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표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은 지난 2일 전남 화순의 녹십자 백신생산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녹십자 화순 공장은 지난 7월2일 완공됐다. 5월 초 국내에 상륙한 신종플루가 지역사회로 막 확산되기 시작한 시기다.
이 공장이 없었다면 한국은 외국 제약사가 백신을 공급해주기만 기다려야할 판이었다. 얼마나 비싼 값을 쳐야할 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백신값이 도즈(1회 접종)당 1만4000원에서 2만3000원까지 치솟은 상황이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자국 국민 우선 접종을 위해 해외로의 공급을 제한했다.
도즈당 공급가격을 8000원으로 낮춘 대신 정부가 5년간 독감 백신을 구입키로 해 안정적인 공급처도 확보했다. 보건당국은 녹십자 덕분에 계획대로 오는 11월 경 백신 접종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상무이사는 "신종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무기 개발은 국민 건강안보를 위해서 뿐 아니라 국가 경제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북미지역에서 유행이 시작된 신종플루는 인류가 바이러스와의 계속해서 전쟁을 하고 있었음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우리가 잊고 있었을 뿐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인류를 공격해왔다. 최근 100년 사이에도 1918년 스페인독감, 1957년 아시아독감, 1968년 홍콩독감에 이어 신종플루가 찾아왔다. 대유행은 아니었지만 세계를 긴장시킨 사스(중증 급성호흡기 증후군)나 조류독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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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백신공장이 대박을 내며 다른 제약사도 백신 공장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녹십자 보다 생산규모가 3배나 더 많은 백신 생산 공장을 짓겠다며 부지 점검에 나선 일양약품이 한 예다.
국내에 신종플루에 대한 지나친 공포감이 문제지만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대비하는 계기가 된다면 나쁘지만은 않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녹십자는 4만~5만원대에 불과했던 주가가 한때 20만원대로 치솟으며 말로만 외치던 백신명가의 자존심을 회복했다. 올해 녹십자의 신종플루 백신 매출(560억원)은 보건복지가족부의 연간 의약관련 연구개발(R&D) 지원금(500억~600억원)과 맞먹는다.
백신 뿐 아니라 진단키드제조회사 등에도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진단키트를 만드는 바이오니아 (30,350원 ▲400 +1.34%)는 최근 2주간 신종플루 신속진단키트(3만8000테스트 분량)와 계절독감 진단키트(3만7000테스트 분량) 등에서 수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진단장비 임대와 진단키트 관련 소모품 판매 등에서 추가 매출도 기대된다.
지난해 이 회사의 신속진단키트 매출은 전무했다. 바이오니아는 이 여세를 몰아 아시아 2~3개 국가에서 신속진단키트 수출을 추진할 계획이다. 신종플루가 R&D 성과를 앞당길 수 있는 기회를 준 셈이다.
신약개발연구조합 여 상무는 "신종플루의 공포감이 촉발시킨 바이오제약회사들의 개발 노력이 기술력 발전과 이에 따른 매출증대, 나아가 세계시장 진출의 바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만 해도 이 약을 개발한 길리어드는 판권을 로슈에 팔고 14~22%의 로열티를 받는다. 조류독감이 유행한 지난 2005년 길리어드의 로열티 수입은 370% 늘었다. 이 회사는 최근 3년간 11억 달러의 로열티 수입을 올리며 세계 3위의 거물급 바이오회사로 성장했다. 외신에 따르면 타미플루를 팔고 있는 로슈와 또 다른 항바이러스인 리렌자를 공급하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등은 올해 30억 달러의 매출을 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