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1 부상하는 중국굴기, 시진핑 10년에 달렸다

머니투데이 베이징=홍찬선 특파원 2012.02.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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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의 딜레마'에 직면한 중국 ③-끝]국가 힘 빼고 시장 키우는 전환이 핵심

‘지금까지는 하나의 뚜렷한 정답이 있는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정답이 여러 개 있고, 답이 없는 가운데 가장 근접한 해법을 찾는 도덕철학문제를 풀어야 한다.’

G1 부상하는 중국굴기, 시진핑 10년에 달렸다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을 비롯한 차세대 리더들에게 주어진 과제의 성격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지금까지 지도자들은 ‘절대적 빈곤에 따른 배고픔’ 해결이라는 쉬운 문제를 풀었지만 앞으로는 ‘상대적 빈곤으로 인한 배 아픔’을 풀어야 하는 난제에 빠져 있다는 뜻이다.



◇세계은행 '중국의 중등소득함정 위기' 경고한 까닭은?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시행하면서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30년 이상 연평균 10%라는 전례 없는 초고속으로 성장했다. GDP(국내총생산)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2위(G2)로 우뚝 솟았다. 2018년 전후해선 미국을 앞질러 G1이 된다는 전망도 잇따르며, ‘베이징 컨센서스’와 중국모델이라는 말도 유행어가 되고 있다. 미국식 국제문제 해결방식인 ‘워싱턴 컨센서스’는 한 물 갔고 중국이 대신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 모순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중국모델을 얘기하는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국가행정학원의 주리자(竹立家) 공공관리연구부 교수)는 비판이 나온다. 과거의 성공경험에 집착하다 보면 휴브리스(hubris, 성공의 함정)에 빠져 오히려 실패로 연결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의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과 외국의 기술과 자본을 결합시켜 ‘세계의 공장’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보여줄 수 있었던 지금까지의 성공모델은, 성장 속도가 둔화되면서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세계은행이 “국유기업을 개혁하지 않으면 '중등소득함정(중진국 함정)'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민꽁황(民工荒)이란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로 구인난이 뚜렷해지면서 중국도 루이스변곡점에 도달했다. 무제한으로 공급되던 저금리 노동력이 고갈되면서 임금이 올라 경쟁력이 떨어지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면 1인당 국민소득이 3000~9000달러에 도달했던 국가들이 위기에 빠진 것처럼 '중등소득함정에 빠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도움에서 장애로 변하는 국가와 국유기업, 기득권 버리고 시장시스템 정착 절실


“정부가 그동안은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돕는 손(helping hand)’이었다. 하지만 점차 민간기업과 경쟁하면서 ‘약탈자의 손(grabbing hand)’으로 바뀌고 있다”(국무원 발전연구센터의 장원쿠이(張文魁) 기업연구소 부소장)는 비판이 나오는데도 국가와 국유기업의 파워는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중국 민간기업의 중심지로 유명한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가 고리대 사채(私債)에 시달리며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는 ‘원저우 병’에 걸려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 정부도 이런 문제를 알고 12차5개년 계획(2011~2015년)의 핵심정책 과제를 ‘경제발전 모델의 전환(轉型, 쭈안싱)’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쭈안싱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 실현계획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민간기업 활성화를 위해 2010년 2월부터 시행된 ‘민간기업 지원을 통한 비공유제 경제발전 방안(신36조)’가 여전히 ‘사문화(死文化)’된 상황이다. “기득권층이 말로만 개혁을 외칠 뿐 가진 것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 개혁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쑨리핑(孫立平) 칭화대 사회학과 교수)이다.

중국은 헌법에서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서민들이 어려워지고 위기가 주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국가가 ‘시장의 실패’를 해결하면서 균형 잡힌 성장과 발전을 이루는 독특한 시스템을 구현하겠다는 뜻이다. 이상은 좋지만 현실적으로는 정부가 계획을 세워 국영기업을 통해 집행하는 ‘국가자본주의’에 불과하다는 비판(우징롄(吳敬璉)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연구원)이 나오고 있다.

올 10월에 차기 주석으로 내정 받고 내년 3월부터 대권을 넘겨받는 시진핑 부주석과 차기 총리로 확실시되는 리커창(李克强) 부총리를 쌍두마차로 하는 ‘5세대 지도부’는 ‘중국의 틀’을 바꾸는 과제를 안고 있다. 외형성장에서 질적 발전으로, 인치(人治)에서 법과 시스템 중심의 법치(法治)로, 선부론(先富論)에서 조화(和諧, 허시에)와 공부론(共富論)으로…. 지난 30여 년 동안 쌓여온 모순이어서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과제다. 더욱이 앞으로 2~3년이라는 단기간 안에 해결해야 한다.

◇준이회의와 11기3중전회보다 더 중요한 방향전환 필요

1921년에 창당된 중국공산당은 91년의 역사 속에서 두 번의 큰 방향 전환이 있었다. 첫째는 1935년 1월에 있었던 준이(遵義)회의이고 두 번째는 1978년의 11기3중전회였다. ‘창쩡(長征)’ 과정에서 열렸던 준이회의는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이 주도권을 잡고 농민중심의 혁명을 이끌도록 결정했다. 11기3중전회는 마오 주석의 사망 이후 정권을 잡은 덩샤오핑(鄧小平) 전 주석이 개혁개방정책을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시 부주석과 리 부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5세대 지도자들은 준이회의와 11기3중전회를 능가하는 세 번째 방향 전환이란 과제를 안고 있다. 기득권과 부패의 만연으로 사회불안이 높아지고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 ‘시진핑의 향후 10년’이 중국이 G1으로 부상하느냐, 아니면 중등소득국가의 함정에 빠져 위기로 추락하느냐를 결정할 것이다.

“개혁과 개방을 하지 않아, 경제 발전과 인민들의 생활 개선을 하지 않으면 오직 죽음으로 가는 길뿐이다. 개혁개방 노선은 100년 동안 흔들림 없이 지켜야 한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였던 덩샤오핑 전 주석이 20년 전에 88세의 노구를 이끌고 난쉰장화(南巡講話)에서 강조한 말이다. 난쉰장화 때보다 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는 시 부주석이, 특히 지도력이 갈수록 약화되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 해결방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중국은 물론 세계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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