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올리든 말든 떠들어라" 부자들 느긋한 이유

머니투데이 권성희 증권부장 2013.08.17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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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투자노트]

근로소득세 인상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홍역을 치렀다. 연봉 얼마 이상을 근소세 인상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도 많았다. 논란 끝에 고액 연봉자의 근소세 부담을 대폭 늘리는 쪽으로 증세의 가닥이 잡혀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연봉의 많고 적음을 떠나 생각해볼 문제는 왜 근소세가 증세의 초점이 되어야 하느냐는 점이다. 세금을 걷기가 가장 쉬운 소득이 근로소득이기 때문에 증세도 근소세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이 아닐까 의혹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부자 증세를 얘기하면서 연봉 7000만원부터 세율을 올려야 한다거나 연봉 1억원부터 세율을 올려야 한다거나 하는 논의는 사실 따지고 보면 한참 핵심에서 벗어난 얘기다. 연봉 9990만원은 고액 연봉자가 아니고 연봉 1억원부터는 고액 연봉자라는 말도 안 되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세제개편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진짜 부자들은 이 증세 논쟁에서 한참 비켜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소세가 대폭 오르는 기준이 연봉 7000만원이든, 연봉 1억원이든 증세의 대상이 되는 고액 소득자 중 상당수는 아마도 부자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연봉을 많이 받는다고 부자라는 생각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생각이다. 연봉이 1억원이지만 사는 집 외에 다른 자산이 없고 그 집마저 빚을 내서 산 집이라면 그 사람은 부자라고 하기 어렵다. 반면 연봉이 3000만원이라도 건물이 있어 임대소득이 연간 2억원씩 발생한다면, 혹은 작은 사업체가 있어 사업소득이 연간 5억원이라면 이 임대소득자나 사업소득자가 고액 연봉자에 비해 부자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세수 증대를 위한 수단으로 부자 증세가 논의됐던 미국에서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나왔다. 부자 증세를 논할 때 항상 고액 연봉에 초점을 두고 논쟁이 진행되는데 과연 부자들의 소득은 주로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인가를 따져보는 보고서였다.

미국의 비당파 연구소인 예산과 정책우선순위 센터의 자레드 번스타인이 진행해 최근 발표한 이 조사 결과를 보면 부자들은 소득의 대부분을 월급이나 상여금 같은 급여가 아니라 투자와 사업에서 얻고 있었다. 특히 상위 1% 부자와 나머지 99% 평범한 사람들의 소득원은 큰 차이를 보였다.


미국 국민의 99%는 소득의 64%가 근로소득이었다. 반면 상위 1% 부자는 전체 소득의 39%만이 근로에서 발생했고 24%가 사업, 29%가 투자에서 창출됐다. 미국의 상위 0.1% 슈퍼리치들은 더욱 투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전체 소득의 35%가 배당금이나 이자, 기업 가치 상승에 따른 자본이득 등 투자에서 나왔다.

한마디로 부유해질수록 근로보다는 투자와 사업에서 버는 돈이 늘어났다. 이번 조사를 주도한 번스타인은 "일단 소득 상위 1%에 포함되면 소득의 3분의 2는 근로 외에 다른 부분에서 창출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아무리 고액 연봉을 받아도 월급쟁이가 급여를 가지고 상위 1% 부자가 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다만 상위 1%의 부자들이 전체 소득의 3분의 2 가량을 근로 외에 사업이나 투자에서 벌어들인다고 해서 부자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세금정책센터의 로버튼 윌리엄스는 "소규모 사업체를 소유한 오너들은 주 7일, 하루 24시간 일한다는 생각으로 자기 사업에 매달려 있다"며 "오너들이 월급 받는 근로자들보다 일을 덜한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사람들이 벌어들이는 소득의 종류와 그들이 하는 일의 강도 사이에는 거의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투자소득이라고 해서 돈만 있다고 쉽게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이 아니다. 투자소득조차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지 연구하고 고민하고 또 위험을 감수해 얻은 고된 노동의 결과라는 것이다.

따라서 근로소득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소득에 대해 공평하게 과세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되 사업소득이나 투자소득, 혹은 임대소득이 근로소득에 비해 쉬운 돈이라는 인식은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임대소득자조차 건물을 잘 관리하고 정비하고 월세를 꼬박꼬박 받아내기 위해 나름의 수고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모든 소득에는 벌어들이는 사람의 땀이 녹아 있다고 강조한다 한들 부자 증세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그 말 속에는 부자와 부자가 아닌 사람을 가르는 분열의 논리가 잠재해 있다.

이런 편가르기 증세에서는 내는 세금이 많든 적든 관계없이 납세자가 자부심을 느끼기가 어렵다. '나는 부자도 아닌데 진짜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야지'라거나 '열심히 일해서 돈 번게 잘못이냐'는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1%와 99%를 나눠 과세하려는 부자 증세보다는 근로소득뿐만 아니라 모든 소득에 대해 종류별로 합리적이고 공평하게 과세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는 것이 세금을 내는 누구에게도 억울한 느낌을 덜 들게 만드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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