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PF대출' 건설위기 키웠다

머니투데이 이군호 기자 2011.04.19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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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사 브릿지론→건설사 지급보증→금융권 PF대출→분양 계약금으로 상환


- 부동산경기 침체 유동성 악화
- 다양한 자금조달기법 등 필요


#2000년대 초·중반,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대 현금을 확보했다고 소문난 시행사가 즐비한 때가 있었다. 이들이 큰돈을 만진 것은 부동산경기가 호황을 누리고 부지만 확보하면 무조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해주던 금융기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0년대 초 부동산경기가 최고점일 당시 시행사들은 현금 없이도 토지소유주의 동의서만 확보하면 저축은행을 찾아가 토지계약금만큼 브릿지론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



시행사는 이 브릿지론으로 땅주인들에게 계약금을 지급한 뒤 계약서에 사인을 받고 다시 이 계약서를 들고 건설사를 찾아갔다. 건설사들은 지급보증을 해주는 조건으로 금융권으로부터 수천억원대 PF대출을 받았다.

인·허가를 마치고 아파트를 분양한 후 계약금이 들어오면 브릿지론을 갚고 착공한 뒤 중도금과 잔금 등을 받아 수익을 나눴다. 시행사, 건설사, 금융기관 모두 수익을 골고루 나누는 가장 이상적인 한국형 PF대출 모델이 됐다.



#용산역세권, 판교알파돔 등 황금알을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공모형 PF개발사업이 2000년대 중반에 집중적으로 추진되면서 비슷한 형태의 PF대출 구조가 나왔다.

당시 사업이 공모되면 건설사 주도로 사업계획서가 만들어지고 출자사를 모집한 뒤 자금조달 점수를 맞추기 위해 금융권에 손을 내밀었다. 건설사들은 수주가 급하다보니 지급보증은 물론 책임준공 등 온갖 리스크를 떠안겠다고 금융기관에 제안, PF대출 확약서를 받았다.

이 같은 PF대출 구조는 부동산경기가 좋았을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경기가 침체되면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부동산경기 침체로 분양 자체가 불가능해지자 브릿지론과 PF대출 이자가 급격히 불어났다. 결국 시행사와 건설사는 이자를 조달하기 위해 금융기관을 통해 자산유동화증권(ABS)과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부동산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분양사업은 시작도 못하고 ABS와 ABCP의 만기가 속속 돌아왔다. 시행사와 건설사들이 만기연장을 금융권에 요청했으나 금융기관은 만기연장 조건으로 추가 담보와 금리인상 등을 요구했다. 공모형 PF개발사업은 조금 다른 양상으로 번졌다. PF대출 규모가 수조원대에 육박하다보니 건설사들의 지급보증액은 더 확대됐다.

'한국형 PF대출' 건설위기 키웠다


금융위기가 발발하고 건설사들의 지급보증 여력이 급속히 위축되자 건설사들은 지급보증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용산역세권, 판교알파돔 등 주요 공모형 PF개발사업은 건설사들의 지급보증 거부로 땅값은 물론 초기 사업비를 조달하지 못해 장기 공전상태에 빠졌다.

전문가들은 국내 PF대출 문제는 시공사를 중심으로 한 개발금융기법의 한계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미국과 일본의 개발금융은 시행사 등 사업주체가 자본을 출자해 개발사업에 필요한 토지를 확보하고 사업 참여자들이 리스크를 분담하며 개발사업의 사업성 평가기법이 발달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강민석 KB금융 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시공사의 신용보강 없이 시행사가 단독으로 개발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자금조달 구조를 개편하고 투자자에게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같은 주식연계채권 등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메자닌파이낸싱'(Mezzanine Financing) 같은 다양한 형태의 자금조달기법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국처럼 금융기관이 부동산개발사업의 타당성 분석능력을 확보하고 리스크를 떠안을 여건이 되려면 장기간 준비해야 하는 만큼 단기적으로 부동산경기와 민자사업 활성화라는 카드를 꺼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흥수 원장은 "국내 건설사들이 위기로 내몰릴수록 PF대출의 후폭풍이 거셀 것"이라며 "최저가낙찰제 같은 입찰제도를 개선하고 단기적으로 부동산경기는 소폭 살리고 민자사업을 활성화하는 카드가 효과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대형주택건설사 모임인 한국주택협회는 18일 긴급회의를 열고 "금융권이 PF대출 만기연장을 거부한다면 건설업계의 유동성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며 "우량 사업장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만기연장과 신규대출 등을 통해 숨통을 터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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