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 엘리엇과 메르스 그리고 삼성

더벨 박종면 대표 2015.06.15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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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의 핵심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선 데 대해 투자금융업계에서는 음모론적 해석도 나온다.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지면서 불편해진 한·미관계를 배경으로 미국 벌처펀드가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삼성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IMF 외환위기 당시 국내에 반(反) 재벌전선이 형성된 것을 배경으로 미국을 주축으로 한 글로벌 금융자본에 의해 우리 기업들이 당한 것을 잊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런 정치적 해석을 하는 게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해외 언론들이 하나같이 삼성을 공격하는 엘리엇을 주주이익을 대변하는 행동주의 투자자라며 지지를 보내고 한국 정부도 못하는 재벌개혁을 엘리엇이 대신한다고 추켜세우는 현실 앞에서는 다른 해석이 오히려 순진할 수도 있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에다 글로벌 통화전쟁에서 지속적으로 밀리는 답답한 현실을 고려하면 미국계 엘리엇의 공격은 단순히 삼성이라는 특정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의 근원적 위기를 예고하는 어떤 시그널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엘리엇은 자신들이 주주가치 제고와 모범적 기업지배구조를 바탕으로 주주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행동주의 투자자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에서의 얘기다. 그들이 페루와 콩고 그리스 아르헨티나에서 보여준 무지막지한 행동들은 하이에나와 독수리를 연상시키는 냉혹한 벌처펀드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엘리엇은 삼성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면서 국내법에 따라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산정한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대신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자산가치 기준의 합병비율을 주장한다.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국제소송에 나설 태세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워 국내 기업들을 압박하고 털어간 것은 외환위기 때 해외 금융자본이 써먹은 전형적인 수법이다. 문제는 그때처럼 전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들에 동조하거나 방관하는 세력이 국내에 적지 않게 있다는 사실이다.


10% 가까운 지분을 보유해 삼성물산의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엘리엇과 손을 잡는다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무산되고 말 것이다. 이 경우 삼성의 승계구도와 새로운 지배구조 구축은 크게 요동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은 100조원 정도를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20조원 이상의 삼성계열사 주식을 보유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의 지배구조가 흔들리고 이로 인해 삼성계열사 주가가 크게 하락한다면 국민연금 역시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비단 국민연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삼성 주식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기관이라면 상황이 다 비슷하고 따라서 삼성과 엘리엇의 싸움에서 어느 쪽에 서야 할지도 분명하다.

이번 메르스 사태가 던지는 교훈 중 하나는 초기대응의 중요성이다. 메르스 사태에서는 초기대응에 실패해 삼성서울병원이 뚫렸지만 엘리엇과의 전쟁에서는 그래서는 안된다. 이것은 삼성이 앞으로 지배구조의 취약성을 개선하고 주주친화적 정책들을 펴는 것과 별개 문제다.

자본시장 참가자들과 정부 당국도 엘리엇의 공격을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삼성이 뚫린다면 다음 타깃은 지배구조 개편작업이 초기단계에서 진행 중인 현대차나 SK그룹이 될 수도 있다. 엘리엇의 삼성 공격이 메르스 사태의 재판이 된다면 삼성도, 한국 경제도 위기에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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