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골프를 가로막는 숨은 적들

김헌 마음골프학교 교장 2010.11.0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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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김헌의 행복 꼴푸론

못된 캐디, 거친 바람, 수리가 안된 페어웨이의 디봇 자국들과 관리가 덜 된 그린, 매너 없는 동반자들, 달리듯 도망가는 앞 팀과 소란스러운 뒤 팀….

따지고 보면 나의 골프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언제 어디든 널려있다. 그런 요소들 때문에 골프가 되니 안되니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기도 하다. 내 골프를 불행하게 만드는 365일 365가지의 상황들!



그런데 골프가 그 무엇과의 싸움이라고 한다면 과연 무엇과의 싸움일까? 바로 그것들과의 싸움이 아니던가. 적과 싸움을 하고 있는데 적의 매너, 태도나 자세를 논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착한 적을 만나고 부드러운 적을 만난다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건 내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가 나를 때리면 아프고 화가 난다. 누가 약을 올리면 불끈 주먹이 운다. 외부의 자극에 대한 우리 뇌의 반응 속도는 상상 이상 민첩하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 외통수 외길로 보이지만 잠깐, 아주 잠깐만 멈춰서 살피면 길은 사실 여러 갈래다.



내게만 부는 바람도 아닌데 그 놈의 바람에게 짜증을 낼지 순응을 할지, 내리는 비를 원망할 지 감사할 지, 골라먹는 재미(?)가 있고, 골프는 바로 그런 선택지점에 얄밉게 놓여서 우리의 선택능력을 묻는 게임이다.



기실 우리가 알고 있는 외연상의 적들은 적이 아니다. 수없이 라운드를 하면서도 그걸 적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나, 적의 실체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도록 하는 끊임없는 욕심들, 두려움과 긴장들, 우리 내면의 그것들이 바로 적이다. 일견 내 골프를 불행하게 만드는 현상들은 우리 내면의 적들이 만들어 내는 천변만화하는 모습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얘기다.


어차피 골프란 승률이 매우 낮은 내 내부의 숨은 적들과의 싸움이다. 어제까지 불행했던 골프가 그 어떤 각성으로 갑자기 행복 골프가 될 수는 없지만 적의 실체를 정확히 보는 것으로부터 행복 골프가 시작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호흡이 거칠어진다거나 발걸음이 빨라지면 가만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신의 차례가 되지도 않았는데 샷이 하고 싶어진다거나 먼 그린이 유난히 가깝게 보이면서 만만하게 느껴지면 가만히 살펴봐야 한다. 내면의 어떤 적이 어떤 모습으로 준동을 하고 있는지?



오늘따라 페어웨이가 유난히 좁아 보이고 해저드가 유독 아득해 보이는 것도 적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로 이해해야 한다. 그 신호는 아주 미세해서 정상적인 체온보다 조금 낮은 온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좀처럼 감지되지 않는다.

우리가 골프를 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행복이지만, 골프의 행복에 이르는 길은 '내려놓고' '들여다보는' 섬세함이 유일한 미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 김헌의 골프생각
골프는 양궁이다. 동적이기보다는 정적이고, 서양적이기보다는 지극히 동양적이다. 아니 스포츠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명상적이고, 그래서 골프는 연습하기 보다는 수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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