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매출 3000만원 치킨집, 남는 건 100만원?

머니투데이 신희은 기자 2012.08.24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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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 자영업자다]35세 10년차 자영업자의 서글픈 희망가

낮 12시30분. 조민욱(가명·35)씨의 하루는 싱싱한 파를 고르는 일로 시작된다. 대형마트에서 신선한 파 10단을 샀다. 2만8000원. 요 근래에 파값이 2000원 넘게 올랐다.

경복궁역에서 400m 정도 떨어진 곳이 조씨 일터다. 건물 2층에 자리잡은 'ㄱ'치킨 프랜차이즈에서 작년 5월부터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1층에도 치킨호프가 있다. 바로 건너편에도 치킨집이 있다.



오후 2시30분. 60대 손님 4명이 들어왔다. 후라이드 치킨 한 마리에 맥주 500cc 세 잔을 주문했다. 조씨는 닭고기에 크리스피 옷을 입혀 기름에 7분간 튀겼다. 박민수(43·가명) 사장은 조씨가 건넨 음식과 맥주를 날랐다.

월매출 3000만원 치킨집, 남는 건 100만원?


첫 매상은 2만4000원. 첫 손님 이후로 텅 빈 홀에는 최신가요가 트랙을 돌아 몇 번이고 되풀이됐다. 오후 4시에 늦은 점심을 몇 가지 반찬으로 5분 만에 비웠다. 6시가 다 되도록 14개 홀 테이블에는 에어컨 바람과 최신가요만이 오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찰나 주문전화가 정적을 깼다. "매운 맛 한 마리 배달돼요?" 인근 주민들이 닭을 한, 두 마리씩 주문하기 시작했다. 5시 넘어 출근한 배달 아르바이트 학생이 우의를 입고 헬멧을 썼다. "조심히 다녀" 사고가 나면 다치는 것도 문제지만 며칠 고생해 번 돈이 한 번에 다 날아갈 수도 있다.

"얼마나 걸려요? 빨리 갖다 주세요." 손님들의 채근에 조씨의 손놀림이 분주해졌다. 닭에 옷을 입혀 튀기고 건져내 포장하고 배달을 보내는 일, 주문을 받고 서빙하고 손님이 떠난 자리를 치우고 설거지 하는 일, 틈틈이 기름으로 얼룩진 바닥을 닦고 식자재를 보충하는 일까지, 조씨가 할 일은 가짓수를 꼽기 힘들 정도다.

해가 지자 홀에도 손님이 찾아들었다. 퇴근한 직장인들이 소주, 생맥주에 닭을 안주 삼아 야구 삼매경에 빠졌다. 14개 테이블 중 절반이 찼다. 바쁜 날은 조씨와 사장을 도와줄 아르바이트 학생이 한 명 더 온다. 일손은 덜지만 인건비 부담에 그만큼 더 팔아야 한다.


조씨는 오후 내내 의자에 한 번 앉지 못했다. 9시가 돼서야 한숨 돌렸다. 카운터 한 켠에서 직접 튀긴 닭 몇 조각과 콜라 한 잔으로 저녁 끼니를 때웠다. 팔에는 기름에 댄 자국이 선명하다. 처음엔 아렸지만 이젠 느낌도 없다.

"저도 작년 1월까진 사장이었어요. 목 좋은 홍대 놀이터 근처 건물 2층에 40평대 PC방으로 사업을 시작했죠. 나중에 이자까야식 주점으로 바꿨는데 잘 안됐어요. 강화유리 시공, 핸드폰 판매에서부터 가게운영까지 10년을 한눈 안 팔고 열심히 달려왔는데도 정말 어려운 게 자영업이예요."

조씨는 군 제대 후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려다 여의치 않아 창업을 택했다. 처음 차린 PC방에선 담배연기 속에서 끼니도 걸러 가며 밤낮 없이 일했다. 연애할 시간도, 마음 놓고 놀 시간도 없이 매달렸다. 하지만 돈을 벌 만하면 컴퓨터 업그레이드에 게임회사에 지불하는 비용까지 손에 쥐는 게 적었다.

