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시장] 토요타와 신뢰 사회

송기호 변호사 2010.02.08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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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시장] 토요타와 신뢰 사회


2월은 졸업의 달이다. 거리에는 손에 꽃과 졸업 사진첩을 들고 활짝 웃는 졸업생들이 눈에 띈다. 그들과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걷고 있는 학부모들도 이 날만큼은 기쁘다. 모두에게 축복이 있기를!

그러나 졸업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다. 졸업식 때마다 듣는 진부한 말이다. 이 말은 졸업생뿐 만 아니라 그들을 맞이하는 우리 사회에게도 맞는 말이고 중요하다.



나는 졸업생들이 첫 발을 내딛는 사회가 '신뢰 사회'이기를 바란다. 일본의 토요다 자동차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신뢰는 그저 한가한 도덕 문제나 신사들의 교양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자산이요 경제 문제이다.

졸업생들이 우리 사회에서 신뢰라는 자양분을 흡수할 수 없다면 그들은 새로운 도전을 패기 있게 할 수 없다. 적어도 이 사회가 그들을 패대기치지는 않을 것이고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젊은이들은 창의적인 일에 도전할 수 있다.



신뢰성이 없는 사회에서는 ‘아이폰’이 나오기 어렵다. 스티브 잡스의 도전과 창의는 단지 개인의 유전자 현상이 아니다. 사회 공동체의 자산과 문화를 열심히 최선을 다해 포기하지 않고 활용한 결과다.

신뢰는 역동적인 경제를 뒷받침한다. 경제 주체들이 경제에서의 정보를 믿을 수 없다면, 기회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소비와 투자는 침체된다. 특히 글로벌한 경제에서는 한번 신뢰성을 잃으면, 이를 회복하기 어렵다. 경제 주체들은 신뢰성을 재평가하고 정보를 수정할 시간과 비용을 따로 투자하는 데에 매우 인색하다.

그러므로 토요다 사장인 아키오 토요다가 아무리 사과를 많이 한들 한 번 무너진 신뢰를 쉽게 회복할 수 없다. 결국 신뢰는 정치인만 아니라 경제인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경제적 목표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특히 경제계에 진출하는 졸업생들에게 신뢰 있는 사회인이 되라는 당부를 하고 싶다.


졸업생을 맞이하는 우리 사회부터가 신뢰 사회가 돼야 한다. 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신뢰 사회의 바탕은 제대로 된 법치이다. 법이 형식적으로 존재한다고 하여 그 사회를 법치주의 사회라고 부르지 않는다. 실질적 법치주의는 정당성을 본질로 한다. 법의 내용이 헌법 원칙에 적합해야 하며, 그 적용도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한다.

오늘 우리 사회가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다면 그 배경에는 법치의 위기가 있다. 법의 내용이 어렵고 비현실적이어서 보통 사람들이 지키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더 문제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지 않다는 점이다.

힘 있는 사람들은 법을 어겨도 가볍게 처벌되는 것이 부쩍 많아졌다. 국회의원들이 서로 합의하여 만든 법률이 유효한데도, 정부부터 이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일마저 생겼다. 누구보다도 법을 지켜야 할 고위 공무원들이 앞 다투어 법을 조롱하기까지 한다.

올해는 식민지화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식민지화야말로 신뢰와 법치의 위기를 낳은 장본인이다. 스스로 만든 헌법이 없는 식민지에서 법치주의는 없었다. 식민지화 100주년 성찰의 참된 의의는 신뢰사회와 법치주의를 우리 힘으로 완성하는 데 있다.

2월이 졸업생들에게는 졸업의 계절이라면 그들을 맞이하는 사회에게는 신입의 계절이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많은 문제 가운데, 신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신뢰야말로 우리 사회가 사회 신입생들의 품에 안겨 줘야만 할 최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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