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과 판결] 이기택 대법관

머니투데이 황재하 기자 2016.02.2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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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업적연봉' 통상임금으로 인정…"성매매도 업무방해죄 보호 대상" 판결도

편집자주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법언이 있다. 공직에 몸담은 법관들은 사회 현안에 대해 함부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오로지 판결을 통해 웅변할 뿐이다. 판결을 살펴 보면 우리 사법부에서 일하고 있는 법관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우리 사회에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법관들의 출신 지역이나 학력 등 판결에 대한 선입관을 형성할 수 있는 요소들은 기사에서 배제했다.

이기택 대법관. /사진=뉴스1이기택 대법관. /사진=뉴스1


이기택 대법관(58·연수원 14기)은 현역 대법관들 중 남은 임기가 가장 길다. 바꿔 말하면 대법관으로서 경력이 가장 짧다. 지난해 9월 임기가 시작돼 전체 6년에 달하는 전체의 10분의1도 채우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 대법관은 26일 현재까지 전원합의체 주심으로서 선고한 판결이 없다.



다음은 이 대법관의 주요 판결들.

업무평가에 따라 달라지는 '업적연봉'도 통상임금
이 대법관은 대법원 소부 주심으로서 인사평가에 따라 달라지는 일종의 성과급인 '업적연봉'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남겼다.



대법원 1부는 지난해 11월 한국GM 근로자 1000여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이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업적연봉도 통상임금의 조건인 정기성과 일률성, 고정성을 모두 갖췄다고 본 것이다.

통상임금은 연장·휴일근로수당을 계산하는 기준이 된다. 이 때문에 노동계와 재계는 여러 명목으로 지급되는 임금 가운데 무엇을 통상임금으로 분류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해묵은 갈등을 벌이고 있다.

한국GM은 2000~2002년 연봉제를 도입하며 전년도 인사평가 결과를 기준으로 연봉을 차등 지급하고 1개월 기본급의 700%를 12개월로 나눈 업적연봉을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GM은 업적연봉을 비롯한 조사연구수당, 조직관리수당 등을 각종 수당을 산출하는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서 제외했다.


이에 근로자들은 회사가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업적연봉을 제외한 채 시간외 근로수당과 연월차수당을 계산했다며 소송을 냈다.

1·2심 판결은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업적연봉 총액은 전년도 근무 성적에 따라 지급 여부와 액수가 달라진다"며 근로자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업적연봉의 정기성과 일률성, 고정성을 인정하며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1부는 "업적연봉을 고정성이 있는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아울러 "업적연봉은 전년도 인사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인상분이 정해지면 그 금액이 다음 해당 연도에 고정적으로 지급될 뿐 해당 연도의 근무성적에 달라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집회·행진 불법행위에 법리 엄격하게 적용해 유죄 취지 판결
이 대법관은 또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채 도로를 점거한 집회 참가자들에게 엄격한 법리를 적용해 유죄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대법원 1부는 지난해 12월 3차례에 걸쳐 집회 과정에서 도로를 점거한 혐의(일반교통방해)로 기소된 시민운동가 최모씨(46)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했다.

최씨는 2012년 6월 쌍용차 근로자들의 복직을 촉구하는 집회와 같은 해 10월 광화문에서 열린 장애인활동가 추모 운동에서 차로를 점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모든 차로에 걸쳐 차량통행이 불가능하지 않았던 만큼 최씨가 또다른 집회에서 통행을 금지한 부분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다.

이에 대법원 1부는 차량통행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지만 극심한 정체가 발생한 만큼 일반교통방해죄가 규정하는 '차량의 통행이 현저하게 곤란하게 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성매매 업무방해도 처벌" 판결…이후 판례 뒤집혀
이 대법관은 고등법원 부장판사 시절 재판장으로서 불법인 성매매업소 영업을 방해해도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 형사11부는 이 대법관이 재판장이었던 2009년 2월 조직폭력배 김모씨의 업무방해죄를 무죄로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2005년 5월 5차례에 걸쳐 폭력조직원 구성원들을 수원 팔달구에 있는 성매매 업소 입구에 일렬로 세우거나 차량을 세워두고 소리를 치는 등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1심 재판부는 성매매가 위법의 정도가 무겁고 반사회성을 띠는 만큼 업무방해죄로 보호할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서울고법 형사11부는 당시 이같은 판결을 뒤집고 김씨의 업무방해죄를 유죄로 인정했다. 비록 성매매와 성매매 알선이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이를 업무방해죄로 보호하지 않으면 더 큰 불법을 방임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검사는 상고를 포기했고, 김씨만 홀로 상고장을 냈지만 이후 상고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아 원심 판단을 그대로 따르기로 하고 심리가 마무리된 것이다.

실질적인 측면을 고려해 더 큰 범죄피해를 막은 판결이라는 평을 받았지만, 이후 대법원은 이와 상반되는 취지의 판례를 남겼다.

김씨와 함께 성매매 업소의 업무를 방해하는 데 공모한 혐의로 뒤늦게 재판에 넘겨진 폭력조직 행동대장 홍모씨는 1·2심에서 업무방해죄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 2부(당시 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성매매를 알선하는 등 행위는 업무방해죄로 보호하는 대상이 되는 업무라고 볼 수 없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당시 "성매매 알선 등은 법에 의해 원천적으로 금지된 행위로서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중대한 범죄일 뿐 아니라 정의관념상 용인될 수 없는 정도로 반사회성을 띠는 경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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