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임시절 투자, 퇴임 후도 관리하라?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박재범 기자 2009.08.24 07:53
글자크기

금감원 '황영기씨 중징계 ' 논란… "원칙없고 사후잣대 제시"

재임시절 투자, 퇴임 후도 관리하라?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현 KB금융 (82,500원 ▲700 +0.86%) 회장·사진)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중징계 방침을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금융상품 투자에 따른 손실 책임을 어디까지 물어야 하느냐가 핵심 쟁점이다.

금감원은 황 전행장이 해외증권 투자를 확대하고 사후관리도 소홀해 우리은행에 1조원 넘는 손실을 안겼다고 판단했다. 이에 '업무집행정지 상당'이란 제재방침을 통보했다. 초강수지만 금감원은 "적절한 징계"라고 자신한다. '과도한 손실'의 배경을 찾기 위해 검사를 해보니 투자절차 및 관리에 문제점이 확인됐다는 입장이다.



물론 반론도 만만찮다. 선언적 의미의 은행법 조항을 토대로 부실에 대한 포괄적 책임을 물었는데 구체적인 문제점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선 당국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금감원, 초강수는 왜?=금감원은 황 전행장이 우리은행의 외형확대를 위해 투자은행(IB) 부문에 과도한 자산 증대 목표를 부여했으나 정작 이에 걸맞은 리스크 관리나 내부 통제는 허술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 중심에 황 전행장이 있다고 판단했다. 우선 자산증대를 황 전행장의 '지시'로 규정했다. 이사회가 정한 은행 전체의 자산증대 목표치에 비해 IB부문의 실적목표치를 과도하게 부여했다는 것. 금감원은 이를 신용부도스와프(CDS) 부채담보부증권(CDO) 투자를 확대하게 만든, '사실상' 지시로 결론 지었다.

CDO나 CDS의 신용등급(AA)만 믿고 투자한 것도 문제삼았다. 또 CDO 등 투자 때 전결권자(부행장)의 전결 투자를 가능하도록 한 것과 CDO 등 투자행태에 대한 감사위원회 의견 제시에 대응하지 않은 것 등을 리스크 관리 미흡 이유로 들었다.

황 전행장 측은 그러나 투자 당시 해당 상품의 신용등급이 AAA로 우량했을 뿐 아니라 은행 리스크 관리심의회를 거쳐 정상적으로 투자가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실제 그가 우리은행장에서 물러난 2007년 3월까지 파생상품 투자손실이 발생하지 않았다. 가격이 폭락한 것은 2007년 하반기부터다.


◇투자 손실 발생하면…=최초 투자 결정을 내린 최고경영자(CEO)에게 계속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가 쟁점이다. 황 전행장이 퇴임 후 손실이 발생하면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것이다.

우리은행의 이번 파생상품 투자손실은 그가 물러난 뒤 예상치 못한 변수(글로벌 금융위기)로 발생했다. 이로 인해 사후제재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황 전행장 측의 반응이다. 은행 자산증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부문별로 목표치를 재설정한 것 역시 경영상 판단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시중은행 고위 임원은 "황 전행장에 대한 중징계 방침이 나온 후 앞으로 대규모 상품투자에 앞서 금융당국에 미리 보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며 "이런 분위기에서 은행장들이 투자 결정을 쉽게 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투자위험이 크더라도 성공하면 괜찮고 손실이 나면 징계하는 것은 원칙이 없는 대응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징계수위 적정한가=업무정지는 해임 권고에 이어 2번째로 높은 징계조치다. 이 제재가 확정되면 앞으로 4년간 금융계에 재취업을 할 수 없다. 사실상 금융권에서 퇴장하란 명령이다.



황 전행장은 현직 유지에 문제는 없지만 '레드카드'를 받으면 자리 지키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징계의 적절성 여부를 두곤 '갑론을박'이 팽팽하지만 징계수위에 대해선 '과하다'는 쪽이 우세한 이유다. 과거 분식회계 혐의로 징계를 받은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이 '업무정지'보다 한 단계 낮은 '문책성 경고'였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한편에선 당국이 '퇴장' 명령을 확고히 하기 위해 논란을 무릅쓰고 강수를 뒀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문책성 경고' 이상을 받아야 재취업이 제한된다. 그간 당사자의 소명을 참작해 제재수위가 낮아져도 두 단계 이상은 없었다. 제재심의위원회가 한 단계 수위 조절할 가능성을 고려해 당국이 고강도 '구형'을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국 책임론도 도마에=당국 책임론도 비켜갈 수 없는 대목이다. 금감원은 황 전행장 퇴임 후인 2007년 5~6월 우리은행에 대한 종합검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정작 파생상품 투자에 대해선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았다. 종합검사 전후로 황 전행장이 투자 손실 관련 '면죄부'를 받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당국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투자손실의 단초를 제공한 'IB투자부문 확대'도 넓게는 당국의 방침에 따른 것이었다.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당시 당국은 은행들의 해외 진출과 IB가 살길이라며 독려했다. 우리금융의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도 투자가 이뤄질 당시 리스크관리 등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종합검사 당시는 물론 이전에도 '경고'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2004년 8월 '구조화증권 투자 및 관리와 관련한 유의사항 통보'가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구조화 증권투자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도를 했다는 것. 예보 역시 분기별 점검만 할 뿐 사전심사는 하지 않는다며 투자손실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