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의 눈]'고법부장 폐지' 백지화하나…침묵하는 대법원

머니투데이 황재하 기자 2016.02.2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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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최초로 고법 판사→고법 부장판사 인사 단행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1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1


전국 법관들을 대상으로 한 인사가 사실상 모두 마무리됐다. 법원장 인사를 기준으로 따지면 다음달 1일을 기점으로 하는 인천가정법원 보임 외에는 모든 인사이동이 끝났다.

고법 판사→고법 부장판사 인사 최초로 단행
법관 인사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은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이다. 대법원은 공식적으로 '보임' 내지 '전보'라는 표현을 쓰지만,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고법 부장급으로 도약하는 인사가 승진의 성격을 가진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제한된 인원만 고법 부장판사 자리에 오르고, 여기서 배제된 판사들이 줄사표를 내는 일이 매년 반복돼왔다.



법원이 승진을 승진이라 부르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헌법이 규정하는 법관의 종류는 3가지뿐이다. 대법원장, 대법관, 그리고 법관. 법관 사이 서열을 수직적으로 나누면 일선 판사들이 판결을 내릴 때 고위층의 눈치를 보게 되고, 결과적으로 법관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판사 인사에는 원칙적으로 승진이라는 개념이 없다.

그럼에도 사실상 승진이나 다름없는 고법 부장판사 인사가 유지되고 있는 데 대해 법조계 안팎에서 지적이 잇달았다. 대법원장이 전국 판사들의 승진을 좌우하는 환경에서 법관들이 소신껏 판결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다.



이 때문에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2010년 지법 부장판사가 고법 부장판사로 이동하는 인사를 없애고, 이를 위해 이듬해 인사부터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를 도입했다. 지법과 고법 인사를 서로 분리하고, 고법 부장판사와 배석판사로 이뤄진 기존 고등법원 재판부 대신 지법 부장급 경력을 갖춘 '고등법원 판사'를 선발해 대등재판부를 꾸린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같은 목적으로 선발된 고법 판사 일부가 올해 인사에서 고법 부장판사로 보임됐다. 고법 부장판사 제도를 없애기 위해 고등법원 판사를 선발했는데, 이들이 고법 부장판사가 된 것이다. 이같은 형태의 인사는 올해 23기가 처음으로 고법 부장판사 인사 대상에 오르며 시행됐다.

인사 방침 뚜렷하게 밝히지 않는 대법원
이에 대해 2010년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했던 한 고법 부장판사는 "대법원은 고법 부장판사를 없애겠다고 밝힌 적이 없고, 단지 지법 부장판사가 고법 부장판사가 되는 인사를 없애겠다고 밝혔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지법과 고법 인사를 완전히 분리해 고법 판사만을 고법 부장판사 임명 대상으로 삼겠다는 뜻이었는데 세간에 '고법 부장판사를 아예 없앤다'고 잘못 알려졌다는 것이다.


실제 대법원은 과거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를 설명하며 명시적으로 고법 부장판사를 없애겠다고 밝히지 않았다. 단지 '승진으로 인식되는 현행 고법 부장판사 인사 제도를 없앤다'고 밝혔을 뿐이다.

고법 부장판사라는 직급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심인 항소심에서는 법정에서 증거와 증인을 조사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법률심만을 담당하는 대법원과 달리 재판을 이끌고 진행할 재판장이 필수적인 것이다.

아쉬운 것은 대법원이 이같은 문제에 대해 투명하게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법 판사→고법 부장판사'라는 형태의 인사가 최초로 이뤄졌음에도 법원행정처는 이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고법 판사를 앞으로도 계속 고법 부장판사로 임명할 예정인지, 고법 부장판사를 유지할 것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인사에 대한 세부적인 사안은 물론 향후 방침에 대해서도 밝힐 수 없다는 것이 법원행정처의 일관된 입장이다.

물론 대법원장의 인사권에 대해 과거 정치권에서 수시로 문제를 제기하며 사법부에 개입하는 빌미로 삼았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대법원이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법조일원화로 법관 인사 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섣불리 방침을 정했다가 이후 입장을 바꿨다는 비판에 직면할 우려도 있다.

그럼에도 법관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좌우할 수 있는 인사에 대해 대법원이 국민 앞에 투명하게 알리지 않은 것은 아쉽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외부의 개입이나 비판을 두려워하기보다 인사에 관한 방침과 현안을 공개하고 국민과 소통한다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더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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