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주권이 국가미래"…위기를 기회로

신수영 기자, 김명룡 기자 2009.09.09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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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잡는 신무기 개발전쟁<하>

"녹십자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했죠. 신종플루는 생각치도 않았는데 시기가 절묘하게 맞았습니다. 타이밍이 좋았습니다."

윤여표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은 지난 2일 전남 화순의 녹십자 백신생산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녹십자 화순 공장은 지난 7월2일 완공됐다. 5월 초 국내에 상륙한 신종플루가 지역사회로 막 확산되기 시작한 시기다.

이 공장이 없었다면 한국은 외국 제약사가 백신을 공급해주기만 기다려야할 판이었다. 얼마나 비싼 값을 쳐야할 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백신값이 도즈(1회 접종)당 1만4000원에서 2만3000원까지 치솟은 상황이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자국 국민 우선 접종을 위해 해외로의 공급을 제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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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공장은 매년 백신 생산량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리스크가 크다며 녹십자조차도 건립을 망설였던 공장이다. 총 860억원이 투입되는 등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녹십자는 올해만 정부에 700만 도즈의 백신을 공급하면서 560억원의 매출을 올리게 됐다. 매출액 기준 5~6위에 불과했던 회사가 단번에 유한양행과 매출을 겨루는 2위권으로 뛰어 올랐다.

도즈당 공급가격을 8000원으로 낮춘 대신 정부가 5년간 독감 백신을 구입키로 해 안정적인 공급처도 확보했다. 보건당국은 녹십자 덕분에 계획대로 오는 11월 경 백신 접종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백신주권이 국가미래"…위기를 기회로
전세계 독감백신의 60~70%는 유럽에서 생산된다. 전 세계 13개국이 만들 수 있는데, 500만 도즈 이상 생산이 가능한 곳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호주, 이탈리아, 중국, 일본 등 10개국이다. 여기에 녹십자 (116,100원 ▼100 -0.09%) 덕에 우리나라도 끼어들게 됐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상무이사는 "신종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무기 개발은 국민 건강안보를 위해서 뿐 아니라 국가 경제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북미지역에서 유행이 시작된 신종플루는 인류가 바이러스와의 계속해서 전쟁을 하고 있었음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우리가 잊고 있었을 뿐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인류를 공격해왔다. 최근 100년 사이에도 1918년 스페인독감, 1957년 아시아독감, 1968년 홍콩독감에 이어 신종플루가 찾아왔다. 대유행은 아니었지만 세계를 긴장시킨 사스(중증 급성호흡기 증후군)나 조류독감도 있었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백신공장이 대박을 내며 다른 제약사도 백신 공장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녹십자 보다 생산규모가 3배나 더 많은 백신 생산 공장을 짓겠다며 부지 점검에 나선 일양약품이 한 예다.

국내에 신종플루에 대한 지나친 공포감이 문제지만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대비하는 계기가 된다면 나쁘지만은 않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녹십자는 4만~5만원대에 불과했던 주가가 한때 20만원대로 치솟으며 말로만 외치던 백신명가의 자존심을 회복했다. 올해 녹십자의 신종플루 백신 매출(560억원)은 보건복지가족부의 연간 의약관련 연구개발(R&D) 지원금(500억~600억원)과 맞먹는다.

백신 뿐 아니라 진단키드제조회사 등에도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진단키트를 만드는 바이오니아 (30,350원 ▲400 +1.34%)는 최근 2주간 신종플루 신속진단키트(3만8000테스트 분량)와 계절독감 진단키트(3만7000테스트 분량) 등에서 수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진단장비 임대와 진단키트 관련 소모품 판매 등에서 추가 매출도 기대된다.

지난해 이 회사의 신속진단키트 매출은 전무했다. 바이오니아는 이 여세를 몰아 아시아 2~3개 국가에서 신속진단키트 수출을 추진할 계획이다. 신종플루가 R&D 성과를 앞당길 수 있는 기회를 준 셈이다.

신약개발연구조합 여 상무는 "신종플루의 공포감이 촉발시킨 바이오제약회사들의 개발 노력이 기술력 발전과 이에 따른 매출증대, 나아가 세계시장 진출의 바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만 해도 이 약을 개발한 길리어드는 판권을 로슈에 팔고 14~22%의 로열티를 받는다. 조류독감이 유행한 지난 2005년 길리어드의 로열티 수입은 370% 늘었다. 이 회사는 최근 3년간 11억 달러의 로열티 수입을 올리며 세계 3위의 거물급 바이오회사로 성장했다. 외신에 따르면 타미플루를 팔고 있는 로슈와 또 다른 항바이러스인 리렌자를 공급하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등은 올해 30억 달러의 매출을 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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