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5월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산책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청와대 제공)
그리고 놀라움은 곧 환호로 바뀌었다. 털모자를 쓴 맥밀란은 이날 크레믈린에서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와 만나 냉전 긴장 완화에 합의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첫 영소 정상회담이었다. 맥밀란은 "어떤 어려움과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위해 힘을 모으자"고 했다.
국제외교에서 사진 한장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때론 백마디 말보다 강하다. 모자와 같은 소품을 활용한다면 효과는 배가된다. 방문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모자를 쓴 상대국 정상 등 대표의 모습은 양국의 우호 관계를 대내외에 과시하는 효과가 있다. 방문국 국민들의 호감을 끌어내 자국에 유리한 정책을 유도할 수도 있다.
1997년 미국을 찾은 장쩌민 전 주석은 영국 식민지 시절 유행하던 검은색 삼각모를 쓰고 '식민지 시대 민속촌'이 있는 버지니아주 윌리엄스버그를 방문했다.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인권 문제에 대한 견해 차 탓에 별 소득이 없었지만, 모자 덕분에 '이미지 외교'의 효과는 톡톡히 봤다.
후진타오 전 주석은 2006년 방미 때 시애틀 보잉사 본사를 찾아 이 회사 직원이 건넨 야구 모자를 쓰고 그를 두 번이나 포옹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시진핑 주석도 2012년 부주석 시절 미 로스앤젤레스(LA)에서 미국프로농구(NBA) 경기를 관람한 뒤 자신의 이름과 등번호 '1'이 찍힌 LA 레이커스팀의 유니폼을 선물받고 환하게 웃는 사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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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3박6일 간의 미국 방문을 마치고 18일 귀국했다. 한미 정상회담 등의 성과가 적지 않았음에도 KF-X(한국형전투기) 기술이전 무산 탓인지 지지율 상승폭은 1%포인트대에 불과했다. 지난달초 중국 방문 직후 지지율이 약 6%포인트 급등한 것과 대조된다. 방중 직후 지지율 급등은 선글라스를 낀 채 중국 전승절 열병식을 지켜보는 박 대통령의 사진이 널리 회자된 것과 무관치 않다. 이른바 '박근혜 선글라스'로 불린 이 모델이 방중 직후 품귀 현상을 빚은 게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이번 방미는 눈길을 사로잡는 사진이 보이지 않는다. 2013년 5월 방미는 한미 정상회담 직후 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로즈가든 옆을 나란히 산책하는 사진을 남겼다. 이 사진 한장만으로도 '한미동맹'은 재확인됐다. 이번에도 같은 모습이 사진으로 포착됐지만, 신선도가 같을 수 없다.
청와대 한 참모는 "인상적인 사진을 위해 몇차례 건의를 했지만, 박 대통령이 인위적 연출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모두 거부했다"고 했다. 연출을 꼭 인위적으로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담은 사진을 남길 수 있다.
펜타곤(미 국방부 청사) 방문 때 장병들과 좀 더 자유롭게 어울렸다면 그런 사진 하나쯤은 남았을 터다. 하다못해 한 여군이 자신의 모자를 박 대통령에게 씌워줬을 지도 모를 일이다. 또는 방미 중 '한미 우호의 밤' 문화행사 때 연주자로 미국을 대표하는 재즈 뮤지션을 불러 인사를 나눴다면 어땠을까? 만찬 디저트로 미국식 컵케익을 먹었어도 좋았겠다. 이런 친근하고 인간적인 사진 한장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