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응찬의 고별사 '각자무치',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머니투데이 정진우 기자 2010.11.0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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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무치(角者無齒)'.

라응찬 신한금융그룹(신한지주 (46,450원 ▲650 +1.42%)) 전 회장이 50여 년간 몸 담았던 금융계를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각자무치'란 뿔이 있는 짐승은 날카로운 이가 없다는 뜻. 한 사람이 모든 재주나 복을 다 가질 수 없음을 의미한다. 지난달 30일 라 전 회장이 자진 사퇴를 공식화 할 때 이 말을 꺼냈다.

실제로 라 전 회장은 올해 초 4연임하기 전까진 모든 걸 가진 사람이었다. 은행장을 3번이나 하고 그룹 회장도 3번이나 하면서 19년 동안 신한금융을 이끌었다. 그 사이 신한은행은 구멍가게 수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굴지의 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 이명근 기자.ⓒ 이명근 기자.


라 전 회장은 1일 오후 3시 류시열 신한지주 비상근이사에게 대표이사 직무대행 자리를 넘겨줬다. 52년 뱅커로서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스스로 판단해서가 떠난 게 아니라, 외부의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중도하차라는 불명예와 함께…

그는 이날 떨리는 목소리로 이임사를 읽어 내려갔다. "그동안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닥쳐와도 굴하지 않았고 위기 때면 오히려 더욱 강해지는 특유의 저력을 발휘해 왔다. 그 마법과도 같은 힘의 원천은 바로 신한 웨이로 대변되는 강인한 신한정신이다…".



차분하던 그의 목소리는 마지막 대목에서 흔들렸다.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를 이야기 하면서 노년의 회장은 눈시울을 붉혔다. 이임사가 끝나고 직원들은 한동안 기립박수로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라 회장은 이날 신한을 신앙과도 같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지난 30년 동안 '신한'을 믿고 의지하며 혼신을 다해 그룹을 일궜다는 뜻이다. 라 회장이 각자무치의 교훈을 빨리 깨달았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넘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일각에선 라 회장이 그 교훈을 뼈저리게 느꼈다면 지금처럼 외부의 힘에 의해 불명예스럽게 자리에서 내려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라 회장은 최근 주변 사람들에게 "3연임만 하고 물러났어야 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권력투쟁으로 비화된 신한사태에 라 회장도 회한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스로로 만족하면 욕됨이 없고 멈춤 줄 알면 위험하지 않다(知足不辱 知止不殆)라는 노자의 가르침도 떠올렸을지 모른다.


금융계에서 라응찬 전 회장만큼 존경받는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그런 평가는 최근의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을 때까지만 해당된다. 라 회장 스스로 이야기 했지만 각자무치의 교훈을 조금 더 일찍 깨달으면 본인은 물론 1만7000여명의 신한맨들에게도 오늘의 눈물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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