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부실감사 부르는 '짠물' 보수

머니투데이 최동수 기자 2016.01.1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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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최동수 기자머니투데이 최동수 기자


지난 7일 국내 4대 회계법인인 삼정KPMG와 딜로이트안진이 한국전력 외부감사인 자리를 놓고 맞붙었다. 이날 오전 진행된 최종 경쟁 프레젠테이션(PT)에는 각 법인의 주요 파트너뿐만 아니라 대표까지 참석, 여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는 후문이다.

해가 바뀌면서 외부감사 자리를 따내기 위한 회계법인들의 경쟁이 시작됐다. 특히 올해는 주요 상장사들의 외부감사인 계약이 변경되는 해로 각 법인 감사본부 파트너 회계사들은 계약을 따내기 위해 전략 짜기에 돌입했다.



외부감사를 따내기 위한 회계업계의 출혈경쟁은 심해지고 있지만 정작 감사보수는 여전히 열악한 수준이다. 이번에 삼정과 안진이 뛰어든 한국전력의 외부감사인 자리는 1년 보수가 10억원에 불과하다. 한국전력은 국내 상장사 가운데 총자산 100조로 금융권을 제외하고 2번째로 큰 규모로 지난해 1조6703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하지만 감사보수는 영업이익의 0.001%에도 미치지 못했다.

열악한 감사보수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우양에이치씨 등에서 부실감사 문제가 터지면서 회계 투명성을 위해 감사보수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금융 당국의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해 재무상태가 나쁜 기업을 대상으로 회계법인을 강제로 지정하면서 일부 소수기업들의 감사보수 현실화에 힘썼다. 짠물 감사보수로 소문난 대한항공이 기존 3억원에서 9억원까지 늘어나는 등 지정감사를 받는 회사들의 감사보수가 1.5~3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지정감사제는 임시처방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정감사제를 벗어나면 외부감사인 선임의 권한이 회사로 돌아가 보수가 다시 낮아진다는 것이다.

결국 기업들이 '감사보수는 단순 비용이 아니라 투명한 투자환경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주목받는다. 최근 업계와 금융당국에서 회사 내부의 감사위원회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고 나섰는데 이 같은 움직임이 변화를 이끌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해마다 투자자들이 부실감사로 본 피해를 물어내라며 회계법인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줄을 잇고 있고 이중 절반 이상 회계법인의 배상책임이 인정된 해(2013년 21건 중 14건(1심 기준))도 있다. 책임이 커졌는데도 경쟁이 치열하다는 이유로 보수는 줄고 있다. 고된 업무에 비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보수 때문에 청년 회계사들이 사실상 계속 자격증을 포기하고 있다. 짠돌이 수고비에 투명성이 발붙이긴 더욱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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