우물만 판 엔지니어 출신 경영자다. 1986년 삼성전자에 엔지니어로 입사한 그는 98년 국내 반도체장비 1세대 기업인 미래산업으로 이동, 2년 동안 연구소 임원으로 활동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거치며 내공을 쌓은 그는 지난 2000년 자본금 5000만원으로 에버테크노를 창업했다. 당시 그는 동료 2명과 함께 천안 테크노파크에서 300평짜리 가건물을 임대해 사업을 시작했다. 회사 건물 외형이 컨테이너를 연상케 하는 탓에 창업 초기에는 임직원 면접을 인근 커피숍에서 진행해야 했던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다.

정 대표가 '맨땅에 헤딩'하듯 창업한 에버테크노는 다행히 창업 후 10년 동안 큰 어려움 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전자부품을 이송하고 분류·저장하는 공정자동화장비에 주력한 에버테크노는 국내 한 대기업의 휴대폰 공장을 시작으로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 공장에 잇따라 관련 장비를 납품했다.



탄탄한 성장세를 바탕으로 2007년 코스닥에 입성했고, 2008년 1452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1000억원 클럽'에도 가입했다. 창립 10주년이던 2010년에는 매출 2000억원을 돌파하는 금자탑도 세웠다. 당시 정 대표는 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에버테크노와 계열사들을 합쳐 오는 2014년까지 매출 1조원을 달성할 것"이란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정 대표는 이듬해 큰 위기를 맞았다. 에버테크노 전체 실적 중 90% 이상을 의존했던 국내 한 대기업과의 거래가 갑작스레 끊긴 것. 회사 매출은 곧바로 곤두박질쳤고 2012년부터 적자수렁에 빠졌다.

자금사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계열사도 모두 매각하거나 청산해야만 했다. 2014년 7월에는 코스닥에서 퇴출됐고, 이듬해 2월 결국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한때 400명이 넘었던 임직원은 현재 130여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반전은 있었다. 법정관리에 들어갔지만 다행히 채권단은 경영관리인을 별도로 선임하지 않고 정 대표의 경영권을 그대로 인정해줬다. 창업주가 운영하는 것이 회사를 가장 빨리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 자리를 지키게 된 정 대표는 남아있는 임직원들과 함께 전자업종 외에 일반물류 등 다양한 분야로 공정자동화장비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도 구원투수로 나섰다. 정 대표의 열정과 회사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세일앤리스백(자산매입 후 재임대) 방식으로 에버테크노 본사를 사들였다. 덕분에 에버테크노에는 현금 183억원이 유입됐다. 이 자금을 활용해 제품군 및 공급처 확대에 나선 결과, 국내 유수 화학업체와 카드회사 등을 새로운 거래처로 확보할 수 있었다.

실적이 개선되면서 에버테크노는 지난해 7월 회생절차가 개시된 지 1년5개월여 만에 법정관리를 조기 졸업했다. 지난해 실적은 아직 집계 중이지만 전년대비 30% 이상 성장과 함께 이익을 낼 것이 확실시된다. 5년 만에 흑자로 돌아서며 경영정상화의 발판을 마련한 것.

최근 정 대표는 중국 등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기업 영속성을 위해선 시장 및 사업다각화가 절실하다는 점을 지난 위기 속에서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실적을 확인한 후 어느 정도 숨을 돌릴 수 있었다"며 "이제 내수시장을 넘어서 해외시장을 개척하며 영속성 있는 회사로 키우는 일만 남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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