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전 회장은 올해 초 4연임할 때까지 모든 걸 가진 금융인으로 부러움을 샀다. 은행장 3연임, 그룹 회장 3연임 등 19년 동안 한국 금융계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다.
라 전 회장 뿐만아니라 후배들도 아쉬움이 크다. 신한은행의 후계구도가 어떻게 전개될지 불투명한 상태로 떠나 후배들은 큰 숙제를 안게 됐다.
↑ 지난달 30일 이사회 직후 라응찬 회장ⓒ이명근 기자
라 전 회장은 직원들에 대한 걱정도 잊지 않았다. 그는 "떠나는 사람으로서 마지막 바람은 지나온 신한 보다 앞으로의 신한이 더욱 웅장하고 찬란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며 "나로 인해 발생한 실명제 검사와 관련해 징계를 받게 되는 직원들에 대한 선처와 배려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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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끝으로 "꿈에서도 그리울 신한가족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 신앙과도 같은 신한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라며 "그동안 우리가 만들어 온 위대한 신한정신은 앞으로도 불멸의 혼이 되어 여러분을 인도할 것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아름다운 향기를 넘쳐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3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라응찬 회장은 1959년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농업은행(현 농협)에 입행, 뱅커의 길로 들어섰다. 이곳에서 은행 일을 배웠다. 1975년부터 대구은행 비서실장을 맡고 있던 라 회장은 1977년 초 재일동포 기업인 이희건 명예회장을 알게 됐다. 이 명예회장이 우리나라에 제일투자금융을 설립하려고 준비하면서 당시 김준성 외환은행장에게 라 회장을 소개받았다.
라 회장은 이후 1982년 신한은행 창립 때 상무를 시작으로 10년 만에 은행장 자리에 올랐다. 10년 후 신한지주가 탄생할 때 회장직을 맡았다. 이후 조흥은행 인수, LG카드 인수 등 굵직굵직한 M&A를 성공시켰다. 재일동포 주주들도 이때까진 라 회장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신한금융그룹을 국내 3위(총자산 기준)로 키워낸 라 회장은 직원들에게 지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