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스]주식시장으로 본 북한위험

머니투데이 신인석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2010.08.1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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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테스]주식시장으로 본 북한위험


10여년 전 국책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일이다. 외환위기 직후 우리 자본시장이 완전히 개방되면서 외국인투자자와 만남이 잦았는데, 보통 세계경제로 시작해서 국내 거시동향, 그리고 마지막에는 위험요인에 대한 의견의 순서로 이야기가 진행됐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은 위험요인을 거론할 때 '북한위험'을 반드시 언급했다는 것이다. 특별한 사건의 유무와 관계없이 항상 짚고 넘어가야 하는 주제로 돼 있었다.

이때 이들이 거론하는 '북한위험'은 '전쟁위험'이었다. 물론 국내투자자 역시 외국인투자자보다는 둔감한 편이지만 북한의 존재와 전쟁 가능성을 가끔 따져보는 일이 있었다. 1994년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이 있었을 때 코스피지수는 2.1% 급락했다. 주식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인투자자만의 매도로 주가가 이 정도 급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지하듯이 북한의 전쟁위협은 최근으로 오면서 보다 과격해지는 추세다. 2006년 핵실험이 있었고, 최근 천안함 사태와 이후 일련의 도발사건이 좋은 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오히려 주식시장의 반응은 점차 둔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6년 핵실험 발표는 코스피지수를 2.4% 하락시켰다. 불바다 발언에 비해 시장의 동요가 컸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전쟁위험'에 보다 민감한 투자자그룹인 외국인투자자의 비중이 높아진 상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과연 동요가 컸던 것인지 의문이다.



또 사건 자체만 놓고 보면 사실상 전쟁행위라고 간주할 수 있는 최근 천안함 사태와 이후 긴장고조 국면의 경우 주식시장에 특별한 반응이 있었는지조차 분명치가 않다. 북한 고위인사에 의한 불바다 발언까지 14년 만에 다시 등장했지만 주식시장은 덤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요즘 시장의 합리성에 대한 신뢰가 예전 같지 않지만 북한의 '전쟁위험'에 관한 한 주식시장의 판단이 맞다고 가정할 경우 일련의 도발행위와 남북간 대립에도 불구하고 '전쟁위험'은 예전보다 낮아졌다는 것이 된다.

전함이 침몰하고 포탄이 떨어져도 '전쟁위험'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이제 '북한위험'은 전쟁수행능력이 없는 동네 불량배들의 불장난 정도에 불과한 위험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반갑지만 그러나 마냥 반가운 소식만은 아니다. 전쟁수행능력이 없음에도 도발을 일삼고 있다면 이는 북한이 체제 유지 위험에 봉착하였음을 말한다. 만일 북한의 체제 유지가 어려워진다면 북한지역의 새로운 정치질서 형성을 둘러싸고 열강의 대립이 불가피하다. 금융적 측면에서 지정학적 위험의 조절은 관련국의 재정부담 급증을 의미한다.

통일이 될 경우 통일비용 부담을 위해 재정지출이 요구된다. 통일이 있든 없든, 중국과 미국의 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동북아지역의 안정을 위해 소비해야 하는 국제정치와 국방비용의 증가가 요구된다. 세계 금융위기로 패권국의 지위가 약화되고 있고, 재정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된 미국이 이 비용을 혼자 부담할 리 없다. 동북아 안보비용의 분담이 요구된다면 우리나라 재정건전성의 중요한 악화요인이 될 것이다.

20세기 초반 독일과 국경을 맞댄 죄로 유럽의 안보위험을 부담한 프랑스의 경우 만성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며 단기 국제자본의 변동성에 가장 시달린 국가가 된 바 있다. 1936년의 경우 GDP의 25%에 해당하는 금액의 자본이 급격히 유출되며 경제가 거의 붕괴되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만일 주식시장이 시사하듯이 '북한위험'이 '동북아 안보위험'으로 대체되는 것이라면 중장기적 관점의 국가경제관리 시나리오가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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