5년을 버틴 끝에 안되겠다 싶어 7000만 원을 들여 주점으로 바꿔 재창업을 했다. 매일 아침 싱싱하고 질 좋은 식자재를 사다 요리해 내놓으며 온갖 정성을 들였다. 그런데 홍대에 유명 포장마차가 들어서 유행을 타면서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급기야 5개월도 안 돼 건물주가 리모델링을 이유로 재계약 불가를 통보해왔다. 소송까지 갔지만 높은 권리금과 리모델링 비용을 고스란히 날리고 폐업을 해야 했다. 조씨가 떠난 건물에는 지금 대형 의류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10분쯤 쉬었을까. 조씨는 고단한 몸을 다시 일으켰다. 한 달에 2번 쉬고 하루 꼬박 12시간을 서서 일하는 그는 자영업을 하는 동안 제 때, 제대로 된 밥을 먹어본 지가 가물가물해 건강이 좋지 않다. 하루 종일 기름과 씨름을 하다보면 입맛이 없어 하루 한 끼로 버티는 날도 많다.

월매출 3000만원 치킨집, 남는 건 100만원?
홀 손님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두 테이블 정도만 남았다. 밤 11시가 되자 가게 문을 열 때 꺼내 입었던 로고가 찍힌 티셔츠가 기름과 땀으로 범벅이 됐다. 배달 17건에 테이블 매상 7건을 합해 61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루에 10만 원도 못 파는 치킨집이 주변에 흔한 것을 감안하면 적은 매출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는 안 된다. 치킨에 맥주가 잘 나가는 여름엔 월 매출 3000만 원은 맞춰야 사장이 100~200만 원이라도 남길 수 있다.

매출의 60%는 생닭, 소스 등 재료 일체를 공급해 주는 프랜차이즈 본사 몫이다. 결국 나머지 40%인 1200만 원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 1200만 원에서 월세 400만 원, 인건비 500만 원(주방 1명+ 아르바이트 2명), 전기·수도요금 등 각종 공과금과 세금 200만 원을 제하면 사장이 직원보다 적게 가져가는 달도 흔하다. 말이 좋아 '사장님'일 뿐 조금이라도 돈을 벌려면 직원 없이 혼자 엄청난 노동을 감당해야 한다.

손님들에게 넉넉하게 서비스를 주고 싶어도 치킨 소스 한 봉지에 600원, 무 한 팩에 300원씩 본사에서 사와야 하기 때문에 여의치 않다. 어떨 땐 프랜차이즈 본사의 노예가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아무리 재료비에 마케팅까지 해준다지만 매출의 60%를 본사에 주느니 내가 시장에서 생닭을 사서 튀겨볼까? 하는 생각이 불쑥 불쑥 든다"고 사장 박 씨는 털어놨다. 하지만 고객들이 유명 프랜차이즈가 아니면 선호하지 않는 게 사실이다. 자체 브랜드로 사업을 하면 남는 건 더 많겠지만 인지도가 낮아 매출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생닭을 양념하고 튀김옷을 개발하고 독특한 소스를 확보하는 것도 혼자 감당하기에는 만만찮은 일이다.

본사에 나가는 돈이 많아도 그나마 매출이 받쳐주면 천만 다행이다. 손님이 적으면 식자재 회전율이 낮아 맛이 떨어진다. 그나마 있던 손님들도 점점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악순환의 덫에 걸려들기 십상이다.

조씨는 종업원이지만 주인처럼 일한다. 내년에 치킨집 창업에 도전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10년을 자영업자로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이제 와서 다른 길을 가는 것도 여의치 않다.

"치킨집이 엄청나게 생기고 경쟁도 치열하다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좁은 평수에서 한정된 자금으로 창업할 수 있는 게 분식, 치킨, 피자 뿐 이예요. 너른 터에서 유명한 프랜차이즈 커피숍 하면 좋겠지만 무턱대고 빚내서 할 순 없으니까요."

박 사장은 그런 조씨를 보면 화가 치밀 때도 있다고 했다. "이 친구나 저나 정말 열심히 일하는데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밖에 못 번다는 게 화가 나요. 뭔가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장은 할 수만 있다면 치킨집을 접고 좀 더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업을 하고 싶다.

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박영일(가명·20)군은 월 130만 원의 월급을 모아 전날 대학 2학기 등록금 208만 원을 내고 왔다. 장학금을 받아 이번에는 부담이 좀 줄었다. "취업도 쉽지 않고 돈만 있으면 이런 번듯한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손님이 모두 떠난 가게. 주방의 기름때를 거품을 내 싹 지우고 홀을 정리하고 정산을 마치고 나니 12시30분이 다 됐다. 조씨와 아르바이트 학생은 문을 닫고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길고 고단한 하루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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