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구제 Vs 비용증가…'변호사 강제주의' 明暗

머니투데이 황재하 기자 2016.02.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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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변호사 업계 꾸준히 추진 중…19대 국회선 폐기 유력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 및 법무법인 밀집지역의 모습. /사진=뉴스1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 및 법무법인 밀집지역의 모습. /사진=뉴스1


매년 1500명씩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배출되며 업계가 불황을 겪는 가운데 변호사 단체가 꾸준히 추진하는 '변호사 강제주의'가 도입될지 주목된다.

사실관계를 판단하는 하급심과 달리 법의 해석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고심을 강화하려는 취지지만, 사회적 비용이 높아지고 개개인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의 상고심 심리 충실화' 목표로 한 변호사 강제주의
22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상고법원 도입을 골자로 한 민사소송법 등 개정안에는 민사사건 상고심에 변호사 강제주의를 도입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법안의 정식 명칭은 '상고심 제도 개선을 위한 민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민사소송법에서 상고심에 대해 규정하는 제430조에 변호사 선임에 대한 내용을 추가한다는 안이다.



이 법안이 도입되면 대법원에서 상고심 재판을 받는 당사자가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한 경우 대법원이 신청을 받거나 직권으로 변호사를 국선대리인으로 선정하게 된다. 이렇게 선정한 국선대리인의 보수는 일단 국고에서 지급하고 이후 당사자가 갚게 된다. 다만 당사자가 변호사 자격이 있는 경우에는 직접 소송을 수행할 수 있다.

발의안은 변호사 강제주의의 취지를 "대법원이 심판하는 사건은 당사자뿐 아니라 사회 전체나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필수적 변호사 대리 및 국선대리인 제도를 도입해 당사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보다 공정·타당한 재판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대법원은 단순히 개인의 권리를 구제하는 것을 넘어 법령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는 기능을 한다. 이를 일반적으로 정책심이라 부른다. 상고사건 수가 증가하고 있어 대법원의 정책심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어려워진 만큼 상고법원을 도입하는 것이 법안의 취지다.


법안이 이대로 통과해도 변호사 강제주의가 적용되는 것은 상고법원이 아닌 대법원이 담당하는 사건에 한정된다. 국민 일반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심을 강화하기 위해 상고법원을 분리하자는 취지인 만큼 대법원이 심리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변호사의 소송대리가 필수적이라고 본 것이다.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장. /사진=뉴스1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장. /사진=뉴스1


불황 극심한 변호사 업계, 1990년대부터 꾸준히 추진

19대 국회에서 변호사 강제주의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상황이다. 1년 이상 법안이 소위에 계류된 상황에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처리되지 않고 19대 임기가 끝나면 법안은 자동폐기된다.

그러나 변호사 강제주의는 대한변호사협회가 199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만큼 향후에도 다시 비슷한 취지의 법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나올 수 있다.

최초로 회원들의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된 위철환 전 대한변협 회장은 변호사 강제주의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고, 실제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2014년 11월 같은 취지의 법안을 발의하기에 이르렀다.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 역시 선거운동 과정에서 변호사 강제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 회장은 대한변협 후보자였던 2014년 11월 '합의부사건 변호사 필수주의' 입법을 발의한다는 내용의 자료를 발표한 바 있다. 민사재판 가운데 비교적 소가가 높은 사건들은 1심부터 3명의 판사로 구성된 합의재판부에서 심리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변호사 선임을 강제하자는 내용이었다.

변호사 단체는 변호사 강제주의를 도입해야 할 근거로 재판을 받는 당사자들이 소송기술이나 법리를 정확히 몰라 권익을 제대로 구제받지 못한다는 논리를 앞세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업계가 불황을 겪는 가운데 변호사들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방안이라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실제 하 회장은 후보자 시절 변호사 강제주의 법안을 발의하는 취지에 대해 "'합의부사건 변호사 필수주의'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것이야말로 '변호사 일자리 창출'이라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하 회장의 선거캠프는 민사 합의사건에서 수년째 변호사를 선임하는 비율이 줄어드는 추세라고 지적하며 "변호사 필수주의가 도입되면 합의부 사건의 변호사 선임 건수가 현재의 2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높아지는 사회적 비용…"위헌적" 지적도 잇달아
문제는 변호사 선임 비용이 고스란히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간다는 데 있다. 민사재판은 패소하는 쪽이 소송비용을 부담하는데, 상대방이 높은 수임료를 내고 계약을 맺으면 그만큼 부담도 커진다. 국선대리인을 선임하더라도 국고에서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대법원 통계연감에 따르면 2014년 전국 모든 법원이 처리한 민사본안사건 총 112만4565건 중 원고·피고 한쪽이라도 변호사를 선임한 사건은 27.2%로 드러났다.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국민 중 70% 이상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거나 변호사가 아닌 전문 자격사의 도움으로 소송을 진행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국회 안팎에서는 변호사 강제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줄을 잇고 있다.

한 국회 전문위원은 "개정안에 따르면 당사자가 변호사의 조력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국선 변호사의 변호를 받아야 한다"며 "헌법에 근거한 자기결정권과 일반적 행동자유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법안 발의에 참여했던 신학용 국민의당 의원도 이 문제를 지적하며 "상고법원 설치 관련 법안들을 상세히 파악하지 않고 모두 동참한 것은 잘못임을 인정한다"며 "필수적 변호사 대리제도와 국선대리인 제도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한 바 있다. 신 의원은 또 "이는 국민의 권익 보호에 역행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라고 설명했다.

특히 대한법무사협회는 변호사 강제주의 도입을 반대하는 취지의 국민서명을 모아 국회에 제출하고 "국민의 재판청구권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주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무사협회는 또 "전세계에서 유례없는 입법으로 서민들 주머니를 털어 변호사의 일자리를 만드는 악법"이라고 강조했다.

윤상현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변호사 강제주의 법안은 국회 안팎의 반발에 부딪혀 발의에 참여한 의원 14명 중 8명의 요구에 따라 이듬해 5월 철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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