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책통]큰 불황에는 언제나 죽음이 화두

머니투데이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2015.02.07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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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책통]큰 불황에는 언제나 죽음이 화두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 '죽음'을 다룬 한 권의 책이 큰 화제를 끌었다. 30대 방송작가 미치 앨봄이 투병 중인 스승을 매주 화요일에 만나 수업을 받는 책인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다. 이 책에서 모리는 "나이 드는 것,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것이 누구나 겪어야 할 일이며 죽음 또한 삶의 일부"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때까지만 출판 시장에서 '죽음'은 그리 달가운 주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출판사는 밝은 색을 활용한 산뜻한 이미지의 양장본으로 포장함으로써 책을 팬시화했다.

이 책은 '카드 대란'이 터진 2003년에 다시 한 번 상종가를 쳤다. 이 해에 교보문고는 1998년과 2003년 두 시기의 베스트셀러를 비교 분석해 "경기가 어려울수록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따뜻한 이야기가 강세를 보인다"는 분석을 내놓았는데 두 시기 모두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유일한 책이 바로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닥친 2008년에도 죽음은 화두였다. 췌장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컴퓨터공학 교수 랜디 포시가 어린 시절의 꿈을 진짜로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 '마지막 강의'는 그해 종합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법정 스님은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순간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아름다운 마무리'를 내놓았다.

그해 연말부터 출판시장을 주도한 책은 신경숙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이다. 지하철에서 실종된 엄마를 온 가족이 찾아나서는 과정을 그리면서 엄마라는 존재의 실체를 확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엄밀히 말해 죽음을 다룬 소설은 아니지만 사라진 엄마가 나타나지 않았으니 사실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지금의 영상미디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KBS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자식들과 '불효 소송'을 벌이는 아버지 차순봉(유동근 분), SBS '펀치'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악성 뇌종양으로 좌절하는 검사 박정환(김래원 분), MBC '장미빛 연인들'에서 남편의 불륜으로 고통을 받는 고연화(장미희 분) 등은 '3개월 시한부 삶' 속에서 고투하고 있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89세 아내는 죽어가는 98세 남편에게 딱 3개월만 더 살아달라고 애원한다. '국제시장'의 덕수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앞만 보고 달려온 죽음을 앞둔 노인이다.

2015년 세계경제는 또다시 '대공황'이 우려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저출산 고령화, 소득격차 확대, 높은 청년 실업률과 자살율, 절반에 이르는 노인 빈곤율, 가계 부채 증가 등으로 한국 경제의 상황도 너무 좋지 않다. 이렇게 각종 지표가 좋지 않음에도 정부는 자주 정책 혼선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이한다. 따라서 올해도 죽음 또는 애도를 다룬 책이 출판시장을 크게 출렁이게 만들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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