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응찬 전회장의 씁쓸한 고별사 "각자무치"

머니투데이 정진우 기자 2010.11.0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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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1년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다" 퇴장모습 아쉬움

라응찬 신한금융그룹(신한지주 (47,700원 ▼450 -0.93%)) 전 회장이 '각자무치(角者無齒)'란 말을 남기고 52년 뱅커로서의 삶을 마감했다. '각자무치'란 뿔이 있는 짐승은 날카로운 이가 없다는 뜻. 즉 한 사람이 모든 재주나 복을 다 가질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난달 30일 라 전 회장이 자진 사퇴를 공식화 할 때 스스로 한 말이다.

라 전 회장은 올해 초 4연임할 때까지 모든 걸 가진 금융인으로 부러움을 샀다. 은행장 3연임, 그룹 회장 3연임 등 19년 동안 한국 금융계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신한은행을 함께 일궈온 최측근인 신상훈 사장과 서로 칼을 겨누는 '비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무대에서 내려서게 됐다. 그야말로 1년 전까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불명예 퇴진이다. 금융계 많은 사람들은 "라 회장이 이같은 결말을 맞는 것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곤 한다.

라 전 회장 뿐만아니라 후배들도 아쉬움이 크다. 신한은행의 후계구도가 어떻게 전개될지 불투명한 상태로 떠나 후배들은 큰 숙제를 안게 됐다.



라 전 회장은 이날 오후 3시 류시열 신한지주 비상근이사에게 대표이사 직무대행 자리를 넘겨줬다.

↑ 지난달 30일 이사회 직후 라응찬 회장ⓒ이명근 기자↑ 지난달 30일 이사회 직후 라응찬 회장ⓒ이명근 기자


라 전 회장은 이임사를 통해 "류시열 직무대행을 중심으로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새롭게 도약해 주기 바란다"며 "신한웨이를 바탕으로 찬란한 신한문화를 다시 한 번 꽃 피워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닥쳐와도 굴하지 않았고 위기 때면 오히려 더욱 강해지는 특유의 저력을 발휘해 왔다"며 "그 마법과도 같은 힘의 원천은 바로 신한웨이로 대변되는 강인한 신한정신이다"고 덧붙였다.

라 전 회장은 직원들에 대한 걱정도 잊지 않았다. 그는 "떠나는 사람으로서 마지막 바람은 지나온 신한 보다 앞으로의 신한이 더욱 웅장하고 찬란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며 "나로 인해 발생한 실명제 검사와 관련해 징계를 받게 되는 직원들에 대한 선처와 배려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끝으로 "꿈에서도 그리울 신한가족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 신앙과도 같은 신한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라며 "그동안 우리가 만들어 온 위대한 신한정신은 앞으로도 불멸의 혼이 되어 여러분을 인도할 것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아름다운 향기를 넘쳐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3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라응찬 회장은 1959년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농업은행(현 농협)에 입행, 뱅커의 길로 들어섰다. 이곳에서 은행 일을 배웠다. 1975년부터 대구은행 비서실장을 맡고 있던 라 회장은 1977년 초 재일동포 기업인 이희건 명예회장을 알게 됐다. 이 명예회장이 우리나라에 제일투자금융을 설립하려고 준비하면서 당시 김준성 외환은행장에게 라 회장을 소개받았다.

라 회장은 이후 1982년 신한은행 창립 때 상무를 시작으로 10년 만에 은행장 자리에 올랐다. 10년 후 신한지주가 탄생할 때 회장직을 맡았다. 이후 조흥은행 인수, LG카드 인수 등 굵직굵직한 M&A를 성공시켰다. 재일동포 주주들도 이때까진 라 회장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신한금융그룹을 국내 3위(총자산 기준)로 키워낸 라 회장은 직원들에게 지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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