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세무사 "전관 출신에 밀려" 어둠의 길로···

머니투데이 최우영 기자 2013.10.0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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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몰락-8회] 세무대리 수수료, 20년째 제자리

편집자주 직업명 끝에 '사'가 들어간 전문직을 성공의 징표로 보던 때가 있었다. 이제 전문직의 입에서도 하소연이 나오기 시작했다. 낮아진 문턱과 경쟁 심화로 예전의 힘과 인기를 잃어버린 전문직의 위상을 돌아본다.

지난 6월 한국세무사회 회장으로 세번째 선출된 정구정 회장(58). 정 회장은 처음 회장으로 선출된 2003년 변호사, 회계사가 세무사 명칭을 사용할 수 없도록 세무사법을 개정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제공=한국세무사회지난 6월 한국세무사회 회장으로 세번째 선출된 정구정 회장(58). 정 회장은 처음 회장으로 선출된 2003년 변호사, 회계사가 세무사 명칭을 사용할 수 없도록 세무사법을 개정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제공=한국세무사회


# 20년차 세무사 A씨(66)는 최근 사무실 직원 수를 줄였다. 20년째 세무대리 수수료는 제자리인데 사무실 월세와 보증금은 치솟았다. 덤핑 공세를 펼치는 경쟁 법인들에게 빼앗긴 거래처가 올해만 십여곳이다. A씨는 "1년 동안 기장료, 조정료 안 받고 서비스해준다는 세무사까지 속속 등장하는 등 '제살 깎아먹기'가 심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1만명'(8월말 기준) 시대를 맞은 세무사들이 신음하고 있다. 일부 회계사, 변호사 뿐 아니라 심지어 무자격자들의 세무업무 대리까지 늘어나면서 세무사들의 몫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좌절한 일부 젊은 세무사들은 급기야 '탈세 브로커'라는 '어둠의 길'을 찾기도 한다.



/자료제공=국가통계포털/자료제공=국가통계포털
◇20년째 똑같은 수수료

한 세무사는 "한달에 개인사업자 10만원, 법인 20만원이라는 시장 가격이 20년째 도통 오르지 않는다"며 "월 2~3만원만 내고 기장대리 해달라고 요구하는 고객도 수두룩하지만, 할인을 거부하면 거래 끊을까봐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2002년 5142명이던 세무사는 올해 약 2배인 1만406명까지 늘었다. 여기에 변호사와 회계사들도 세무사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2002년에는 4572명의 회계사와 229명의 변호사가 세무대리 업무를 봤지만, 2009년에는 그 수가 회계사 8876명, 변호사 2566명 등으로 급증했다.

한 세무사는 "유사 직종도 모자라 월급 주고 세무사 이름만 빌리는 무자격자까지 급증하고 있는데 정부에서 방관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사고' 나면 세무사만···
세무사의 기본 업무는 장부 정리(기장 대리), 신고·납부 대리부터 과세 불복절차 대리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문제는 세무사가 고객에게 자료 요구를 강제할 수 없는 것. 고객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납세 대리를 하다보면 의도치 않은 탈세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땐 세무사에세도 책임이 돌아간다.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 보험에 드는 세무사도 많다.

한 세무사는 "성실히 납세하도록 유도해야 할 세무사들이 고객에게 '최소한 이 정도까지는 신고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일이 많다"며 "보험 범위를 넘는 '큰 사고'만 안 나길 바랄 뿐"라고 말했다.

◇세무사도 양극화
국세청 지방청장, 국장급 고위공무원 출신 등이 모여 만든 '기업형 법인'들은 대기업이 세무조사를 받으면 '해결사' 역할을 하면서 여전히 큰 돈을 벌고 있지만 이는 극소수다. 개인 사무실을 낸 대부분의 세무사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경쟁 과열 탓에 새내기 세무사들은 개업마저도 쉽지 않다. 세무전문대를 졸업하고 자격증을 딴 젊은 세무사들은 소호(Soho) 형태로 공동 명의 개업을 하기도 한다. 저마다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고 근로소득자로 이름을 올려 조금이나마 부담을 줄여보자는 취지다. 한 중견 세무사는 "아들이 세무사 시험 봐서 거래처를 물려받겠다고 해도 업계 전망이 어둡다며 다른 진로를 권유할 정도"라고 했다.

세무사 자격증을 따고도 일반 회사에 입사해 세무 업무를 보는 이들도 있다. 그마저도 힘든 새내기 세무사들은 '어둠의 영역'에 손을 뻗친다. 3년차 세무사 B씨(28)는 "새 거래처를 뚫어보려 해도 전관 출신들이 꽉 잡고 있어 시장에 진입하기 쉽지 않다"며 "어쩔 수 없이 '성실납세 조력자'보다는 '탈세 브로커'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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