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과 백주병; 시안 개 주인의 협상술

머니투데이 홍찬선 베이징특파원 2011.11.1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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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홍찬선 특파원의 China Report<9>

편집자주 중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비행기로 2시간도 채 안 걸린다. 1년에 왕래하는 사람이 600만명을 넘고, 교역량도 2000억달러를 초과했다. 5000년 역사도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1948년부터 1992년까지 국교가 단절돼 있던 44년 동안, 매우 멀어졌다. 아직도 생각과 체제에서는 좁혀야 할 게 많다. 차이나 리프트는 홍찬선 머니투데이 베이징 특파원이 2주에 한번씩, 먼 중국을 가깝게, 가까운 중국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중국 샨시(陝西)성의 시안(西安)은 ‘천연역사박물관’으로 불린다. 주(周) 진(秦) 한(漢) 당(唐) 등 13개 왕조의 수도였던 장안(長安)이 바로 시안이다.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진시황의 병마용이 있는 곳이며, 중국의 현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은 ‘시안사변’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1936년 12월12일, 장쉬에량(張學良) 동북군사령관과 양후청(楊虎城) 서북군사령관이 장졔스(蔣介石) 총통을 감금한 뒤 공산당 토벌을 중단하고 공산당과 협력해 항일전에 나서라고 강요한 사건이 바로 시안사변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안과 관련된 우스개가 하나 있다. 한 외국인이 골동품을 수집하기 위해 시안에 갔다. ‘땅을 파기만 하면 골동품이 나온다’는 천연역사박물관이라는 별명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집집마다 개를 기르고 있는데 개 밥그릇이 비싸게 보이는 골동품이었다.



이 외국인 골동품 수집가는 개 주인에게 개를 팔라고 했다. ‘개 밥그릇을 사겠다고 하면 눈치 빠른 개 주인이 비싼 골동품인 줄 알아차리고 팔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외국인은 ‘개를 사면 개 밥그릇은 그냥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개 값을 흥정하는 데 주인이 터무니없게 높은 가격을 요구했다. 시장에서 500위안(8만5000원)이라면 5배 비싼 2500위안(42만5000원)을 내라고 하는 식이었다.

개보다는 개 밥그릇에 정신이 팔린 이 외국인은 한참 동안 실랑이를 하다가 어쩔 수 없이 달라는 값을 다 주고 개를 샀다. 그리고 개를 끌고 나오면서 개 밥그릇도 들고 가려고 했다. 그러자 개 주인이 점잖게 한마디 했다.



“개 밥그릇은 그냥 두시오.”
“개를 팔았으니 개 밥그릇이 필요 없을 테니 갖고 가겠소.”
“그 밥그릇 때문에 개를 비싸게 많이 팔아먹었는데 밥그릇을 가져가면 안되오.”

시안의 개 주인을 우습게보고 골동품을 공짜로 꿀꺽하려다 아무 쓸데없는 개만 비싸게 산 외국인 골동품 수집가. 우스개에 나오는 이 수집가의 모습은 그냥 우스개가 아니라 중국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중국인과의 협상에서 당하는 한국 기업가의 안타까운 자화상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우스개를 소개해보자. 협상에 임할 때 한국 사람은 소주병으로 통하고 중국 사람은 바이주(白酒, 중국 고량주)병으로 불린다. 소주병은 투명하기 때문에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남은 술의 양이 얼마인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바이주병은 대부분 도자기로 되어 있다. 술을 마시면서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기가 어렵다.


한국 사람은 폭탄주 몇 잔 돌아가면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자신의 오장육부까지 꺼내 보여준다. 하지만 중국 사람은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있는 것을 투명하게 드러내놓는 사람과 중요한 정보를 끝까지 감추면서 시간을 끄는 사람이 하는 협상 결과가 어떨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베이징(北京)에 사는 사람이나 여행 온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 중 하나가 베이징 시내 중심에 있는 시우수이졔(秀水街)다. 루이비통이나 롤렉스 시계, 나이키 운동화 등 각종 명품의 ‘짝퉁 제품’을 비교적 싼 가격에 살 수 있다. 이곳의 묘미는 값을 흥정하는 것. 똑같은 상품이라도 흥정하는 실력에 따라 판매 및 구입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이때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 “니 슈어 바(你說吧!)”다. “네가 먼저 사고 싶은 가격을 말해보라”는 뜻이다. 한국 사람들은 ‘정가판매’에 익숙해서인지, 아니면 흥정 기술이 서툴러서인지 상품에 붙어 있는 가격에서 그다지 많이 깎지 못한다. 기껏해야 절반 정도 가격으로 사면 싸게 샀다고 생각한다. 시우수이졔의 중국인 판매원은 이런 심리를 너무도 잘 아는 것 같다. 상당히 높은 가격을 먼저 부른 뒤 깎아달라고 하면 ‘니 슈어 바’라고 한다. 결과는 대부분 비싸게 산다.

하지만 요즘은 약간 달라졌다. ‘니 슈어 바’라는 말을 들으면 그냥 비싸다면서 나온다. 그러면 판매원이 가격을 낮춰 부르기 시작한다. 흥정의 주도권을 내가 가질 수 있는 기회다. 그래서 나온 말이 ‘판매원이 처음 부른 가격의 10분의 1부터 시작하라’는 불문율이다. 내가 먼저 사고 싶은 가격을 얘기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팔 가격을 말하게 하며, 최대한 낮은 가격부터 흥정을 시작하는 게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다.

중국 속담에 ‘루시앙수이수(入鄕隨俗)’라는 말이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서양 속담처럼 중국에 왔으면 중국 법과 관습에 따르고, 중국 내에서도 특정 지역에 가면 그 지역의 습속에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터무니없는 바가지를 쓰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사람은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중국식이 아닌 한국식으로 하는 경향이 강한 듯하다. 대표적인 게 시한(時限)이다. 무슨 일을 하든, 한국 사람과 기업은 시한을 분명하게 정해 놓는다. 반드시 일을 성사시킨다는 각오를 다질 수도 있고, 조직원들에게 목표를 명확히 인식시켜 힘을 결집시키는 등의 긍정적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시한을 정해놓고 일을 하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에서 살면서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는 “링따오(領導)가 출장 중이어서 결재가 늦어진다”는 것이다. 링따오는 영어의 보스(Boss)에 해당되는 말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상관을 가리킨다. ‘링따오는 출장 중’이라는 말은 링따오가 실제로 출장을 가서 일처리가 늦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업무가 늦어지는 것의 핑계인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럴 때 한국에서 정한 ‘시한’은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시한을 지키기 위해 다른 것을 양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은 중국과 수교를 맺은 지 20년 되는 해다. 1949년부터 1992년까지 단절된 것을 제외하면 한국은 중국과 수천 년 동안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그래서 중국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중국을 잘 아는 한국 사람은 극소수다. 어수룩해 보이는 시안의 개 주인에게 터무니없는 값에 개를 사지 않기 위해 중국 바로알기에 나설 때다.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중국과 중국인을 잘 알아야 한다. 중국은 공부하는 만큼 알고 아는 만큼 보이며 보이는 만큼 성공 확률도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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