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연봉의 많고 적음을 떠나 생각해볼 문제는 왜 근소세가 증세의 초점이 되어야 하느냐는 점이다. 세금을 걷기가 가장 쉬운 소득이 근로소득이기 때문에 증세도 근소세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이 아닐까 의혹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최근 세제개편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진짜 부자들은 이 증세 논쟁에서 한참 비켜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소세가 대폭 오르는 기준이 연봉 7000만원이든, 연봉 1억원이든 증세의 대상이 되는 고액 소득자 중 상당수는 아마도 부자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세수 증대를 위한 수단으로 부자 증세가 논의됐던 미국에서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나왔다. 부자 증세를 논할 때 항상 고액 연봉에 초점을 두고 논쟁이 진행되는데 과연 부자들의 소득은 주로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인가를 따져보는 보고서였다.
미국의 비당파 연구소인 예산과 정책우선순위 센터의 자레드 번스타인이 진행해 최근 발표한 이 조사 결과를 보면 부자들은 소득의 대부분을 월급이나 상여금 같은 급여가 아니라 투자와 사업에서 얻고 있었다. 특히 상위 1% 부자와 나머지 99% 평범한 사람들의 소득원은 큰 차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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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민의 99%는 소득의 64%가 근로소득이었다. 반면 상위 1% 부자는 전체 소득의 39%만이 근로에서 발생했고 24%가 사업, 29%가 투자에서 창출됐다. 미국의 상위 0.1% 슈퍼리치들은 더욱 투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전체 소득의 35%가 배당금이나 이자, 기업 가치 상승에 따른 자본이득 등 투자에서 나왔다.
한마디로 부유해질수록 근로보다는 투자와 사업에서 버는 돈이 늘어났다. 이번 조사를 주도한 번스타인은 "일단 소득 상위 1%에 포함되면 소득의 3분의 2는 근로 외에 다른 부분에서 창출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아무리 고액 연봉을 받아도 월급쟁이가 급여를 가지고 상위 1% 부자가 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다만 상위 1%의 부자들이 전체 소득의 3분의 2 가량을 근로 외에 사업이나 투자에서 벌어들인다고 해서 부자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세금정책센터의 로버튼 윌리엄스는 "소규모 사업체를 소유한 오너들은 주 7일, 하루 24시간 일한다는 생각으로 자기 사업에 매달려 있다"며 "오너들이 월급 받는 근로자들보다 일을 덜한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사람들이 벌어들이는 소득의 종류와 그들이 하는 일의 강도 사이에는 거의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투자소득이라고 해서 돈만 있다고 쉽게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이 아니다. 투자소득조차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지 연구하고 고민하고 또 위험을 감수해 얻은 고된 노동의 결과라는 것이다.
따라서 근로소득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소득에 대해 공평하게 과세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되 사업소득이나 투자소득, 혹은 임대소득이 근로소득에 비해 쉬운 돈이라는 인식은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임대소득자조차 건물을 잘 관리하고 정비하고 월세를 꼬박꼬박 받아내기 위해 나름의 수고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모든 소득에는 벌어들이는 사람의 땀이 녹아 있다고 강조한다 한들 부자 증세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그 말 속에는 부자와 부자가 아닌 사람을 가르는 분열의 논리가 잠재해 있다.
이런 편가르기 증세에서는 내는 세금이 많든 적든 관계없이 납세자가 자부심을 느끼기가 어렵다. '나는 부자도 아닌데 진짜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야지'라거나 '열심히 일해서 돈 번게 잘못이냐'는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1%와 99%를 나눠 과세하려는 부자 증세보다는 근로소득뿐만 아니라 모든 소득에 대해 종류별로 합리적이고 공평하게 과세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는 것이 세금을 내는 누구에게도 억울한 느낌을 덜 들게 만드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