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던 지난 24일 오후. 삼성반도체의 중국 쑤저우공장에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숫자가 많았다. 주5일제로 대부분은 휴일이지만, 이 공장은 D램 생산으로 분주했다.
삼성전자 쑤저우 반도체공장 담당자가 웨이퍼에서 D램 반도체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2만명 가량된다. 한국에서 파견된 사람은 80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중국인이다. 이곳에 진출해 있는 삼성 협력업체도 400여개나 된다. 이들이 한국에 있었다면 일자리가 몇 개 생겼을까? 여러 가지 숫자 속에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또 다른 숫자다.
삼성의 쑤저우공장과 관련된 숫자 외에 이곳은 더 많은 숫자가 있다. 싱가포르 정부와 함께 1989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쑤저우공업단지. 이곳 면적은 2억8800만평방미터(약9000만평)나 된다. 싱가포르에서 조성한 공업단지답게 아주 산뜻하다. 찐찌후(金鷄湖)라는 인공호수를 만들고 바둑판처럼 길을 닦았다. 외국인학교가 있어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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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각종 세제혜택을 주는 것은 기본이고, 특별세관을 설치해 통관관련 업무를 한번에 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외환관리마저 독자적으로 할 수도 있도록 하고 있다. 9가지 관련 업무를 하나로 묶어 종합처리한다는 ‘지오통이핑(九通一平)’으로 외국인기업을 유혹하고 있다.
삼성반도체 공장을 제1호로 하여 지금까지 이곳에 진출한 기업은 3400여개, 투자금액은 361억달러에 이른다. 1960년대부터 작년말까지 한국에 투자된 외국인자금이 908억달러인 것과 감안할 때 엄청난 규모다. 361억달러 중 미국이 49%로 가장 많고 일본이 22%로 2위다. 한국은 18%로 타이완에 이어 4위다.
쑤저우공업단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숫자는 한국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 때부터 최고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 일자리 만들기가 좀처럼 진행되지 않는 진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광대한 시장과 파격적인 특혜, 싸고 경쟁력 있는 땅과 노동력…. 중국이 외국기업을 유혹하고 있는 것을 한국은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외국 기업이 한국 투자를 꺼리는 것은 물론 한국 기업마저 중국 등으로 떠나고 있다. 기업이 한국에서의 투자에 적극 나서지 않으니 일자리는 늘지 않고 경제 활력마저 떨어지고 있다.
이 세상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2가지 불가사의가 있다는 우스개가 있다. 하나는 (돈벌이가 체질인) 중국이 공산주의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평등의식이 높은) 한국이 자본주의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바로 이 시간에도 특혜를 내놓고 있는 쑤저우공업단지와 대기업을 불편하게 하는 한국정부. 이미 해외에서의 매출이 훨씬 많은 삼성과 현대 등 대기업들이 한국에 남아 있는 이유가 있을까. 삼복더위보다 더 답답하고 안타까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