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의 이혼녀, 허핑턴의 성공엔 남자가 있었다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2011.02.0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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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징 리더]

비버리 힐스에 위치한 앨런 혼 워너 브러더스 사장의 저택. 민주당 정치자금을 모금하기 위한 파티가 한창이다. 앨 고어 전 부통령이 하워드 딘 민주당 의원 등과 얘기를 나누다가 어떤 인물이 파티장에 들어서자 눈을 떼지 못한다. 고어 전 부통령을 비롯한 쟁쟁한 민주당 거물들이 일제히 그녀에게 다가서는 와중에 고어 전 부통령이 내뱉는 한 마디, “당신, 정말 멋져요.(Baby, you’re amazing)”

환갑의 이혼녀, 허핑턴의 성공엔 남자가 있었다


미국 잡지 ‘롤링스톤스’가 2006년에 보도한 아리아나 허핑턴에 대한 인물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리아나 허핑턴, 그렇다. 6년 전 100만달러를 투자해 만든 미디어 블로그 허핑턴포스트를 AOL에 3억1500만달러(3465억원)에 매각해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그 허핑턴이다.



고어 전 부통령에게 ‘어메이징’하다는 찬사를 들었을 때 허핑턴의 나이는 이미 56세였다. 도대체 50대 중반의 아줌마가 어떻게 해야 남자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멋지다’란 칭찬을 들을 수 있을까. 그리스 이민자로 ‘아메리카 드림’을 성공시킨 허핑턴. 올해 환갑을 맞은 그녀가 성공을 향해 한 단계씩 더 높이 도약할 때마다 항상 ‘남자’가 있었다.

◆허핑턴 인생의 남자들=허핑턴은 1950년 그리스 출생이다. 16세 때 영국으로 건너가 캠브리지대에 다니며 여성으로서는 3번째 학생회장으로 당선돼 활동했다. 졸업 후 21살 때 런던으로 와서 42살의 ‘더 타임스’ 칼럼니스트 버나드 레빈을 만났다. 둘은 두 번째 데이트 때 키스를 나누고 곧 동거에 들어갔다. 레빈은 허핑턴이 작가로, 지성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지적 토양을 제공해줬다. 하지만 레빈이 결혼을 원치 않자 허핑턴은 30세 때인 1980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마이클 허핑턴마이클 허핑턴
허핑턴은 미국에서 언론인이자 저술가로 활동하다 1985년에 석유재벌에 정치인인 마이클 허핑턴을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마이클 허핑턴은 1992년 공화당원으로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에 당선됐지만 1994년에 상원의원직에 도전했다 실패했다. 두 사람은 1997년에 이혼했다.

아리아나 허핑턴은 남편 마이클 허핑턴을 통해 미국 정계에 인맥을 쌓을 수 있었고 이혼하면서 상당한 위자료도 받을 수 있었다. 이혼 1년 뒤에 마이클 허핑턴은 자신이 양성애자라고 깜짝 공개했다.

허핑턴은 2003년에 무소속으로 캘리포니아주 주지사에 도전했다 고배를 마셨다. 이 때 도약을 도와줄 새로운 남자를 만났다. AOL의 전 임원인 케네스 레러였다.


레러는 허핑턴과 첫 만남에 대해 “굉장했다(She’s terrific)”며 “만나는 즉시 서로 죽이 맞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케네스 레러 케네스 레러
두 사람은 바로 다음 해에 진보 성향의 미디어 블로그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고 곧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2005년에 허핑턴 포스트가 탄생했다. 초기 투자금은 100만달러.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을 레러가 투자했다.

AOL에 지분을 넘기기 전 허핑턴 포스트의 4대 주주는 아리아나 허핑턴과 레러, 그리고 소프트뱅크 캐피탈, 오크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였다.

레러는 허핑턴 포스트의 첫 최고경영자(CEO)였다. 허핑턴이 오늘날 미디어업계 총아로 부상한데는 레러라는 막후 인물의 경영 능력과 자금줄의 도움이 컸다.

◆“여자의 변신은 매력”=허핑턴만큼 미국 언론계에서 상반된 평가를 얻는 인물도 없다. 그녀의 친구들은 허핑턴을 “마음이 열려 있으며” “매우 사려 깊고” “부드러우며” “매혹적이고” “지성미가 물씬 풍긴다”고 말한다.

자신이 진행하는 토크쇼에 허핑턴을 자주 출연시켜 그녀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기여한 HBO의 진행자 빌 마허는 “아리아나의 의견에 반박하기로 예정돼 있었던 출연자가 방송 직전 아리아나와 인사를 나누고 5분만 지나면 그녀 의견에 동조하게 된다”며 “그녀가 얼마나 고혹적인지 사람들은 모른다”고 말했다. 마허 자신도 1993년 처음 아리아나와 만난 이후 그녀의 열렬 팬이 됐다.

