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함정'에 빠진 중국은행

머니투데이 홍찬선 기자 2012.02.2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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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World News/홍찬선 특파원의 China Report<16>

편집자주 중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비행기로 2시간도 채 안 걸린다. 1년에 왕래하는 사람이 600만명을 넘고, 교역량도 2000억달러를 초과했다. 5000년 역사도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1948년부터 1992년까지 국교가 단절돼 있던 44년 동안, 매우 멀어졌다. 아직도 생각과 체제에서는 좁혀야 할 게 많다. 차이나 리프트는 홍찬선 머니투데이 베이징 특파원이 2주에 한번씩, 먼 중국을 가깝게, 가까운 중국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중국 최대은행인 공상은행 로고. 중국 최대은행인 공상은행 로고.


중국이 ‘은행의 휴브리스’에 빠져 있다. 휴브리스(hubris)는 과거에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방법을 우상화함으로써 ‘성공의 함정’ 빠진다는 뜻이다. 휴브리스는 원래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려는 인간의 오만을 뜻하는 그리이스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말을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가 역사해석에 사용하면서 유명해졌다.

중국이 은행의 휴브리스에 빠졌다는 말은 은행부문에서의 성공 경험이 중국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은 1978년부터 시행된 개혁개방 과정에서 발생한 은행의 부실채권을 엄청난 예대금리를 통한 이윤으로 해결하는 ‘중국식 해법’으로 부실채권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 은행들이 부실채권을 정리한 든든한 배경은 엄청난 이익이다. 꽁샹(工商) 쟈오샹(招商) 등 16개 상장 은행의 지난해 1~9월 중 순이익은 1조2000억위안(216조원)에 달했다. 전년동기보다 무려 40~50%나 증가했다. 상업은행만의 같은 기간 순이익은 8173억위안으로 35.4% 늘어났다. 1인당 순이익은 40만위안(7200만원)이나 됐다. 매출액이 2000억위안 이상인 제조업의 1인당 순이익 3만6800위안(662만4000원)보다 10.9배나 많은 수준이다.

중국의 대표적 민간은행인 민생은행 로고.중국의 대표적 민간은행인 민생은행 로고.
은행의 엄청난 이익의 원천은 정부가 보장하는 예대마진. 현재 은행들의 예대금리차는 표면상 3.15~3.55%포인트다. 은행의 1년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연3.5%인 반면 대출 금리는 6.65%(1~3년)~7.05%(5년 이상)이다. 하지만 보통예금 금리는 0.5%이며 중소기업에 대한 실질 대출금리는 10%가 넘는 상황이다. 실제 예대금리차는 5%포인트가 넘는다는 계산이다.



린리르(林立日) 광따(光大)은행 부행장은 “광따은행의 지난해 순이익은 전년보다 42.0%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며 “순이익이 급증한 것은 지난해 물가를 잡기 위해 금융긴축정책이 시행되면서 자금사정이 어려워져 돈이 희소자원이 됨으로써 금리가 상승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시중자금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은행들의 지난해 대출금리는 상당히 상승했다.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20~50%까지 치솟았다. 일부 은행에서는 대출해줄 때 대출금의 일부를 예금으로 맡기도록 강요하는 ‘꺾기’를 자행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예금금리는 그대로인데 대출금리가 높아지면 이익은 급증하게 마련이다.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5.6%에 달했던 것을 감안하면 예금자들은 구매력 기준으로 2.1%포인트의 손해를 봤다. 기업들, 특히 중소기업들은 은행에서 대출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해 월2~3%(연24~36%)의 고금리 사채(私債)에 의존해야 했다. 원저우(溫州) 같은 도시에서는 사채를 끌어다 쓴 중소기업 사장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야반도주하거나 자살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따라서 은행의 폭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양차이징(中央財經)대학의 궈톈용(郭田勇) 금융학과 교수는 “은행은 제조업 등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것이 설립목적이지만 현재 제조업이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 은행만이 폭리를 취하는 것은 은행의 본분을 상실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2005년과 2006년에도 은행의 이익이 급증했지만 당시에는 제조기업들의 이익도 늘어났기 때문에 별다른 비판을 받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제조업체들이 무더기 부도에 몰릴 정도로 위기상황인데도 은행만 폭리를 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자오샹은행 로고. 중국 자오샹은행 로고.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의 천융졔(陣永杰) 부사무총장은 “은행은 이익이 많고 기업은 이익이 적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은행의 폭리는 석유와 담배보다도 훨씬 높다”고 지적했다. 중앙재경대학의 궈톈용(郭田勇) 금융학원 교수도 “중국은 은행진입이 개방돼 있지 않아 은행 업무가 상대적 독점 상태에 놓여 있다”며 “몇 개 국유은행들의 시장점유율이 70~80%에 달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은행의 독점적 지위를 무너뜨리고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우샤오링(吳曉靈) 전국인민대표 재경위원회 부주임은 “대출시장에서 은행의 독점적 지위를 타파하려면 중소금융 기관을 많이 육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궈톈용 교수는 “예대금리차의 합리적 수준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대출금리를 자유화해 충분한 경쟁을 통해 금리가 형성되도록 하면 예대금리차가 축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7년 이후 5년 만에 지난 1월초 개최된 ‘4차 전국금융업무회의’에서도 금리자유화 필요성을 재차 제기했다.

금리가 자유화되지 않아 은행들이 대출위험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음에 따라 중국 기업들의 과잉투자가 가시지 않고 있다. 중국 국유기업들은 지난해 2011년에 안후이(安徽)성과 1조8000억위안(324조원) 규모의 투자협정을 맺은 것을 포함해 모두 8조2000억위안(1476조원)에 이르는 투자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2008년의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2009년에 4조위안(720조원) 규모의 재정자금을 풀었던 것보다 2배 이상 많은 규모다.

문제는 국유기업들이 수익성이 낮은 사업에도 투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 국유기업의 총자산은 27조위안, 순자산은 10조5000억위안에 달하지만 세후 순자산이익률은 3.2%에 불과하다. 1년만기 정기예금금리(3.5%)마저 밑돌는 실정이다. 국유기업의 투자수익률이 이처럼 낮은 상황에서 투자를 대규모로 늘려 민간기업과 경쟁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중국은 2003년에 국유은행들을 주식회사로 전환시켜 증시에 상장시켰다. 엄청난 상장차익을 남겨 부실채권 정리의 밑천으로 삼았다. 주식회사 전환 때 중국 최대 금융투자회사인 후이진꽁쓰(滙金公司)가 2조위안(약360조원)을 은행에 출자한 것도 부실채권 정리를 위한 것이다. 높은 예대마진을 보장함으로써 한국 등 동남아시아에서 겪은 외환 및 금융위기 없이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런 성공의 경험이 점차 중국 은행은 물론 기업들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소비자는 저금리로, 기업들은 고금리로 고통 받는 동안 은행들은 엄청난 이익으로 돈 잔치를 벌였다. 예대금리차가 크다는 것은 절대로 은행의 이익창출능력이 강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게다가 높은 예대마진은 기업들의 고통을 수반한다. 은행의 수익기반을 갉아먹기 때문에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중국 은행들이 휴브리스에서 벗어나 예대금리차에 의존한 경영에서 하루 빨리 탈피해야 하는 것이 발전모델의 ‘쭈안싱(轉型, 전환)’을 슬로건으로 내건 12차5개년계획(2011~2015년) 기간 동안에 달성해야 할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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