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잊혀질 권리만큼이나 기억할 의무 또한 네티즌의 중요한 책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불편한 진실을 잊지 말고 기록해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참사의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움직임은 기억할 의무의 정점을 찍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995년 유럽연합은 개인 정보 처리를 규정하는 '유럽 개인정보 보호 규정 및 지침'을 만들면서 '잊혀질 권리'를 처음으로 언급했다. 잊혀질 권리가 명문화된 것은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12년 EU가 일반정보보호규정을 제정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아직까지 잊혀질 권리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해야 하느냐를 두고 인터넷 업계와 유럽 정부는 갈등을 이어왔다.
검색 사업자의 서비스에 일부 제한을 인정하는 첫 판결로 `잊혀질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구글에게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려 현재 의미가 없거나 잘못된 정보들은 더이상 검색 결과로서 의미가 희박하기 때문에 발빠르게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을 수용했다.
구글은 유럽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삭제를 원하는 검색결과를 접수하는 페이지를 개설했고, 여기에는 불과 사흘동안 4만1000여개의 삭제요청이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는 곤살레스씨처럼 이미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기사도 있지만, 가족을 살해하려했던 혐의를 받았던 사람의 삭제 요청까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잊혀질 권리에 대한 EU과 한국 법제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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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개인정보보호法에도 `잊혀질 권리' 강화 움직임
사실 국내에서는 이미 잊혀질 권리행사가 폭넓게 보장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개인정보는 물론이고, 명예훼손이나 음란물 등 불법 정보는 정보주체가 삭제요청만 하면 곧바로 수용해야 한다.
국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망법)은 포털을 개인정보취급자로 인정해, 정보주체의 삭제 요청을 즉각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포털은 게시물 삭제 요청이 들어오면 곧바로 임시조치를 실시하고, 이를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 유권해석을 의뢰해 최종 삭제 여부를 판단한다.
사실상 많은 개인과 기업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블라인드를 이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잊혀질 권리를 명문화 하는 것은 개인들의 정보보호에 큰 의미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잊혀질 권리를 더욱 강조하는 법률 제정에 나서고 있다.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2월 정보주체의 게시물 삭제 요청이 접수되면 임시조치가 아니라 즉각 삭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망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최성진 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은 "검색에 대한 조치들이 확대되면 생길 '정보의 비대칭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시간과 비용을 들일 수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정보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미 걸러진 정보만은 얻게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특별한 제한 없이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삭제할 근거가 마련된다면, 그것이 더 큰 정보통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강정수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박사는 "법 권력을 소유한 집단에 유리하다"며 "국가권력과 기업권력, 정치인의 불편한 진실에 대한 접근성을 제한할 가능성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기억할 의무'도 중요한 가치"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잊혀질 권리만큼이나 기억할 의무를 주장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지속해서 평가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네트워크는 이를 위해 관련 뉴스와 기록, 희생자들의 귀환과 추모를 염원했던 시민들의 기록물을 모아 전시를 준비 중이다.
자칫 잊혀질 권리가 악용될 경우, 세월호 참사와 관련 있는 책임자들이 자신의 과거기록을 지워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잊혀질 권리가 국민의 알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윤종수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법으로 잊혀질 권리를 규정하는 것은 그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느냐라는 사회적 합의가 마련된 뒤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개별적인 사안에 따라 개인의 잊혀질 권리가 중요한지, 공공의 알권리가 중요한지 이익형량의 원칙에 따라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