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詩 언어가 된 노동의 즐거움, 그 35년간의 결실

머니투데이 이철경 시인,문학평론가 2015.08.22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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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강태승 시인의 '칼의 노래'…자연으로 돌아간 풍경 속에, 비로소

편집자주 '시인의 집'은 시인이 동료 시인의 시와 시집을 소개하는 코너다. 시인의 집에 머무는 시인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감상하고, 바쁜 일상에서도 가깝게 두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시와 시집을 소개한다. 여행갈 때,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시 한편을 읽을 수 있는 여유를 갖는 일, 시 한수를 외우고 읊을 수 있는 삶의 여유를 갖는 것 또한 시인들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시인의 집]詩 언어가 된 노동의 즐거움, 그 35년간의 결실


여름휴가를 서해 광천마을로 다녀왔다. 그곳에 은둔하며 글을 쓰고 있는 작가 형님과 아침저녁으로 동네 한 바퀴 돌며 산책했다. 한산한 거리엔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간간이 마당에 매어둔 강아지의 컹컹대는 소리만이 시골의 정적을 깰 뿐이다.

농로를 걷다가 마주친 빈집들을 보았다. 사람들이 공단으로 도시로 떠나고 없는 빈집은 한여름 넝쿨이 쓰러져가는 집 지붕까지 휘감고 있었다. 인적이 끊기면 원래 주인인 자연의 들풀과 씨앗이 마당에 자리 잡고 영역을 확대할 것이다. 김태승 시인의 시집 ‘칼의 노래’에 실린 ‘묵정밭이 사는 방법’은 그러한 상황을 잘 형상화했다.



사람이 버린 화전, 비로소 처음처럼 산다/산나물 돋는 눈동자 참나무로 짙푸른 눈썹/가을이면 붉은 입술 겨울이면 흰 손목과 발목/콧구멍에 산도라지 귓구멍에 개암나무/겨드랑이 살모사 정수리 까치집도 볼만하다/사람 떠나니 머루 다래 허리를 감고 돌아/오히려 줄 것이 많은 밭이다/다람쥐 구멍 팔수록 넉넉해지는 얼굴/산돼지 쏘다니면 저절로 생겨나는 우물, -‘묵정밭이 사는 방법’ 일부

화전민은 일제강점기까지 삼림벌채로 산간지방에 기거하며 농사를 지었다. 1970년 말에 이르러 ‘화전 정리법’에 따라 대부분 이주가 돼 현재는 사라졌다.



시인은 사람이 떠난 자리에 계절별로 “비로소 처음처럼” 자연으로 돌아간 풍경들을 그리고 있다. “사람 떠나니 머루 다래 허리를 감고 돌아/오히려 줄 것이 많은 밭이다”

모든 자연은 인간이 기거하면 망치기 일쑤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은 자연 생태적으로 스스로 치유하며 풍요로워진다. 시인은 자연과 함께 동화돼 ‘감자를 즐겁게 캐는 방법’이라거나 ‘즐거운 쟁기질’ 그리고 ‘농사를 즐기는 방법’ 등을 시집에 담았다.

시인이 35년간 써온 시는 노동의 기쁨과 시골의 풍경이 주류다. 그의 시선은 시골 이미지처럼 친근하다. 가령 “멍멍아 밥 먹으러 가자!/하늘은 푸르고 까치는 깍깍”(‘즐거운 노동’) 같은 시각, 청각적 전달은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사회는 인간의 편리함만 추구하며 자연을 황폐화하며 파괴해왔다. 전국 강줄기에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보를 만들고 시멘트로 공사한 예가 있다. 그러나 고인 물은 썩고 악취가 진동한다.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은 그나마 아직 살아있어서 다행이라 생각이 들 정도다.

한 권의 시집이 나오기까지도 35년이 걸릴진대 국토개발의 검토시간은 너무나 짧지 않은가. 긴 시간에 걸쳐 나온 한 권의 시집처럼 나라 살림도 깊은 통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 칼의 노래=강태승 시인/시산맥사/134쪽/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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