반면 허핑턴에 대한 비난도 적지 않다. “인정머리 없고” “원칙 없고” “부도덕한” “악마” “모략가” “표절자” “위선자” “오로지 권력과 돈에만 관심 있는 인간” “기회주의자” 등등.

환갑의 이혼녀, 허핑턴의 성공엔 남자가 있었다
허핑턴이 이처럼 비난을 받는데는 “변절”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정치적 신념과 원칙을 180도 바꿔왔기 때문이다. 허핑턴은 남편이 공화당원이었던 만큼 1997년 이혼 때까지 열렬한 보수주의자였다. 공화당 내에서도 보수적이기로 정평난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의 정치활동도 적극 도왔다.

허핑턴의 정치 성향은 이혼 직전인 1996년에 알 프랭켄 민주당 의원과 함께 미국 코미디 방송국인 ‘코미디 센트럴’의 정치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허핑턴은 민주당 지지로 돌아선 뒤 우파 세력이 “어리석고 눈 멀고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기 때문에” 자신이 공화당을 등지게 됐다고 밝혔다.

허핑턴은 정치 성향만이 오락가락한 것이 아니다. “여성적 여자(Female Woman)”라는 책에서는 페미니스트를 비판하다 “피카소: 창조자이자 파괴자”란 저서에서는 피카소를 여성 혐오주의자로 묘사하며 페미니즘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워싱턴 포스트의 다나 밀뱅크는 허핑턴의 이러한 복합적이고 종잡을 수 없는 성향을 한 마디로 이렇게 정의했다. “허핑턴은 기업가이자 작가로서 우리 시대에 탁월한 입지를 차지했다. 이념적, 사상적 스펙트럼이 무엇이든 다음에 유행할 아이디어를 무작정 쫓아 다니는 방법으로.”

◆“타고난 사교력에 훈련을 더하라”=허핑턴이 놀라운 매력으로 쟁쟁한 인맥을 자랑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엄마에게서 물려 받은 탁월한 사교술 덕분이다. 아리아나의 엄마 엘리는 전혀 몰랐던 사람도 눈 깜짝할 사이에 절친으로 바꿔 놓을 수 있는 뛰어난 사교술을 자랑했다.

하지만 언론인이었던 아리아나의 아빠는 인생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회의론자였다. 결국 아리나아의 엄마는 딸이 11살 때 음울한 성격의 남편과 헤어졌다.

허핑턴은 성공 심리학의 한 기법으로 각광 받는 신경 언어 프로그램(NLP)을 통해 사교술을 더욱 발전시켰다. “나는 NLP를 공부했고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를 쓴 토니 로빈슨의 워크숍에도 참석했다. NLP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으면서 가치 있는 교훈을 많이 얻었다.”

NLP는 자신을 긍정하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심리 기법 중의 하나로 세일즈맨들 사이에 특히 각광 받고 있다. 허핑턴은 NLP를 통해 확실히 사람을 어떻게 다루면 좋은지 배울 수 있었다.

허핑턴이 사람을 사귈 때 말하는 방식은 이렇다. “제겐 몇 명의 친구들이 있어요. 여자 또 남자 친구들. 몇 명을 당신도 알 거예요. 몇 명은 모르는 사람도 있겠죠. 나는 우리 친구들을 가족이라고 불러요. 당신이 만약 우리 가족이 된다면 우린 당신을 판단하지 않아요. 그저 사랑할 뿐이죠.” 이 때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내는 가르랑거리는 목소리는 필수다.

◆“비판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허핑턴에 대한 비난도 많다. 하지만 허핑턴은 감히 넘볼 수 없는 낙관론으로 이를 무시한다. “왜 쓸데 없는 일에 내 에너지를 낭비해야 하지?”라는 것이 그녀의 반응이다.

“다른 사람의 비판이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다. 그런 미친 짓거리 같은 것들이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내버려 둔다면 뭔가 당신이 잘못돼 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비판 따윈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이처럼 강력한 낙관론을 가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또 다른 남자가 있다. 존 로저라는 이름으로 저서를 발표했던 로저 딜라노 히킨스. 그는 명상을 중시하는 뉴에이지 계열의 종교 단체 “영성의 내적 자각 운동”의 창립자이다.

허핑턴과 존 로저의 오랜 친분 관계는 ‘타임’지에 보도된 적도 있지만 허핑턴은 자신의 영적인 성향에 대해서는 대화를 기피한다고 한다. 가장 세속적인 성공에 민감한 듯 보이는 여성이 영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이 종종 풍자 대상이 돼왔기 때문이다.

출처:롤링스톤즈, 뉴욕타임즈, 위키피디아, 워싱턴 포스트, 포춘, 포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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