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는 수명 '상대적 소비'도 움츠러들듯
전문가 "생산감소→실업률 상승 악순환 우려"
#지난 2월 롯데백화점 전략회의실에서 때아닌 세대 논쟁이 벌어졌다. 주제는 회원제 서비스 '영멤버스'의 도입 여부. 19~35세의 젊은 회원이 백화점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기존 롯데멤버스 회원보다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수차례 타당성 검토를 거친 끝에 롯데백화점은 지난 4월 영멤버스 서비스를 출시했다.
최근 소비시장이 직면한 인구전쟁의 한 단면이다. 늘어나는 인구에 맞춰 생산량을 키우기만 하면 됐던 기업들이 달라지는 인구 구성에 맞춰 마케팅 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와 민간단체에서 연이어 나온 몇 장의 인구추계 보고서가 출발점이 됐다.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한마디로 '인구의 역습'이다. 기대수명이 늘면서 전체인구는 생각보다 서서히 줄지만 출산율 저하가 지속되면서 생산과 소비의 핵심 연령대인 19~64세 인구가 급감한다는 점에서 '인구절벽'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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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상황은 몇 년 전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한국의 출산율은 10년 넘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운데 꼴찌를 맴돌고 있다. 일할 사람이 없는 시대를 맞은 한국사회가 다음으로 당면할 문제는 돈 쓸 사람이 없는 시대였던 셈이다.
통계청의 인구추계에 따르면 20대 인구는 2011년 691만명에서 올해 677만명으로, 30대는 808만명에서 777만명으로 줄어든다. 20~30대가 2011년 수준의 소비 규모를 유지한다고 해도 3% 이상의 소비 규모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40대 인구마저 올해부터 감소세로 돌아선다는 데 대한 우려가 크다. 40대는 전 생애에서 소비여력이 가장 큰 시점이다. 인구학에서는 40대 인구 감소를 생산과 함께 경제의 양대 주축 중 하나인 소비가 줄어드는 결정적인 신호로 본다.
미국의 경제전망 전문가 해리 덴트는 2011년 발간한 저서 '2013~2014 세계경제의 미래(The Great Crash Ahead)'에서 "한 사람의 일생 중 40대 후반에서 가장 많은 소비지출이 이뤄지고 결국 소비지출의 증가는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고 분석했다.
통계청은 40대 인구가 지난해 853만명을 정점으로 꺾이기 시작해 2021년 800만명 선 아래로 내려가고 2023년 778만명 수준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예측이 현실화된다면 10년 안에 40대 인구가 10% 가까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소비시장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문제는 젊은 층의 감소와 동시에 진행되는 빠른 고령화다. 2013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는 1990년 전체의 5.1%에서 2000년 7.2%(고령화사회), 2013년 12.2%로 늘었다. 이런 추세가 유지된다면 2018년에는 14.3%, 2026년에는 20.8%로 노인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서동필 우리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연구위원은 "인구감소로 소비의 절대규모가 줄어드는 데 이어 수명이 길어지면서 현재의 부를 저축 등을 통해 미래로 이연시키려는 경향까지 증가하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상대적인 소비마저 감소하게 된다"고 말했다.
소비인구 감소에 따른 경고음은 이미 현실화됐다. 2013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1년 신규 창업한 자영업이 99만4000개, 폐업한 자영업이 84만5000개로 나타났다. 폐업률이 85%다. 1년에 10명이 창업하면 9명 가까이 폐업한다는 의미다. 일본이 최근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사활을 걸고 나선 것도 인구 감소에 따른 자국내 소비 부진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해리 덴트는 "대규모 인구집단 소비가 정점을 지나고 씀씀이가 줄어들면 경제는 서서히 하강한다"며 "수요부족으로 물가가 떨어지고 생산이 감소하며 실업률은 상승하고 이는 다시 수요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통해 디플레이션이 발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