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사의 자질?··· "집중력·섬세함에 동료와 '쿵짝' 중요하죠"

머니투데이 이언주 기자 2013.11.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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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문화人] 1. 손이천 K옥션 경매사

편집자주 문화계의 저변이 확대되고 새로운 문화콘텐츠가 등장하면서 직업군도 다양해졌다. 공연·미술·음악·출판 등 각 분야의 이색업종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이들이 느끼는 '특별한' 일의 매력에 대해 들어본다.

국내 미술품 경매회사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K옥션에서 홍보 담당을 겸하며 경매사로 일하고 있는 손이천 과장. 경매사는 경매현장에서 작품만큼 주목받는 또 다른 주인공이기도 하다. /사진제공=K옥션국내 미술품 경매회사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K옥션에서 홍보 담당을 겸하며 경매사로 일하고 있는 손이천 과장. 경매사는 경매현장에서 작품만큼 주목받는 또 다른 주인공이기도 하다. /사진제공=K옥션


"현재 최고가 33억5000만원입니다. 34억, 전화손님께 여쭤봅니다. 전화손님 34억원 하셨습니다. 34억 5000만원 하시겠습니까? ··· 더 이상 안 계시면 세 번 호가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34억, 34억, 34억원. '땅!' '퇴우이선생진적첩', 전화손님께 34억원에 낙찰되었습니다."

팽팽하던 긴장감은 경매사가 내리친 망치소리와 함께 분해됐고, 경매장엔 박수가 터졌다. 지난해 고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퇴우이선생진적첩'이 낙찰된 순간이다. 이런 경매현장에서 출품 작품만큼 주목을 받는 이가 있다. 바로 경매사.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속도감 있는 진행, 사람들을 집중시키며 많게는 몇 백점의 작품이 새 주인을 만나도록 현장을 주도한다.



이 낯설고도 궁금한 '경매사'라는 직업에 대해 K옥션의 경매사인 손이천 과장(37)에게 들어봤다.

"첫 경매를 앞두고 한 달 동안은 아무 약속도 잡지 않았어요. 마인드컨트롤 하면서 경매 연습에 매진하기 위해서죠. 요즘도 경매를 앞둔 며칠간은 특별한 일정을 만들지 않아요. 집중력 싸움이기도 하고, 비결은 오직 '연습'뿐이거든요."



일단 단상에 올라간 경매사에게는 권한과 함께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 경매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가격을 부르는 것. "처음에 경매 책자 두 권을 집에 들고 가서 숫자를 일일이 손으로 써가며 읽었어요. 언제 어느 가격대가 튀어나와도 정확하게 읽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한동안 숫자를 중얼거리며 다녔고 운전 중에도 갑자기 호가를 하기도 했어요."

'멀티맨' 자질도 있어야만 한다. 출품작이나 패들(번호표)을 든 사람을 놓치지 않아야 하며 경매 금액이 오를 때마다 표시되는 스크린과 박자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현장경매뿐만 아니라 해외전화나 서면경매도 함께 진행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과 섬세함이 필요하다.

경매사 자격은 어떻게 주어질까. 손 과장은 "경매사 양성기관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일단 경매 회사에 들어오면 기회는 열려 있다"며 "입사 후에는 동료들의 추천과 치열한 경합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전 직원들 앞에서 실제 경매와 똑같이 리허설을 하면 동료들이 20~30개 항목에 대해 평가를 합니다. 목소리 톤이나 전달력, 말의 속도와 흡입력, 순간 판단력, 손동작 등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보는 거죠."

그런데 그는 경매사란 직업이 결코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경매는 절대적으로 '협업'이라며 현장에서 동료들과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화경매나 서면경매를 맡은 직원, 모니터를 다루는 직원, 보조 경매사와도 끊임없이 눈치를 봐가며 일해야 한다. 물론 현장 분위기를 살피며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경매를 독려해야 한다.

그는 "아무리 뛰어난 경매사가 있다고 해도 객원 경매사를 쓰기 힘든 이유"라며 "평소 함께 생활하며 서로의 습관이나 성격까지 잘 알고 있는 동료들과 일할 때 '쿵짝'이 잘 맞는 건 당연하지 않냐"고 말했다.

또 중요한 것으로 공정성과 의연함을 꼽았다. "뜻하지 않게 손해 보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고, 회사에 손해를 입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정신을 바짝 차리게 돼요. 혹시 실수를 하더라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다시 분위기를 잘 이끄는 것이 중요하죠. 어느덧 4년차가 됐지만 여전히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경매사, 뉴스 생방송 이상으로 긴장되고 준비할 것이 많지만 아직 국내에선 희소성도 있기에 더 특별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손 과장의 눈빛에서도 일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과 자신감이 묻어난다. "해외에는 나이 지긋한 경매사가 많아요. 우리도 역사가 쌓이고 미술시장이 더 좋아진다면 곧 그렇게 되겠지요. 나중에 더 나이가 들어서도 오래도록 멋지게 이 일을 하고 싶어요."

수백개 작품의 주인을 찾는 경매사 손이천 K옥션 과장(오른쪽)이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K옥션수백개 작품의 주인을 찾는 경매사 손이천 K옥션 과장(오른쪽)이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K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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