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맹희 별세-병석의 이건희 회장…삼성家 3형제는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2015.08.1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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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인 이병철 삼성 회장 장례식(1987년 11월)에서의 삼성가 3형제. 오른쪽 첫번째가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앞줄 왼쪽 첫번째는 이건희 삼성 회장, 오른쪽 옆(양복 입은이)은 당시 이창희 새한그룹 회장아버지인 이병철 삼성 회장 장례식(1987년 11월)에서의 삼성가 3형제. 오른쪽 첫번째가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앞줄 왼쪽 첫번째는 이건희 삼성 회장, 오른쪽 옆(양복 입은이)은 당시 이창희 새한그룹 회장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별세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아들들인 이건희 삼성 회장을 비롯한 삼성가 2세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투병 중인 이건희 삼성 회장이 생존해 있긴 하지만 장기간 입원으로 정상적인 회복 여부가 다소 불투명한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시대도 이제 저물었다는 견해도 나온다.

이맹희 회장의 별세와 함께 3형제의 가족사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맹희 회장은 삼성가의 장남이지만 후계자로 지명받지 못한 채 그룹 경영에서 밀려나 수십년간 야인으로 머물러 있었다.



60년대 초중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등에서 주요 보직을 맡았던 이맹희 회장은 1966년 고 이병철 회장이 한비 사태('사카린 밀수사건')의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을 때에는 아버지를 대신해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한비 사건이란, 삼성이 연산 33만t 규모의 비료공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요소비료 공정에 쓰이는 사카린 원료를 밀수입해 시중에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 큰 파문을 일으킨 사건을 말한다.

이병철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서 이맹희 회장은 주요 보직에서 밀려났고 1969년 동생인 고 이창희씨(전 새한그룹 회장)가 아버지(이병철 회장)와 그룹 비리에 대해 사정기관에 투서하면서 동생과의 연루 여부를 의심받기도 했다.



그 뒤로 이맹희 회장은 중국과 일본 등을 떠돌게 됐고 삼성과는 거리를 두게 됐다. CJ그룹에서 명예회장으로 호칭하기 이전에 불리던 전 제일비료 회장이라는 직함은 그가 재기를 모색했던 회사지만 이렇다할 실적을 내지 못 해 사업의욕이 더욱 꺾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제일비료라는 기업명에는 재기를 통해 삼성그룹의 초기 주력 계열사이던 제일모직, 제일합섬(이후 새한그룹으로 편입), 제일제당(현 CJ) 만큼 키워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아버지(이맹희 회장)는 할아버지(이병철 회장)로부터 사실상 내쳐졌지만 장손(이재현 CJ그룹 회장)은 달랐다. 이재현 회장은 어머니인 손복남 CJ그룹 고문 몫으로 돼 있던 주식 등을 바탕으로 주식 맞교환 등의 절차를 거쳐 1993년 삼성그룹에서 제일제당을 분리해 독립했다. 다만 이재현 회장이 최근 법적인 문제로 처벌을 받으면서 아버지의 임종을 못 하는 등의 가족내 불행도 겹쳐져있긴 하다.

이맹희 회장과 더불어 둘째인 고 이창희 회장의 삶도 굴곡이 심하다. 한비 사건 당시 삼성그룹 내의 오너일가 중 구속 등으로 사법처리를 받은 이는 이창희 회장이 유일했다. 이병철 회장은 경영 2선으로 물러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창희 회장이 아버지(고 이병철 삼성 회장)를 대신해 옥고를 치른 것이다.


하지만 풀려난 뒤 아버지의 경영복귀 등 여러 일이 얽히면서 이창희씨도 1969년 그룹을 떠나게 됐다. 이씨가 아버지의 비위 사실을 고발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이창희 회장은 삼성에서는 떠났지만 사업가로 재기를 꿈꾸면서 1973년 미국 회사와 합작으로 마그네틱미디어코리아(새한미디어의 전신)를 세워서 연매출 2000억 ~ 3000억원대의 회사로 성장시켰다.

그뒤 1987년 이병철 회장이 별세하면서 삼성의 주요 계열사 중 한곳이었던 제일합섬을 넘겨받아서 이창희 회장은 기존의 새한미디어와 함께 새한그룹으로 일궈냈다. 하지만 1991년 백혈병으로 이창희 회장은 타계했고 90년대 말 ~ 2000년대 초 외환위기의 외풍 속에서 새한그룹이 공중 분해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창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관 전 회장은 처벌을 받기도 했고 그뒤 또다른 아들인 이재찬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맹희 회장과 이창희 회장이 아버지와 사이가 벌어진 사이 후계자는 셋째인 이건희 회장으로 낙착됐다. 당초 삼성그룹의 미디어 계열사(동양방송, 중앙일보 등)를 맡는 것으로 가닥이 잡혀있던 이건희 회장은 특유의 집중력과 합리적인 처신 등으로 아버지의 인정을 받았다.

그뒤 1987년 아버지의 타계로 이건희 회장은 확고한 그룹의 1인자가 됐고 이후 신경영 선언, 반도체.휴대폰 사업 확대 등으로 삼성을 글로벌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IMF 외환위기와 이후 사업 전개 과정 등에서의 송사 등이 있었지만 경영활동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다만 이건희 회장은 개인적으로는 2선 후퇴와 복귀 등이 반복됐고 지난해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등 건강상의 문제도 따라다녔다. 이맹희 회장이 동생 이건희 삼성 회장을 상대로 상속 재산의 일부를 내놓으라는 소송을 건 것도 불운한 가족사의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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