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변호사요? 20만원 더 낸 변호사에 불과합니다"

머니투데이 황재하 기자 2016.02.06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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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인물포커스] 오규환 변리사회 대변인…"변호사에 자동자격 부여 세계유일"

오규환 대한변리사회 대변인. /사진=황재하 기자오규환 대한변리사회 대변인. /사진=황재하 기자


"한국에서 일반 변호사와 특허 변호사의 차이는 20만원이 있는지 없는지의 차이일 뿐입니다. 변호사가 변리사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특허청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20만원입니다. 이공계를 전공했는지, 변호사시험 선택과목으로 지적재산권 관련 과목을 선택했는지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오규환(사진) 대한변리사회 대변인은 변호사에게 변리사 자격을 부여하는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지적재산권 분야에 전문성을 갖췄는지 검증을 거치지 않은 변호사들이 변리사 자격을 자동으로 얻고 있다는 설명이다. 오 대변인과의 인터뷰는 서울 서초구 특허법인 가산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변리사의 일은 결국 발명 보호…기술 모르면 사실상 불가능"

변호사에게 변리사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를 둘러싼 변호사·변리사 업계 사이 해묵은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변리사 업계는 이같은 제도가 잘못됐다고 주장해왔다.



결국 국회가 지난해 12월 변리사법을 개정하며 앞으로는 변호사들이 실무수습을 거쳐야만 변리사로 등록할 수 있게 됐다. 다만 개정된 법이 시행되는 오는 7월 이전에 변호사 자격을 얻었던 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현재 활동 중인 변호사들은 실무수습을 받을 필요가 없다.

이에 대한변호사협회는 상임이사회 의결을 거쳐 대한특허변호사회를 설립하고 "변호사가 아닌 변리사들은 분쟁을 처리할 전문적 지식이 부족하고 소송을 대리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변리사법 개정에 따라 실무수습 방향을 마련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오 대변인은 변리사 업무의 전문성을 강조하며 반박했다.


"발명은 새로운 기술입니다. 발명의 내용을 이해하려면 사용된 기술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술을 제대로 모른 채로 특허권을 보호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특허침해 소송을 다루려면 쟁점이 되는 특허가 유효한지, 침해 의혹을 받는 기술이 특허권을 가진 기술과 같은 것인지 평가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술을 모르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법리를 어떻게 적용할지는 둘째 문제이고, 사실관계 자체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오규환 대한변리사회 대변인. /사진=황재하 기자오규환 대한변리사회 대변인. /사진=황재하 기자
◇변호사와 변리사, 선발 과정부터 기술 분야에서 전문성 차이

변리사시험은 1차시험 필수과목인 자연과학 개론이 합격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힐 정도로 중요한 비중을 가진다. 선택과목에도 이공계 과목들이 여럿 포진해 있다.

반면 변호사시험은 지적재산권법을 선택과목으로 두고 있는데, 선택 비율은 매년 5%를 밑돈다. 법무부에 따르면 1~4회 변호사시험 응시자들 중 지적재산권법 과목을 선택한 이들은 3.3%에 그쳤다. 지난해 4회 변호사시험에서는 지적재산권법 응시자 비율이 2.03%로 역대 가장 낮았다.

오 대변인은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변호사들에게 아무런 문턱 없이 변리사 자격을 주는 나라가 전 세계에 우리나라 뿐이었다"며 "일본도 변호사들이 변리사 업무를 할 수 있지만, 우리보다 앞서 실무수습을 의무화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해외에서는 변리사 자격을 보다 엄격하게 관리한다. 100만명 이상의 변호사가 활동하는 미국은 이공계 학위를 가진 사람들만 응시할 수 있는 대리인 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만 '패턴트 에이전트'(patent Agent) 자격을 부여한다. 이 자격을 얻으면 특허출원 대리 업무를 맡을 수 있다.

패턴트 에이전트 자격과 변호사 자격을 함께 갖추면 '패턴트 어토니'(Patent Attorney)라고 불린다. 직역하면 특허변호사라고 할 수 있지만, 이공계 출신에 별도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변호사와 비교해 전문성 검증의 문턱이 훨씬 높다.

◇주목받지 못한 변리사회 주장들…"변리사 업무 더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

변호사에게 변리사 자격을 자동 부여하는 제도에 대해 변리사회가 문제를 제기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7대 국회부터 법 개정을 주장해왔고, 이에 국회가 19대에 이르러 변협과 변리사회의 입장을 종합해 사실상 절충안에 가까운 방향으로 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오 대변인은 "미흡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변호사의 지적재산권 분야 전문성을 검증하거나 제고할 만한 장치로 실무수습은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실무수습의 내용은 대통령령인 시행령으로 규정하게 돼 있는데, 향후 소관부처인 특허청의 결정에 따라 실무수습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내비쳤다.

변리사회가 오랫동안 주목해온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변리사회는 특허침해 관련 소송을 대리할 권한을 변리사에게도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 대변인은 "현행 변리사법은 변리사가 지적재산권 관련한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법원은 변리사가 소송 대리를 맡을 수 있는 범위를 좁게 해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해당 내용을 규정한 변리사법 제8조는 '변리사는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사항의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할 뿐 소송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한하고 있지 않다.

몇몇 변리사들은 "특허침해 관련 소송에서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직업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헌재는 2012년 전원 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변리사들은 특허심판원의 결정에 불복해 특허법원에 제기하는 심결취소 소송만 대리할 수 있다.

변리사회는 변리사들이 특허침해 소송도 함께 대리할 수 있도록 법안을 개정해달라고 꾸준히 주장하고 있지만, 쉽게 결론아 나오지 않고 있다. 변호사에게 자동으로 변리사 자격을 주는 문제와 더불어 변리사회가 주력하고 있는 현안 중 하나다.

오 대변인은 이같은 변리사회의 주장들이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변리사 업무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안을 다루는 국회의원들도 변리사 업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형편"이라며 "변리사의 업무를 더 알리고 홍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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