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못 지킨 국회…'법률 공백' 혼란 가중

머니투데이 황재하 기자 2016.03.01 09:40
글자크기

[the L리포트] 통신제한조치 연장·야간 옥외집회 금지…명확한 기준 없어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사진=뉴스1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사진=뉴스1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국회가 시한 내에 개정하지 않으며 공백이 생긴 법률 가운데 민·형사상 중대한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것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법 조항 25건에는 정치자금법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등이 포함돼 있다. 입법 조치가 서둘러 이뤄지지 않으면 국회가 책임을 방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무제한' 통신제한조치 연장

헌재는 2010년 12월 통신제한조치를 연장하는 기간·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은 통신비밀보호법 제6조 7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통일범민족연합 관계자들은 2009년 6월 국가보안법상 잠입·탈출, 찬양·고무죄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범민련 관계자들에 대한 통신제한조치를 허락받은 뒤 30개월 동안 총 14차례 기한을 연장해 가며 증거를 수집했다.

이에 반발한 범민련 관계자들의 신청에 따라 법원은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고, 헌재는 이를 일부 받아들였다. 헌재는 "통신제한조치 기간을 연장하는 데 있어 횟수나 기간에 제한을 둬도 여전히 필요한 경우 법원에 새로운 통신제한조치를 청구할 수 있고, 이로써 수사목적을 달성하는 데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법률 개정기한을 이듬해 말로 정했지만, 기한이 4년 넘게 지나도록 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해당 법 조항은 이미 효력을 잃었지만 통신제한조치를 연장할 수 있는 한도에 대해 뚜렷한 기준이 명문적으로 마련되지 않은 형편이다.


야간 옥외집회 금지 시간, 명확한 지침 없어

야간 옥외집회 금지 시간을 규정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와 이에 따른 처벌 조항인 제23조 1항도 법률 공백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이 조항들은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 '다만 집회 성격상 부득이하게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한 경우 허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에 대해 헌재는 야간 시간대의 옥외집회를 제한하는 정당성과 적합성을 인정하면서도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라는 넓고 가변적인 시간대의 집회를 모두 금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봤다. 낮에 학업이나 직업 활동을 해야 하는 직장인·학생들이 사실상 집회에 참가할 수 없게 돼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박탈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헌재는 2009년 9월 야간 중 집회를 제한할 시간대를 정하는 것은 입법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헌법불합치로 결정했다. 아울러 이듬해 6월말을 입법기한으로 정했다.

이후 여당은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집회를 제한하자고 주장했고, 야당은 원칙적으로 야외 집회·시위를 모두 허용하자는 취지로 맞서 끝내 합의점에 이르지 못했다.

이에 일부 법원에서는 자정 전 집회에 대해서만 무죄를 선고하는 판결을 선고했지만, 법안이 다른 취지로 개정되면 판결이 줄줄이 파기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신상정보 20년 등록

헌재가 지난해 7월 헌법불합치로 결정한 성범죄처벌법 제42조 1항도 아직 대안이 마련되지 못한 상태다.

이 조항은 성범죄처벌법상 카메라 이용 등 촬영·촬영미수죄로 유죄가 확정된 이들에게 신상정보를 20년 동안 공개하는 내용이다. 헌재는 이같은 법률이 모든 해당 범죄자에 대해 죄의 경중이나 특성을 따지지 않고 같은 기간을 적용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헌재는 "(신상정보) 등록 대상자가 재범 위험성이 줄어들었다는 점을 입증해 의무를 면하거나 등록기간을 줄이기 위해 심사를 받을 여지도 없다"며 "이는 특히 교화 가능성이 있는 소년범의 경우에도 예외 없이 적용돼 가혹하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조항이 효력을 잃기 전까지 조항이 마련되지 않으면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몇 년 동안 등록해둘 것인지 확정할 수 없어 일선에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 조항의 입법기한은 올해 연말이다.

이 기사는 더엘(the L)에 표출된 기사로 the L 홈페이지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기사를 보고 싶다면? ☞ 머니투데이 더엘(the L) 웹페이지 바로가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