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 동서울터미널 인근에 마련된 흡연부스 전경. 흡연자들이 흡연부스 밖에서도 흡연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진=스1
최씨는 "도심에서 유일하게 흡연자들을 위한 공간마저 너무 열악하다"며 "흡연부스를 이용하려고 해도 그야말로 '너구리굴' 같고 가래와 침, 쓰레기 때문에 지저분하다. 어쩔 수 없이 길거리에서 눈치 보면서 피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공씨는 "평소에도 길거리에서 담배냄새 때문에 기분 나빴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임신하고 나니 더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라며 "흡연부스는 근처에만 가도 담배냄새가 난다. 오히려 비흡연자에게도 피해를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입 초기 담뱃값 인상·금연구역 확대 등에 떠밀린 애연가의 해방공간이자 비흡연자에겐 간접흡연을 막을 것으로 기대했던 흡연부스는 실효성이 떨어져 시민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오히려 '개방형' 부스가 확산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하루 흡연부스 '무용지물'…업계선 '개방형 유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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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다. 컨테이너 형태의 흡연부스는 1개당 2000만~3000만원의 설치비용이 투입되지만 하루에도 수백명 넘게 이용하다 보니 제연기(연기제거장치) 성능을 초과해 뿌연 담배연기가 가득하게 된다.
서울 광진구 동서울터미널 앞에 설치된 흡연부스에서 흡연자들이 흡연을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제연기 제조업체 T사 관계자는 "공공부스는 제연기 성능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인원이나 유지관리도 잘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효과가 미미하다"며 "특히 면적이 넓고 입·출입이 많은 공공부스는 더 어렵다"고 말했다.
흡연부스 공급도 부족하다. 서울시에 따르면 폐쇄형(부분폐쇄형 포함) 흡연부스는 2012년 12월 마포구청에 시범설치된 이후 매년 2~3곳씩 늘어 지난달 기준 14곳에 불과하다. 개방형(24곳)을 포함하면 총 38곳이다.
연도별 설치장소는 △2013년 센트럴시티(고속버스터미널) 서울역(2곳) △2014년 남부버스터미널, 동서울터미널, 건대입구 △2015년 을지로입구역, 잠실롯데월드몰(2곳) △2016년 가든파이브(2곳) 하나은행본사(을지로, 2곳) 등이다.
업계에선 투입비용에 비해 효과가 낮은 흡연부스 대신 개방형 부스를 설치해 청소 등 관리를 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등 해외에서도 폐쇄형 부스를 개방형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흡연부스 설치업체 Y사 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공기정화 시스템을 도입해도 공공부스 내 연기를 처리하는 건 힘들다"며 "최근 흡연이 가능한 공간에 지붕이 설치되지 않은 개방형 부스를 설치하는 곳이 늘었다"고 말했다.
◇뒷골목으로 떠밀린 흡연자 "흡연권도 인정해야"
지하철 출입구 10m 내 금연구역 지정 등의 정책을 펴고 있는 서울시는 흡연정책 확대에는 다소 난색을 표했다. 서울시는 이 정책을 시작한 올해 9월부터 지난달까지 2843건을 단속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올해 9월부터 지하철역 출입구를 기준으로 10m까지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사진=뉴스1
부족한 흡연공간과 금연정책에 떠밀린 애연가들은 후미진 골목 등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과 동시에 흡연자를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흡연부스 설치에 대한 기준과 관리방안도 체계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담뱃세 인상으로 확보한 세금을 흡연정책에도 적극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흡연자뿐 아니라 비흡연자의 피해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지난해 흡연율을 낮추겠다는 명분으로 1갑당 1550원이던 담뱃세를 3318원으로, 담배가격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렸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담뱃세 인상 후 세수는 지난해 10조5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조6000억원 급증했다. 확보된 세금은 금연교육과 광고, 흡연피해 예방 등 금연정책에 투입된다.
박인택 한국담배소비자협회 상임이사는 "흡연자가 납부하는 세금이 엄청나다. 금연구역이나 정책을 확대하는 것은 좋지만 흡연자의 권리도 어느 정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비흡연자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