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주가상승 변수'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2009.05.04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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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재무평가 반영 호소… 절차 지연 가능성

"주가가 자꾸 올라서 골치가 아픕니다. 주가상승이 나쁠 게 없으나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자꾸 미루려 합니다. 구조조정 차원에서는 득이 되는 것도 있는데, 최종적으로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쉽게 답을 내기 어렵습니다."

구조조정 '주가상승 변수'


은행권이 최근 증시 상승에 때아닌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은행들은 최근 45개 대기업집단(주채무계열)의 재무구조 평가를 마무리하고, 불합격 기업들과 이달 말까지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맺을 예정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계열사 주가 상승을 이유로 평가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지분매각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려 해 속을 태우고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주가상승으로 계열사 지분법 평가액이 증가한 기업들이 주채권 은행의 재무구조 평가결과 및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완화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계열사 지분법 평가액은 자본조정 계정으로 분류, 재무구조 평가의 핵심이 되는 부채비율에 영향을 미친다. 평가액이 늘어나면 부채비율이 하락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대기업 계열사 가운데 상장회사들이 많고 지난 연말대비 현재 주가가 30% 이상 오른 곳들이 적잖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번 재무구조 평가에서 논란이 된 것이 지분법 평가액으로, 은행들은 이를 최소화하자는 입장이었으나 기업들의 반발이 적잖았다"며 "평가결과가 확정된 이후에도 주가 상승을 감안해 달라는 요청이 상당했다"고 말했다.

불합격 판정을 받은 A그룹은 지난 연말 상당액의 지분법 평가손이 발생, 자기자본이 줄었으나 올해 1분기 말에는 평가익으로 전환했고, B그룹은 평가액이 20%가량 늘었다.

기업들의 재무구조 개선약정에서도 주가가 문제되고 있다. 일례로 C그룹은 계열사 지분 중 일부를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기로 은행과 사전협의 했으나 최근 매각하기로 한 계열사 주가가 급등하자 이를 미룬다는 것이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지난주 열린 은행장 회의에서 "주가상승 때문에 구조조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며 "기업들이 당초 약속을 이행하지 않거나 최소한 5월까지는 (약정을 체결하지 않고) 버텨보자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의 계산도 복잡하다. 기업들은 구조조정 노력을 않더라도 계열사 주가상승으로 약정을 이행하는 곳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다른 한편으로 "기업들이 약정대로 계열사 지분을 매각한다면 주가가 높은 게 유리하지 않느냐"는 시각도 적잖다.



유상증자를 통해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이행할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사정이 보다 복잡해진다. 유상증자는 계열사 지분매각 및 부동산 처분보다 가산점이 높다. 기업 입장에서는 유상증자 기준 주가가 높은 게 좋지만 자금시장에서는 주가가 낮아야 투자자 모집이 유리하다.

국책은행 관계자는 "주가수준에 대해 기업과 은행의 입장이 엇갈리는 게 사실이며 어떤 현상이 나타날지 주목하고 있다"며 "구조조정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는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주가 상승에 따른 순기능이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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